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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Jul 27. 2019

[산책 25~27일]
'노르웨이의 숲'에서의 산책

하루 20분 나는 한다.


   足 발 족

   발 (그냥) 발

   探 찾을 탐

   靜 고요할 정

   記 기록할 기.


   이름하여 ‘족발탐정기’.


   두 발로 걸으며 고요함을 찾는 산책의 기록.

   ‘[공동매거진] 하루 20분 나는 한다’의 연재 글입니다.







2019. 7. 25.(목)   흐림 그리고 비



   사진만 보면 영락없는 ‘노르웨이의 숲’이라 할만하다.



   PM 12:15. 서둘러 후다닥 점심을 먹고 학교 뒷산을 산책했다. 옅은 비가 내려 우산을 쓴 채로 한가로이 거닐었다. 살살한 물기를 머금은 숲은 고혹적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마치 내가 ‘노르웨이의 숲’을 거니는 기분이었다. 물론, 호전적인 바이킹들이 활약했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발 디딘 적은 없지만서도.



   그래서 이 일기는 비틀스(the Beatles)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이란 노래를 들으며 쓰고 있다.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원제 : 노르웨이의 숲)’를 떠올리며 쓰고 있기도 하다.



   하루키 형님은 <노르웨이의 나무는 보고 숲은 못 보고>라는 에세이에서 ‘상실의 시대’ 도입부에 나오는 음악이 ‘노르웨이의 숲’이었어야만 했다고 고백한다. 이 음악 말고는 그 어떤 곡도 떠오르지 않았단다. 그리고 이 노래와 관련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전하는데, 내용이 조금 멜랑꼴리 해서 품격 있는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에 적어도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호기심이 많고 선량한 청년이거니와 거대 권력 앞에서 눈치 따위는 전혀 보지 않는 대쪽 같은 사람이니, 이를 살짝 소개해 보기로 한다(부디 무시무시한 검열은 무사히 피해 가길). 다음의 가사를 읽어보시라. ‘She showed me the room, isn’t it good? Norwegian wood'. 영문학과 졸업생이지만 영어 울렁증이 있는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 해석해보자면, '그녀는 내게 자신의 방을 보여 줬어, 멋지지 않아? 노르웨이의 숲’ 정도가 되겠다. 여기서 ‘Norwegian Wood’라는 단어는 사실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라, ‘북유럽산 가구’로 번역하는 것이 본연의 뜻에 더 가깝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이러나저러나 문맥상 어색한 건 여전히 마찬가지다.



   여기에 덧붙여, 하루키는 시치미 뚝 떼고 뒷골목에서 주워들은 것 같은, 더욱 그럴듯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슬쩍 흘린다. 사실 이 곡의 제목은 ‘Norwegian Wood’가 아닌, ‘Knowing she would’ 였다는 것(직접 입으로 말해보면 아시겠지만, 발음이 상당히 비슷하다). 이를 토대로, 위 가사를 다르게 끊어보면 ‘Isn’t it good, knowing she would?’인데, 이는 ‘그녀가 해줄 거라는 걸 안다는 건 멋지잖아’로 해석할 수 있다. 은밀한 의미는 독자님들의 주체적 상상에 맡길게요. 지금 떠오르는 그 생각이 맞을 거예요. 아이 참, 부끄럽고 남사스러워라.



   하루키‘상실의 시대’에 왜 그리 야한 내용이 많은지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검열을 피하고자, 곡의 제목을 즉흥적으로 교묘하게 바꿨다던 존 레논 역시, 대단ㅎ... ㄷ ㅏ, 후덜덜.



   다양한 해석의 길을 품은,

   노르웨이의 숲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스물다섯 번째 날이다.



* 더 궁금하신 분들은 노래의 가사를 찾아보세요~ 깜짝 놀라실 겁니다. 호호




2019. 7. 26.(금)   엄청난 비, 오후엔 그침




       한가로이 노니려니 억수로 비가 오누

       하늘도 무심하여 물길이 열렸누나

       족발러 고독한 넋의 처량함을 누가 알랴




   오전에 하늘이 뚫릴 듯 비가 쏟아져 ‘아싸, 오늘은 산책을 못하겠구나’하는 마음에, 내리는 비를 고독하게 바라보며 변명의 시조를 읊어봤다.



   그야말로, 3장 6구 12음보, 총 45자의 (형식적으로만) 완벽한 시조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오후에 느닷없이 비가 뚝 그쳐버렸다.


 

   꼼짝없이 오늘도 고독한 산책을 나갔다. 괜히 뒷짐진채로 똥폼 잡고 시조를 읊은 나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이 프로젝트도 거의 끝나가는데, 도저히 이상한 글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벌써 스물여섯 번째 날이다.


토끼야 안녕?




2019. 7. 27.()  흐림



   유난히, 맑고 파란 하늘이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다.   



   AM 7:00. 물먹는 하마마냥 습기를 빨아들인 듯, 축 처진 몸을 이끌고 또다시 고독한 산책을 떠났다. 매년 이맘때 즈음, 비 오고 덥고 습한 날이면 깊은 잠을 자는데 애를 먹곤 한다. 주말 아침, 조금은 피곤해도 제 갈 길은 가야 한다. 이제 7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으영차.



   잿빛 하늘과 뿌연 공기가 못내 아쉽다. 파란 하늘을 올려다본 게 얼마나 됐는지 기억조차 아득하다(일기를 뒤적거리니 7월 9일이 맑았던 마지막 날이었던 것 같다). 이런 날씨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청명한 하늘과 내리쬐는 햇빛을 보고 느낄 수 있겠지(푹푹 찌겠지만). 어차피 삶이란 하나를 내주고 하나를 얻는 여정.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는 것이 자연과 삶의 순환이자 섭리이다. 조금만 참으며 오늘 하루에 충실하고자 마음먹는다.



   그래도, 

   한적한 시간과, 

   걸을 수 있는 두발, 

   발을 오롯이 감싸는 신발, 

   그리고 걷고자 하는 의지가 있음에, 


   

   감사한 주말 아침이다. 

   가만 보면 세상에는 감사할 일이 참 많다. 



   스물일곱 번째 날이다. 으영차








'[공동매거진] 하루 20분 나는 한다.'에는 몇몇의 작가님들께서 스스로에게 건 특별한 약속을 이행하고 계십니다. 매거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 )

Illustrated by 방울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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