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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Jul 31. 2019

모든 신발은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고 걷는다.

[산책 31일, 에필로그] 하루 20분 나는 한다.


   足 발 족

   발 (그냥) 발

   探 찾을 탐

   靜 고요할 정

   記 기록할 기.


   이름하여 ‘족발탐정기’.


   두 발로 걸으며 고요함을 찾는 산책의 기록.

   ‘[공동매거진] 하루 20분 나는 한다’마지막 연재 글입니다.







   뭐, 이렇게 끝나버렸습니다.



   7월 한 달간 <하루 20분 나는 한다> 매거진에서 산책을 담당했던, ‘두 발로 걸으며 고요함을 찾는 산책의 기록 - 족발탐정기’는 영영 역사의 뒤안길로 묻히게 되었습니다(역사는 무슨).



   제게는 여러모로 큰 의미로 다가온 한 달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루 20분, 조용히 산책하는 그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한적하게 발길 닿는 대로 걷는 일이 이토록 매력적인 행위인지 직접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물론, 글을 써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지만요. 자신과의 약속마저도 ‘나 몰라라’ 하던 무책임한 제가, 정해진 이 기간을 무사히 마쳤다는 데에 큰 뿌듯함을 느낍니다.



   주변을 관찰하기도, 새의 지저귐에 귀 기울이기도,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쪼그려 앉아 꽃 사진을 찍기도, 때론 한없이 멍 때리기도 하며 정처 없이 걷던 순간들이, - 지극히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 작지만 소소한 행복이었습니다. 여유로운 걸음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면 과장일까요? 인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기쁨이 글 곳곳에 배었으면, 그리고 독자님들도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면, 하고 소망해 봅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나름의 속셈이 있었습니다. 저만의 은밀한 이유라면 이유죠. 연필을 손에 쥐고 직접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연필을 만져본 지 하도 오래되어, 그 서걱서걱한 필기감과 아날로그한 정감이 매우 그리웠거든요. 오랜만에 손맛을 느끼니 참 좋았습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신선한 감각이었다고나 할까요. 다만, 본의 아니게 역대급 개발새발 글씨를 맞닥뜨린 독자님들께는 한없이 송구스럽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친구에게 노트를 빌려주면 되레 욕을 먹을 정도의 수준 높은 악필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도통 모르겠네요.



   또 다른 속셈은,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근 1년간 에세이를 쓰다 보니 제 내공의 바닥이 적나라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일기를 구실 삼아, 새로운 형식의 글을 부담 없이 실험했습니다. 어차피 조회수는 예상하셨던 대로 박살 나고 있었으니까요. 감성적인 글도, 싱겁고 유치한 유머도, 쓸데없이 비장하며 허황된 글도, 고전문학을 어설프게 차용한 글도 있었죠. 프롤로그에서 선언했듯, 자유로운 걸음만큼이나 그야말로 삼천포를 헤매는 여정이었습니다. 아마 앞으로 새로운 글을 쓰는 데 있어 풍성한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지금도 처음으로 ‘습니다’‘해요’ 체를 섞어 쓰고 있죠. 저는 끝까지 눈앞의 목적에 충실한 음흉하고 한결같은 사람이랍니다.





   한동안 걷고 쓰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신발은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고 걷는다.’라고. 터무니없는 비약인 것 같지만 어쨌든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의 무게를 느끼겠죠. 때로는 버겁지만, 그래도 우리는 운명처럼 마주한 오늘을 살아갑니다. ‘걷는다’는 행위는 삶을 압축적이고 비유적으로 표현하죠. 걸음에는 두 발과 한 켤래의 신발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순간, 한걸음 한걸음에 무게가 실린 채로 걷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신는 신발에 애틋함을 느낍니다. 제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을 이고 걸었던 슬리퍼와 샌들, 그리고 운동화. 이는 비단 제 신발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이 글을 빌어, 감히 인간을 대표해, 존재와 삶의 무게를 지고 걷고 있는 세상 모든 신발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뭐든지 꾸준히 하는 게 어렵다고들 합니다. 적극 동감합니다. 한 달 동안 매일 달력에 'X'표만 치라해도, 저는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분명 빼먹는 날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어----- 하다 보니, 나름 성실하게 산책을 하고, 글을 썼습니다(짝짝짝). 틈을 내어 하려 했는데, 어느새 생활 자체가 틈이 되어버렸죠. 이게 다 매거진을 기획한 보름 작가님과 이를 함께 가꾸고 격려해 주신 동료 작가님들 덕분입니다.



   꽤나 멋진 삼천포의 여정이었습니다. 함께 한가로이 거닐어 주셨던 고결한 인품의 독자님들이 계셔서 이 방랑이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오늘의 산책 이야기는 첫날과 마찬가지로 영영 들려드릴 기회가 없을 것 같네요. 야속하지만, 저만의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묵직하고 의미 있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의 걸음을 응원하겠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단 한 번밖에 없을, 2019년 7월을 함께 걸어주신 독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독한 산책러, 고무라면은 여기서 이만 인사드립니다.





   서른한 번째,

   7월의 마지막 날이다.



   2019. 7. 31.(수)   비가 왔지만 마음만은 맑음



//끝.









* 7월의 공동매거진 <하루 20분 나는 한다>의 작가님들


   - 보름 작가님 : 그림 그리기

   - 핑핑이는애용하고울지 작가님 : 남미&라틴 음악 가사 번역

   - 이틈 작가님 : 쓰기

   - 방울 작가님 : 공모전 준비

   - 이석금 작가님 : 웃기

   - 석혜탁 칼럼니스트 작가님 : 좋은 글귀 수집

   - dahl 작가님 : 고양이와 놀아주기

Illustrated by 방울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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