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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Jul 30. 2019

[산책 28~30일]
우리 집 강아지, 막내와의 소풍

하루 20분 나는 한다.


   足 발 족

   발 (그냥) 발

   探 찾을 탐

   靜 고요할 정

   記 기록할 기.


   이름하여 ‘족발탐정기’.


   두 발로 걸으며 고요함을 찾는 산책의 기록.

   ‘[공동매거진] 하루 20분 나는 한다’의 연재 글입니다.







2019. 7. 28.()   



   오늘이었다.

   역사에 기록될 족발러 회군을 기어이 단행하고야 말았다.



   AM 7:10. 산책을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천둥 번개를 동반한 집중 호우가 쏟아졌다. 아래는 정반대 성향을 가진 나의 두 자아가 서로 치열하게 대립하는 현장.

 





   불성실하고 삐딱한 자아(이하 · 삐 자아) : 야! 비가 마구 내린다, 어서 철수하자!

   성실하고 고지식한 자아(이하 성 · 고 자아) : 안돼…. 우리는 <하루 20분 나는 한다> 매거진에 서약한 것처럼 20분 산책을 꼭 해야 하는 걸? 수많은 독자님께서 학수고대 기대하고 있다구…. 

   · 삐 자아 : 무슨 개뼉다귀 같은 소리냐! 독자님들은 신경도 안쓰시거든? 천둥 번개까지 친다구. 지금 당장 들어가야 해.

   성 · 고 자아 : 비가 많이 오기는 하지만…. 벌써 10분 넘게 걸었잖아. 조금만 더 하면 안 될까…? 나름 운치 있잖아…. 이렇게 비올 때면, 춤도 출 수 있고….

   · 삐 자아 : 운치는 얼어 죽을. 춤이라고? 너는 우리의 소중한 머리카락 걱정은 안 되냐? 다 빠지면 네가 책임 질 거야?

   · 고 자아 : 하…. 탈모는 안 되지, 안 되고말고. 이 정도면 이성계사불가론(四不可論)에 필적할 명분이겠지…? 그래야만 해…. 제발.

   · 삐 자아 : 그렇고 말고. 자 족발러 회군이다! 방향을 틀어라!






   그렇게  · 고 자아가 무참하게 패배하고, '족발러 회군'을 하고야 말았다. 물론, 비는 진작에 쫄딱 맞아버렸다.



   다행히 오후에 잠시 비가 그쳐 20분 산책을 채웠다. '불성실하고 삐딱한 자아'가 다른 삶의 영역에서 기세 등등하게 활개 치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스물여덟 번째 날이다.





2019. 7. 29.()   흐림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막내.



   벼르고 별렀던 막내와의 산책을 했다. 형이 서울에 오면 언제나 산책 가자고 조르는 총총 제스처를 하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던 녀석이다. 그래, 나가자. 너를 씻기는 일은 심히 귀찮기는 하지만 7월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우리 족발탐정기에 정식으로 등장해야지. 항상 형의 산책을 방해하는 배역으로 나와 네 녀석도 심히 억울했을 거야. 같이 길을 나서기로 했다.



   제멋대로 자기 갈 길 가는 막내를 보면 언제나 마음이 채워진 듯 행복하다. 뒤뚱거리며 걷는 걸음걸이와 씰룩이는 엉덩이, 킁킁대며 코 박고 냄새 맡는 모습까지. 사랑스러움 그 자체다. 막내가 가고자 하는 대로 그저 끌려갔다. 마치 막내가 나를 산책시켜주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엄마와 함께 산책을 자주 나가는 막내지만, 밖에서 신선한 공기를 쐬는 건 언제나 좋은가 보다. 곳곳에 영역표시를 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세상에 널리 알린다(쉬아와 응아). 하여간 정말 못 말리는 녀석이라니깐. 유감스럽게도 다른 강아지 친구들을 만나진 못했다.



   벤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집에 가자 하니, 녀석이 엉덩이를 쭉 빼고 엎드린다. 번쩍 들려고 해도 온몸에 힘을 준 채로 힘껏 버팅긴다. 이 뻔뻔한 댕댕이 녀석. 에라이 모르겠다, 나도 녀석과 함께 한적한 아침의 여유를 더 오래 즐길 수밖에 없었다.



   스물아홉 번째 날이다. 





2019. 7. 30.()   비 흐림



   AM 12:20. 통념상 늦은 밤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하루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기에, (얌체같이) 산책을 나갔다.



   참 애매한 시간이다. 날짜상으로는 분명 30일인데, 29일의 연장이기도 하다. 오늘, 그러니까 30일 주간에는 개인적으로 바쁜 일이 있을 것 같아 야심한 시각에 고독하게 걷는다.



   Jazz를 들으며 산책을 하고, 재즈를 들으며 이 일기를 쓰고 있다. 사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 고민이 있었다. 의미 있는 하루의 20분을 위해 무엇을 실천해야 할지. 산책으로 할까, 아니면 재즈 듣기로 할까. 오래전부터 이 매력적인 음악을 듣고 싶은 충동이 마음 한구석에 콕 박혀 있었다. 그러나 재즈라는 음악은 너무 생소한 장르였기에 내 역량으로는 도저히 글로 풀 자신이 없어 금방 포기했다. 그래도 나름 거진 한 달 동안 꾸준히 산책하듯, 재즈도 열심히 들었다.



   습하고 꿉꿉한 날씨, 어둡고 야심한 밤, 자유로운 걸음. 재즈 음악과 여러모로 닮아있다. 나지막하고 가벼운 비트와 트럼펫, 색소폰의 끈적하고 자유로운 연주, 베이스의 진하고 둔탁한 리듬감은 밤의 청취와 잘 어울린다. 즉흥연주 역시, 발길 닿는 대로 걷는 산책과 비슷하다는 억지 아닌 억지를 부려본다.



   아직 세 개의 앨범밖에 듣지 못했다. 처음이기에 귀에 익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만 계속해서 듣다 보니, 이 낯선 이방 음악에 푹 빠지게 되었다. 특히 늦은 밤에 혼자 듣는 Jazz는 이미 내 삶에 독특한 기쁨이 되었다.



   지금, Duke Jordan‘No Problem’이란 곡이 해드 셋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서른 번째 날이다. 

   7월은 이제 단 하루만이 남았다.


역시 재즈는 라이브군요. 앨범과는 다른 느낌의 즉흥 연주!







'[공동매거진] 하루 20분 나는 한다.'에는 몇몇의 작가님들께서 스스로에게 건 특별한 약속을 이행하고 계십니다. 매거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 )

Illustrated by 방울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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