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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의 숨결

떨림이 음표가 되고

by 볕뉘

가을비의 숨결

희미한 안개가

골목을 덮고

초록빛 끝 자락에 매달린 빗방울은

바람의 숨결로 연주한다.


잎사귀마다 맺히는 떨림이 음표가 되고

돌담 아래 잠들어 있던 시간들마저

아름다운 언어로 탄생되는 가을비 숨결.

골목의 돌담은 오래된 기억처럼 따뜻하고

빗방울은 마음의 문장을 새기며

텅 빈 벤치 위, 낙엽 한 장이

누군가의 이름을 새기듯 느리게 젖어온다.

우산 끝에 매달린 물방울

그리움처럼 동그랗게 번지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채

젖어도 괜찮다는 듯

가을비의 숨결을 허락한다.

고요한 빗방울 아래

침묵은 수많은 이야기되고

떠나간 계절은 인사로 돌아오며

남은 온기는 마음의 불씨로 번진다.

다가올 계절의 약속처럼

세상을 적시는 가을비

모든 이별은 흘러야 하고

모든 기다림은 젖은 시간 속에 피어나며

젖는다는 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스며드는 것.

가을비 숨결의 속삭임은

쓸쓸함이 아니라

젖은 마음 위로 피어나는 꽃잎

가을이 남긴

고요하고 다정한 숨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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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