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늘
면접은 짧았다. 준비했던 질문에 대한 답은 전혀 할 필요도 없었다. 첫 직장이자 전 직장인 상조 회사에서 3개월 수습 기간도 채 마치지 못하고 나온 이유에 대해 물을까 봐 걱정했었다. 사실 이력서를 쓸 때부터 상조 회사 이력을 넣기조차 애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줄 정도 쓰고 싶었다. 장례 지도사는 학교 전공도 아니고 교육원에서 자격증을 따서 시작한 일이었다. 장례 지도사를 하게 된 건 순전히 내 선택이었다. 부모를 잃고 예화도를 나와 아버지의 먼 친척 집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왕래도 없이 타인처럼 끊어진 가족의 인연을 어린 아이란 이유 만으로 거둬 준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보육원 보다 나았을까 묻는 다면 글쎄 대답하기 곤란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끝으로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했다. 친척 집에서 고시원으로 바뀌었을 뿐 기울어져 가는 배를 타고 홀로 망망대해를 헤쳐 가는 일은 똑같았다. 여자라는 이유 만으로 홀로 살아가는 삶은 더 고달팠다. 식당, 편의점, 주유소, 카페 등등 알바를 전전하며 어떻게든 더 나은 삶을 위해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대학을 가고 싶지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하루하루 벌어 먹기 위해 몸은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지만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100% 국가자격증 취득 / 높은 취업율 / 전문 실습기관 완비]
우연히 보게 된 장례 지도사 광고 배너였다. 검색해 보는 것들이 ‘죽은 사람이 눈에 보여요’, ‘귀신을 보면 무당이 되나요’, ‘귀신 안 보이게 하는 법’, ‘영혼’, ‘악귀’ 같은 문장과 단어 들이다 보니 알고리즘에 얻어 걸린 거겠지만 미처 생각지 못했던 귀한 깨달음을 얻은 것 마냥 머리가 띵해졌다.
유레카를 외치며 목욕탕을 뛰쳐나간 아르키메데스처럼 나는 그날로 장례 지도사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것이야말로 나 같은 인간이 꼭 해야 할 천직처럼 느껴졌다. 죽음 이후의 세계. 저승과 이승에 걸쳐져 일하는 직업. 내 주위를 끊임없이 배회하는 영혼들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졌는지 몰랐다.
그렇다. 나는 예화도에서 나와 살기 시작한 10살 무렵부터 귀신을 볼 수 있었다. 가뜩이나 잘 알지도 못하는 친척 집에 얹혀 살면서 귀신까지 본다고 하면 기겁을 하고 내쳐 질까 봐 꾹 눌러 참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 곁을 맴도는 존재들을 모른 척 하는 것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들은 배회하기만 할 뿐 직접적으로 해코지를 하거나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저 어딜 가든 내 눈에 그저 보였다. 대부분 죽었을 때 모습이라 사람에 따라 사고로 죽으면 일 그러지고 절단되어 있거나 피 범벅으로 뭉개져 있었고 병환으로 죽으면 흉측하게 말라 있거나 움푹 패어 있거나 한 부위만 기괴하게 부풀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무섭고 괴로웠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어른이 되고 나선 마치 벽에 걸린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액자나 포스터를 보고 지나치는 것처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어렵게 상조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 문제가 터졌다.
분명 실습 나갔을 때만 해도 에이스라고 칭찬을 받았는데 막상 회사에 취업을 하고 사수를 따라 간 장례식장에서 원치 않던 일이 벌어졌다. 장례식장은 그야말로 저승과 이승의 경계선에 서 있는 장소라 귀신과 산 사람들로 번잡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다. 이쪽 저쪽을 다 볼 수 있는 나로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죽은 이들의 가족과 지인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며 둘러 앉아 있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 죽은 이와 저승사자의 담판이 이뤄지는 곳이며 콩고물이라도 얻어 먹으려고 찾아온 아귀와 잡귀들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저승사자는 익히 알고 있던 모습과 많이 달랐다. 검은 양복을 입고 서류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은 영업 사원에 가깝다. 다양한 모습으로 죽은 이들은 저승사자와 마주 앉아 저승으로 가기 위한 방법을 놓고 치열한 접전을 벌인다.
슬쩍슬쩍 넘겨다 보고 지레 짐작한 것으로 알게 된 건 저승 갈 노잣돈을 얼마나 모았는지에 따라 저승까지 갈 수 있는 방법과 이동 수단이 달라졌다. 저승사자는 세일즈맨처럼 카달로그를 꺼내 놓고 흥정을 했다. 카달로그 안에는 배부터 기차, 버스, 비행기까지 이동 수단이 달랐고 그에 따라 치러야 하는 값도 달랐다. 저승까지 가는 여정은 멀고 험했다. 고개도 몇 개나 넘고 위험한 물도 건너야 했다. 죽은 이들은 화를 내기도 했고 울기도 했으며 매달리기도 했다.
저승 갈 노잣돈이라는 게 살아 생전 얼마나 부자였는지로 꼭 판단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부자면 훨씬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사람에 따라 가난하더라도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 같았다.
장례식장은 복잡하고 정신 사나운 곳이었지만 나는 그곳이 그리 싫지 않았다. 남은 이들이 죽은 이들을 정성껏 보내드리는 일이었다. 염습을 할 때면 눈에 보이는 죽은 이들의 반응이 다 달랐다.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울거나 아니면 옆으로 와서 염습을 하는 장례 지도사들을 노려 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죽은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화를 내며 죽은 육신으로 들어가려고 하거나 주위를 배회하며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날 염습을 했던 고인은 60대에 지병으로 죽은 남자였다.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지역에서 꽤 알아주는 지주로 자녀들이 첫날부터 재산 싸움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있는 사람들이 더 한다고 첫 째 딸은 반찬을 아끼라고 으름장을 놓아 도우미 여사님이 재활용을 해야 하느냐며 투덜대기도 했다. 함께 나간 팀장은 해달라는 대로 해주라는 말만 읊었다. 오랜 병환으로 시신은 퀭하게 말라있었다. 처음엔 얌전하게 구석에 있던 죽은 남자의 영혼이 돌변한 건 염습이 다 끝나 갈 무렵이었다.
처음엔 뭐가 잘못 된 건지 몰랐다.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다가 땅으로 곤두박질 치는 기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리가 아팠는데 누워 있는 건 차가운 병원 복도 바닥이었다. 분명히 좀 전까지 입관실에서 염을 하던 내가 갑자기 여기 왜 누워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몸을 일으켰을 때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웅웅대는 것을 보고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너 다시 한 번 말해봐! 어디 그 뚫린 입으로 다시 말해 보라니까!”
멱살을 잡고 흔드는 건 고인의 큰 아들이었다. 옆에 그를 말리는 건 둘째 아들이었는데 말리면서도 나를 보는 눈이 곱지 못한 걸 보면 내가 무슨 잘못을 한 모양인데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나중에 함께 왔던 팀장에게 들은 말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마치 빙의라도 한 것 마냥 고인의 삼 남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더란다. 더 놀라운 것은 가족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까지 알고 말을 하는 바람에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이었다. 결국 그 일로 회사에서 잘렸다. 회사에서 쫓겨났다는 것보다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던 귀신에게 빙의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공포감이 더 컸다.
어떤 업계든 마찬가지겠지만 바닥은 좁고 소문은 빠르다. 재취업은 쉽지 않았고 그러던 차에 집 근처에 난 공고문을 보고 찾아간 곳이 바로 <꼭두 장의사>였다. 동네마다 장의사가 있던 7, 80년대도 아니었건 만 낡은 건물에 <꼭두 장의사>라는 나무 간판이 달려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 진 낡은 2층 건물이었다. 동네는 수도권 근방의 재개발이 한창인 곳으로 공사로 어수선했다. 붉은 건물은 재개발에서 빗겨 간 구 시가지 변두리에 있었다. 주위에 높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아래 층은 장의 일을 하는 공간이었고 위층은 살림집이었다. 경쾌한 차임벨 소리를 울리며 들어간 곳은 겉으로 보기완 다르게 깔끔하고 넓었다. 수의 샘플 북과 유골함부터 각종 장례 용품들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고 몽롱하고 기분 좋은 향까지 났다. 테이블 위헤 인센스 스틱이 하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단정하게 차려 입은 젊은 남자였다. 어쩐지 안경이라도 쓰고 배불뚝이 사장님 스타일을 생각했는데 이 동네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장의사가 아니라 인기 많은 카페 바리스타라고 해도 잘 어울릴 법한 외모여서 놀랐다. 남자는 내가 왜 이 직업을 선택했는지, 무슨 일 때문에 전 직장에서 나와야 했는지 묻지 않았다.
오히려 부모님과 가족에 대해 물었다. 요즘 면접에 호구 조사를 하면 꼰대라는 걸 모르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술술 그동안 살아온 얘기가 나왔다. 섬에서 살다가 부모가 죽고 나서 서울로 올라와 친척 집을 전전하며 살았다고 했을 땐 남자의 눈에 얼핏 눈물이 맺혔던 것 같아 눈을 의심했다. MBTI가 F라도 되는 걸까. 이미 다 지난 일이고 어렸을 때라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남자는 내 경력이나 일에 대해선 묻지 않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귀신을 볼 수 있나요?”
아, 그렇다. 이곳에 이력서를 냈던 이유.
공고문에는 희한한 문구 하나가 추가 되어 있었다.
[죽은 영혼을 볼 수 있는 사람을 뽑습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장난인가 싶어서 피식 거리며 지나칠 공고문에 나는 혹시나 싶어 지원했었다.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오는 길에도 이와 관련한 질문을 할까 걱정했지만 막상 남자를 만나고 생활감이 느껴지는 이 공간에 들어서면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문구는 장례 지도사를 뽑으며 일종의 상징성을 담아 추가한 캐치프레이즈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직구로 질문한다고?
“…네? 정말 귀신 보는 사람을 뽑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게 볼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인가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어려서 부터….”
“예화도를 나올 무렵이었나요?”
“네, 아마도….”
그런데 내가 자란 섬 이름을 얘기한 적이 있었던가.
“역시… 그렇군요.”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늘 진 옆 얼굴이 나이를 가늠할 수 없어 보였다.
“혹시 여기에도 보입니까?”
눈을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도시에는 어딜 가나 귀신이 없는 곳이 없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곳은 물론이고 화려한 백화점 안이나 극장 같은 곳도 귀신이 즐겨 숨어드는 곳이다. 면접관의 질문에 주위를 찬찬히 둘러 본 후에야 아까 전부터 느낀 묘한 이질감의 정체를 알았다.
이곳에는 어떤 귀신도 없었다. 없는 것 뿐만 아니라 장의사 일을 하는 곳 답지 않게 영적인 기운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고요함. 그리고 적막함이었다.
내가 찬찬히 고개를 가로로 흔들자 젊은 면접관의 입가에 기묘한 미소가 번졌다.
“일은 언제부터 할 수 있나요?”
“저, 합격인가요? 다른 면접 본 분들도 계시지 않나요?”
“사실 면접 보러 온 분은 단 한 명도 없답니다. 아무래도 그런 문구를 보고 지원할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아….”
사실이라 말문이 막혔다. 고시원의 작은 직육면체 안은 창문 하나 없는 관 같다. 들어가면 숨이 턱 막히는 곳에서 일도 그만둔 채 틀어박혀 있다 보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어쩌면 이곳에 무턱대고 이력서를 넣은 것도 그런 순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다 이 공간에서 내 눈길을 끌었던 건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는 인형들이었다. 투박하고 거친 듯한 나무로 조각한 목각 인형이었다. 이름 모를 동물의 형상부터 인간의 형상까지 자세도 표정도 모두 달랐다.
“꼭두 인형들이에요. 꼭두에 대해 알고 있어요?”
남자의 표정이 묘하게 달라졌다.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꿈을 꾸듯 말했다.
“음…. 아뇨.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딘가 낯이 익네요. 분명히 본 것 같은데…. 이런 인형들도 있었군요.”
“꼭두는 예로부터 상여에 매달고 저승길을 안내한 인형이었요. 고인의 저승 가는 길이 조금이라도 편하길 바라는 남아 있는 이들의 소망을 담고 있죠. 인형마다 각각 하는 역할들도 모두 달랐어요.”
“아…. 수집하시는 건가요?”
“수집하곤 다르죠. 본향 집 같은 거죠.”
“네?”
“죽음을 준비하고 보내는 장의사 일 자체가 꼭두가 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는 거예요. 지금은 집에서 장례를 치르지도 않고, 상여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낳고 자란 예화도에서는 꽤 최근까지 직접 장례를 치렀을 테니까 잘 아시지 않나요?”
이상한 일이었다. 남자의 눈은 도시를 건너 바다 저 끝에 있는 내 고향, 예화도에 닿아 있는 듯 했다. 파도가 치고 푸른 빛이 일렁이며 눈부신 곳. 2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가구 수가 살았고 그곳에서 누군가의 장례를 치를 때면 상여를 메고 곡을 하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아버지는 예화도에서 제일 가는 목수였다. 뭍에서 온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제작을 의뢰할 정도로 아버지의 솜씨는 뛰어났다. 아버지는 상여에 달 꼭두 인형도 직접 만들었다. 손에서 뚝딱뚝딱 만들어지던 얄궂게 생긴 목각 인형들을 나도 갖고 놀았었다.
아, 어떻게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을까. 귓가에 구슬픈 상여 소리가 맴돌았다.
가네 가네 나를 두고 가∼네
어∼하 어∼하
어이 하여 나를 두고 떠나는가∼
어∼하 어∼하
가자 간다 꿈을 꾸니 실날 같은 이 내 몸이
어∼하 어∼하
사든 생가를 다 버리고 북망산천을 나는 가네
어∼하 어∼하
황천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황천일세
어∼하 어∼하
이제 가면 언제 돌아오나
어∼하 어∼하
가네 가네 나를 두고 가∼네
어∼하 어이하리 어∼하
북망산천이 얼마나 멀어 한번 가면 못 오던고
여기서 쉬었다 가∼세나
어∼하 어∼하
안 되겠오 안 되겠오 어서 어서 가야겠오
어이하리 어∼하
“이 인형… 기억나요. 아버지가 상여에 달 인형을 직접 만들었어요. 지금 보니까 꼭두 인형이었네요. 예화도를 아시나요?”
내 질문에 남자가 빙그레 웃을 뿐 답을 하지 않았다. 이곳의 이름이 왜 ‘꼭두 장의사’인지 알 것 같았다.
“바로 일해 주실 수 있나요? 보시다시피 이곳은 큰 상조 회사가 아니라서 체계적으로 일을 배우긴 힘들 거예요. 저희는 조금 다른 일을 합니다. 이 동네가 유난히 어르신들이 많이 사시는데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아요. 노인 뿐만 아니라 무연고로 돌아가신 분들을 구청과 연계해서 장례를 치러드릴 때도 있고 개인이나 병원에서 부르기도 하고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육과 영을 모두 보내드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은 이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대한 영안이 뜨인 분들을 뽑으려고 합니다.”
해괴망측한 소리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단 한번에 이해했다. 그것은 내가 오랜 세월 동안 귀신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자라와서인가. 처음으로 동족을 만난 것 같은 동질감과 소속감 만으로 단박에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졌다. 설사 내 간을 파먹는 여우에 홀린 것이라고 해도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나가서 돌아가야 할 곳이 꽉 막힌 직육면체 관 속이라면 이미 나는 죽은 사람이었고 못할 일도 없었다.
“바로 일 가능합니다. 내일부터 출근하면 될까요?”
“네.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여늘 씨.”
2. 꼭두
구직 사이트에 구인 공고를 내게 된 건 순전히 아무 때문이었다. 아무는 저승사자 중에서도 영업 실적 꼴찌를 달리는 안하무인이었다. 입만 열면 거친 언사로 고인 모독은 물론이고 영업은 뒷전이고 장례식장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콩고물 먹는 데 더 정신이 팔렸다. 술을 유독 좋아해서 내가 알기론 백년 전 쯤엔 술 대접을 받고 명부에 쓰인 명줄을 함부로 바꿔놔서 노여움을 사 인간 세상에서 노숙 생활을 전전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도 모른 채 영으로 떠돌다 사라질 위기에서 간신히 들어간 몸은 이미 뺑소니 사고로 차갑게 식은 몸이었다. 그 탓에 나는 소생하지 못하고 그대로 육신에 갇혀 죽을 뻔 하였으나 아무가 나타나 나를 발로 뻥 차서 숨통을 틔워주었다.
처음으로 들어간 인간의 몸은 적응하기 힘들었고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새벽 시간대에는 육신에서 튕겨져 나와 영을 숨길 만한 곳을 찾아 헤매어야 했다. 처음에는 개나 고양이 같은 짐승의 몸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우연히 길 위에 버려진 곰 인형에 숨을 수 있었다. 따뜻한 솜 덩어리는 편했으나 갑갑했다.
그리하여 찾은 것이 예전 내가 깃들어 있던 목각 인형이었다. 당시 인형의 모습으로 있던 내 모습을 토대로 찾은 것이 꼭두라는 인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린 아이의 손에서 맨질거리며 닳을 때까지 잡혀져 있던 기억이 났다.
저승사자 아무는 보여 줄 데도 없으면서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K팝이니, K드라마 같은 TV 속 콘텐츠들에 환장을 해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나를 부러워했다. 나를 마치 제 인형처럼 꾸미고 놀기 좋아했다.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덕분에 나는 금세 인간의 삶에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다른 기억은 잘 나지 않으나 나무를 깎아내던 사각거리는 소리와 무뚝뚝하고 새까만 피부의 남자와 웃는 얼굴이 귀여운 볼이 통통했던 여자 아이가 떠올랐다. 나를 쓰다듬고 흙바닥에서 가지고 놀던 아이의 손은 따뜻했고 웃음 소리는 즐거웠다.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전생 같은 기억은 종종 떠올라 나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장의사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순리였다. 아무의 말에 의하면 요즘 시대에는 홀로 죽어 가는 외로운 영혼들이 많다고 했다. 그들은 자신과 같은 저승사자도 돈이 되지 않아 영업을 하러 오지 않는다고 했다. 노잣돈은커녕 사각지대에서 홀로 숨죽여 제 죽음을 거부하다가 잡귀나 원귀가 되기 일쑤이고 홀로 세상을 떠돌다 소멸한다고 했다.
물론 모든 저승사자가 아무 같지 않아서 내 꼴을 보기 싫어하던 몇 몇 저승사자가 거리에 술 취해 자던 인간 하나를 꾀어 내어 내가 자던 건물에 불을 지른 적이 있었다. 새벽 시간이어서 나는 꼭두 인형에 영을 숨긴 채 잠들어 있어서 무방비 상태였다. 영이 빠져 나간 인간의 몸은 시체와도 같은 상태이고 인형을 움직일 수 없으니 꼼짝없이 불에 타 죽는 줄 알았다.
이른 새벽에 출근하던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큰일을 당할 뻔 했다. 그 사건에 가담했던 저승사자들은 몇 년 간 정직에 처해졌으나 파면 당하진 않았다. 이 일로 그동안 나를 있는 듯 없는 듯 취급했던 저승에서 정식으로 요청을 해왔다. 무연고자의 죽음을 책임져 달라고 했다. 사각지대에 있는 그들이 원귀라도 되어 구천을 떠도는 것이 저승에도 좋을 일이 없으니 꼭두 일을 했던 내가 그 일을 계속해서 하면 좋겠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아프고 외롭게 죽은 이들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아무가 내게 사람을 뽑으라고 했다. 대체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냐는 말에 슬며시 웃는 얼굴이 가관이었다.
가끔 인간 중에는 어떤 사정에 의해 영안이 뜨이게 된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신을 모시고 굿을 하는 무당도 있는데 귀신을 보는 이들이 왜 없겠는가. 자꾸 꼬드기는 바람에 단순한 구인 공고문을 올렸다. 맨 밑줄에 [죽은 영혼을 볼 수 있는 사람을 뽑습니다] 문구를 넣은 것은 순전히 내 의견이었다.
그 바람에 단 한 명도 이력서를 넣은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였다. 영안이 뜨이지 않은 사람이라면 내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는 처음부터 그렇게 겁을 주면 누가 일하겠냐며 혀를 끌끌 찼다.
얼마 후에 들어온 이력서를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한여늘.
특이한 이름이라 동명이인일 리가 없었다. 면접을 보러 왔을 때 앳된 얼굴은 여전했지만 볼 살은 쏙 빠져 있고 키는 훌쩍 자라 있어 못 알아볼 정도였다. 가족과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서야 내가 짐작했던 이름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화도. 그리운 곳. 내가 태어난 곳. 내가 나로서 존재했던 곳.
여늘은 잘 기억 못하는 듯 싶지만 예화도를 떠나기 전부터 죽은 이들과 대화를 나눴었다. 뒷집에 살던 금숙이 할매가 죽고 나서 아들네 걱정에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마을을 돌아다닐 때도 여늘은 할매 곁에 앉아 조잘거렸던 것이다.
여늘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하도 뚫어지게 쳐다봐서 어쩌면 이상하게 생각했을 지도 몰랐다. 초조해져 발이 달달 떨리고 손톱을 물어뜯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냈다. 빨리 본론을 꺼내고 싶어서 귀신을 볼 수 있느냐고, 이곳에 귀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곳에 귀신이 있을 리 없었다. 잡귀를 잡아다 끌고 가는 저승사자 아무가 수시로 들락거리고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 저승으로 천도 하는 나를 아는 이상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이력서에는 누구라도 알만 한 대형 상조 회사에서 짧게 일한 경력이 쓰여 있었다. 영안이 뜨인 사람이 귀가 모여드는 장례식장에서 일하기가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여늘은 함께 일하는 것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른 아침 문 앞을 빗질 하고 있는데 저만치 서둘러 뛰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들고 있던 빗자루를 기어코 뺏어 들고 메고 있던 가방도 못 내려 놓고 빗질을 시작했다. 늘 하던 일이니 누가 하든 무슨 상관이 있겠냐마는 여늘은 나를 제 보스로 여기고 있으니 이런 일은 자기가 해야 옳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점심은 짜장면을 먹었다. 아무가 올 때면 고량주라도 시켜 줄 테지만 새로 사람을 뽑았다는 말에 일절 발걸음을 끊기로 작정한 듯 했다. 여늘을 너무 보고 싶어 해 숨어서라도 볼 테냐고 물었지만 그건 또 체신이 서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오늘 여늘에게 시킨 일은 근방의 무연고 사망자의 리스트를 뽑아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 중에는 저승으로 천도 되어 삭제해야 할 사람도 있었고 너무 오래돼서 소멸된 자도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는 무연고자들은 각각 사연들도 제각각이었다. 최근에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20대 청년이 아사하여 죽은 일이었다. 날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라 떠날 때도 홀로 방안에서 죽었다. 비고 란에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짧은 사연들도 적혀 있어 여늘은 타자로 쳐 넣으면서 연신 눈가를 훔쳤다.
눈물을 참으려 아랫입술을 하도 잘근잘근 거려서 안타까웠다. 참지 말고 흘리면 될 것을, 괜히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아 밖에 나가 한참을 서성거리다 들어갔다.
“수고했어요.”
“…일이 별로 없네요. 상담 전화도 한 통 안 오고, 혹시.”
퇴근하던 무렵 어렵게 입을 떼던 여늘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무슨 말이 이어질 지 궁금하여 채근하는 듯 고개를 까닥거리니 입술을 꾹 다물었다 떼고 간신히 말했다.
“전단지 같은 거라도 만들어서 나눠 줄까요? 그러면 여기에 장의사가 있다는 것도 잘 알 테고.”
“아….”
사람을 기껏 뽑아 놨는데 하는 일 없이 퇴근하려니 금세 잘릴 것 같아 불안한 모양이었다. 인간의 재화에는 관심이 없으나 아무 덕에 이미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모아 두었다. 은행에 묶어 놓은 돈이 얼마나 되더라.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여늘의 급여 정도는 앞으로 10년 이상 줘도 될 정도는 될 터인데 역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그렇겠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영업 같은 건 전혀 안 해도 되는 일입니다. 죽음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니 우리는 그저 준비하고 있다가 맞이하면 됩니다. 한번 해보면 알 거에요. 단순하게 염을 하고 장례를 치르는 일이 아니란 것을.”
여늘은 여전히 아리송한 눈을 굴리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아무가 넥타이도 풀어헤치고 피곤한 모습으로 서류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큰 화재가 나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비상 상황으로 붙잡혀서 몇 날 며칠을 일하다가 와서 인지 초췌해 보였다.
“말도 마. 끔찍해. 익사자들이 가장 끔찍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화재로 죽은 이들도 힘들어. 아, 그런 난장판도 없었다니까…. 여기.”
아무는 말을 하다 말고 눈이 동그랗게 커져 어정쩡하게 일어난 채 이쪽을 쳐다보는 여늘을 마주했다. 급하게 오느라 내가 사람을 뽑았단 사실도, 심지어 자신이 그렇게 보고 싶어했단 것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평상시처럼 뛰어 들어온 것이다.
“아, 그러니까. 여기는 저승사자 아무. 보통은 차사라고 부르지만 아무라고 불리는 걸 더 좋아해요. 여기는… 한여늘 씨. 새로 들어온 장례 지도사님.”
“와우.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참 오늘 운이 억수로 좋네. 하하. 만나서 반가워요.”
아무가 내민 손을 마주 잡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여늘이 멍한 표정으로 눈만 마주치고 있었다. 사실 인간 사이의 흉내를 내고 있을 뿐 실제로 잡을 수도 없는 손이었다. 같은 공간을 나눠 쓰고 있더라도 엄연히 다른 세계였다.
“아, 내 정신 좀 봐. 여기 오늘 죽은 사람. 화재 때문에 아직 비상인 데다 어차피 갈 차사들도 없어서 말이야. 나이는 58세. 아직 젊은데 아이하고 아내 먼저 사고로 보내고 혼자 살면서 술만 퍼마시다 급성 간부전으로 죽었어. 가만 있어 보자. 여기 또 있네. 쯧쯧. 78세. 가족하고 연 끊고 혼자 사시다 죽었고만. 이분은 빨리 가봐야겠는데 맺힌 화가 있어 보여. 놔두면 원귀가 될 만 해.”
아무는 정말 급한지 자기 할 말만 하고 서류만 툭 내던진 채 문을 나섰다. 나는 익숙한 듯 일어났다. 눈을 가만히 깜박이며 당황한 여늘에게 손짓을 하며 서류를 챙겼다.
“가면서 얘기해 줄게요. 저쪽 창고에 보면 봇짐과 창이 있을 겁니다. 갖고 와 줄래요? 전 차를 앞에 빼놓을게요.”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나를 보고 어쩔 수 없는 듯 여늘은 서둘러 창고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뒤로 하고 골목 한쪽에 주차해 놓은 검은 차를 빼내 문 앞에 세웠다. 조금 이따가 여늘이 두툼한 봇짐과 긴 창 하나를 들고 나왔다. 창 끝은 길고 뾰족했다.
차에서 내려 창과 봇짐을 건네 받아 뒷좌석에 내려 놓고 여늘을 앞에 태웠다.
“저승 가는 길은 멀고 험해요. 아무리 죽었다지만 견디기 힘들죠. 그래도 저 봇짐과 창만 있으면 괜찮을 겁니다. 봇짐 안에는 망자가 원하는 게 들어 있고 창은 우릴 지켜 줄 겁니다. 다들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죽음은 삶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던 걸 환기 시키고 알게 해주죠.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원하는 것 한 가지가 명확해 지거든요.”
“원하는 것이요…?”
“네. 삶의 환희. 누군가에겐 가족과 함께 한 순간이고, 누군가에겐 연인과 함께 했던 한 시절이고, 누군가에겐 가장 큰 성공을 이뤘을 때죠. 삶 속에서 가장 짧았던 환희의 순간을 보여주며 죽음의 길로 이끄는 게 제 일이에요.”
한여늘이 곰곰이 생각하듯 미간을 찌푸렸으나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는 듯이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모르게 여늘의 손을 살짝 잡았다 놓았다. 차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