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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ul 06. 2024

달과 나

‘저 잘난 얼굴을 뭉개 버리고 싶군.’


L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입밖에 낼 수 없는 말이었다. H는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이 존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작고 하얀 얼굴, 오뚝한 콧날, 붉게 빛나는 입술, 쌍꺼풀은 짙지 않지만 길고 깊은 눈매. 잘 빚어 놓은 이 얼굴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얼굴과 몸이 유전체 편집 기술로 인위적으로 나온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면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저밖에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환경 단체나 시민 단체까지 갈 것도 없이 시청 ‘인구소통 전략기획실’ 소속 주무관인 자신부터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인구소통 전략기획실은 이미 극닥전인 인구 감소를 겪은 세대가 ‘인구출산 전략기획실’과 함께 나날이 높아져 가는 자살률을 막기 위해 창설한 부서였다. 나이와 상관 없이 1인 가정이 늘어났고 많은 이들이 고립감과 외로움을 호소하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이는 암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전 질병을 정복해서 수명이 늘어난 인류의 또 다른 동전의 양면인 셈이었다. 


달에 건설할 데이터 센터를 위해  탐사와 채굴을 하던 민간 기업을 따라 동행했던 H가 인구소통 전략기획실로 배치된 것은 부상 때문이었다. H는 ‘우주 탐사 특수대’ 소속 군인이었고 이미 전에도 몇 번이나 달 탐사에 배치되었을 정도로 베테랑이었다. 


2026년 달 협정이 새롭게 체결된 이후, 우주 강국들은 마치 1889년 오클라호마의 랜드 러시처럼 달로 몰려가 깃발 꽂기에 혈안이 되었다. 우주 개발에 뒤쳐져 있던 한국 역시 새로운 자원과 데이터 센터 건설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였으며 이러한 달 개발은 자연스레 각국들 간의 도발로 이어져 언제 전쟁이 터져도 상관 없을 정도로 일촉즉발의 상태가 되었다. 


달 협정을 무시하고 먼저 도발한 것은 중국이었다. 달 지역 경계선을 가지고 수시로 시비를 걸던 중국은 야간에 불시로 급습하였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부상자는 속출했다. H는 이때 팔 하나를 잃었다. 이 일로 양국의 외교 문제로 번져 한동안 전쟁까지 불사할 정도로 냉랭해졌지만  국제 우주 탐사 협의체를 통해 간신히 전쟁 대신 협의를 이끌어냈다. 


그때가 벌써 몇 년 전이었다. H의 팔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뇌에 칩을 심어 의수를 손처럼 자유롭게 사용하게 되기까지 재활 훈련이 필수였지만 6개월 만에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였다. 정부에선 그의 노고를 치하하고 두 가지 선택지를 줬다. 다시 군에 복귀해서 달로 갈 것인지, 혹은 시청 소속 공무원이 될 것인지. 


그때 당시, H는 지쳐 있었다. 우주 탐사는 지리멸렬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개인적으론 달에 데이터 센터를 짓거나 자원을 채굴하는 일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땅 따먹기 하는 것도 아니고 지역 경계선을 두고 다른 나라들과 신경전을 벌이는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군에서 전역하여 시청 소속 공무원이 되었다. H는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편이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살피거나 소통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상명하복에 따라 움직이는 군대가 편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자신이 하필 많은 부서를 놔두고 ‘인구소통 전략기획실’에 배치된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재 검토를 부탁했지만 불가하다는 답변만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구소통 전략기획실의 일 자체가 말 그대로 감정 노가다에 가까운 일이었다. 1급에서 5급으로 분류된 자살 위험군들을 관리하는 일이었고 분류 기준은 위험도에 따른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에 따라 나뉘었다. 당연히 일반인 대부분 5급이었으며 이들은 서류상으로만 처리했을 뿐 직접 대면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주무관들은 보통 1급에서 2급으로 분류된 이들을 직접 관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았다. 대부분 주기적으로 대면하여 관리를 해야 했으며 담당 의사와 논의하여 서비스 종료를 정해야 했다. 만나는 이들은 주로 공을 세운 학자, 스포츠 선수, 연예인,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얼굴이 알려진 유명 인사들이었다. 


그러니까 L은 H가 맡게 된 2급으로 분류된 자살 위험군이었다. L은 1세대 유전자 맞춤형 아이돌이었다. ‘알파벳’은 <당신에게 완벽한 아이돌을 선물하세요>라는 캐치 프레이즈로 유전체 편집 기술 회사와 대형 엔터테인먼트의 합작으로 태어난 아이돌 그룹이었다. 


인간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관심과 극단적 인구 감소로 인해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에 대한 가이드가 전 세계적으로 새롭게 제안되었고 한국 역시 생명 윤리법이 개정되면서 관심과 우려 속에서 ‘알파벳’이 탄생했다. 당연히 지금까지 시민 단체를 비롯해 많은 환경 단체들이 반발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를 하고 있지만 알파벳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소위 대박을 터뜨려 수많은 알파벳을 위한 쇼가 만들어졌고 그들의 생활은 일거수일투족이 기삿거리가 되었다. 건강한 몸과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모로 허점은 하나 없이 완벽할 것 같던 편집형 아이돌은 그러나 데뷔한 지 1년 반 만에 무너져 내렸다. 


5명의 멤버 중 한 명은 자살했으며 한 명은 아이러니하게도 유전 질병으로 무대 위에서 발작을 일으켰다. 결국 알파벳은 해체되었고 그때까지 알파벳을 떠받들던 미디어들은 알파벳의 데뷔와 해체에 이르기까지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각종 루머를 생산해냈다. 


L은 해체 된지 4개월 만에 자살 시도를 두 번이나 했으며 그에 따라 2급으로 분류되어 H의 관리 서비스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H는 처음부터 L을 맡고 싶지 않았다. 유전자 편집이라는 거부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집에 찾아갈 때마다 문 앞에서 서성이는 기자들이나 팬 혹은 피켓을 들고 나온 시민 단체 무리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매일 같이 집 앞에서 이러고 있으면 없던 정신병도 생겨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L을 이해하는 건 아니었다. 자살 시도를 했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L은 가볍기 이를 데 없었다. 


“헤이, 지금 날 뭉개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죠?”


L이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H를 향해 무심히 말했다. 


“…그새 독심술이라도 생긴 건가.”


“너무하네. 가끔은 거짓말이라도 해주면 좋잖아요.”


“잡담은 그만하고 상담에 성실히 임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제야 L이 소파에서 반듯이 일어나 앉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냈지?”


“가끔은 죽고 싶고, 가끔은 살고 싶고, 가끔은 걷기도 했고…. 대부분은 누워서 지냈어요.”


“멤버들은 만나고 있나?”


“아뇨. 걔들은 나 같지 않으니까요. 집으로 돌아가서 잘 살고 있을 거에요. Y는 대학에 가고, B는 배우 일을 준비한다고 들었는데….”


“연예계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을 생각이야?”


“완벽하지 않은 유전자 편집 아이돌은 어딜 가나 괴물이죠. 우릴 두고 떠들어 대는 기사나 뉴스 못 봤어요? 테러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그런 면에서 B는 멘탈이 대단하죠.”


“그럼 부모가 있는 미국으로 갈 생각은 없어?”


“낳아만 준다고 부모가 아니죠. 자신의 DNA 제공해 줬다고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하는 부모한테 정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알파벳을 만들기 위해 높은 경쟁률을 뚫고 부모 유전자 콘테스트가 열렸었다. 거기에 뽑힌 부모는 배아 편집권을 넘겼고 한 명의 완벽한 아이돌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배아들의 편집이 이뤄졌다. L의 부모는 모두 미국에 터전을 두고 있는 유명한 과학자와 의사였다. 이미 L 외에 두 명의 형제가 더 있었고 L은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아이돌을 하기 위해 한국에서 있었기 때문에 부모에 애정이 많지 않았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없어?”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아이돌 말곤 뭘 위해서 태어난 건지도 모르겠는데. H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이었어요?”


“뭐?”


“나 싫어하잖아요. 인구소통 어쩌고 저쩌고에서 나온 사람 치곤 적대감이 느껴져요. 원래 이런 건가 싶었는데 아니잖아요. 소통하고 공감해 주는 거 못하잖아요. 이 일, 적성에 안 맞는 거 아니에요?”


“적성에 맞는 일 하는 사람 몇 없어. 나랑 하는 거 싫으면 정식으로 담당자 변경 신청해.”


“아뇨…. 맘에도 없는 위로랍시고 공감해 주는 것 보다 훨씬 나아요. 손은 왜 그렇게 된 거에요?”


L이 H의 의수에 손을 가리켰다. 의수는 인간의 피부에 가까운 특수 재질로 만들어졌고 안에 수많은 신경 회로까지 재현되어 실제로 가까이서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손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부상 당했어. 오늘 따라 나한테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부상? 보통 사람이면 부상이라는 표현 보다 다쳤다고 할 텐데…, 전엔 무슨 일 했어요?”


“쓸데 없이 날카로워선.”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봐줘요.”


“특별한 날?”


“내 생일이에요. 역시 모르셨구나.”


아, 그러고 보니 문 앞에 ‘네가 태어난 건 내 행운이야.’라는 문구의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던 팬들이 떠 올랐다. 


“…군인이었어. 달 탐사 떠났다가 부상 당했어. 그 후로 돌아와 수술하고 다른 일을 시작한 것 뿐이야.”


“와…. 군인이라니 역시 잘 어울려요. 중국이랑 전쟁 날 뻔 했던 그 사건 맞죠? 세상에 그때 달에 계셨어요? 엄청난 분이었네요.”


“명령에 따랐을 뿐이야.”


“어쩌다 여긴 온 거에요? 인구소통 어쩌고 저쩌고에 온 것도 명령에 따른 거에요?”


“더 이상 군에 있고 싶지 않았어. 달에 가는 건 더 싫었고….”


“하고 싶은 건 없었어요? 아직 젊잖아요.”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어.”


“우리 꽤 비슷한 점이 많네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어떤 사람들은 내가 인간이 아니래요. 만들어진 괴물이라나 뭐라나. 내가 만들어 달란 것도 아닌데. 완벽한 유전자라니 그런 게 있을 턱이 없잖아요. 성경에 보면 신에게 도전을 한 인간들이 어떻게 되는 지 나오죠. 하늘에 닿기 위해 바벨탑을 쌓다가 흩어져 언어가 달라진 인간들이 나오거든요. 근데 신이 흩어지게 한 것도 무색하게 인간들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죠. 게다가 우리한텐 번역기가 있잖아요. 인간들은 또 다시 바벨탑을 쌓아 올리겠죠. 난 내가 인간에게 내려진 벌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마음이 조금 편해요. 한 방 먹인 것 같아서. 그러니까 더 이상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영원히 오류로 남아 있고 싶달까.”

H는 녹음 버튼을 껐다. 상담 기록을 위해 녹음을 했지만 오늘 보고서엔 쓰지 못할 이야기가 많았다. 


“…오류라고. 영원한 오류란 건 없어. 내 팔 말이야. 칩을 이식해서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아. 그전엔 절단하면 그만이었지. 팔이 없이 사는 건 오류가 되지 못해. 당장 몇 년 후에 또 다른 유전자 맞춤형 아이돌이 나올 거야. 그때는 좀 더 완벽해 질지도 모르지. 저 밖에서 인간 윤리에 배반 된다면서 시위하던 이들이 팬으로 돌변할지도 몰라. 넌 오류가 아니라 바벨탑의 주춧돌 정도겠지.”


“지금 나 위로해 주는 거에요?”


L이 싱긋 웃어 보였다. 


“솔직히 거부감이 들긴 하지만…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 그게 니 잘못도 아니고.”


“하긴 인간은 이미 하늘이 아니라 달까지 갔는데 말이죠. 저도 달에 가보고 싶네요.”


“민간 우주 항공 업체를 통해서 라면 언제든 갈 수 있잖아. 벌어 둔 돈이 그 정도는 될 텐데.”


“크크. 유머라는 걸 아예 모르는군요. 진지한 게 매력이시죠.”


“그만둬. 오늘 상담은 이 정도로 해두지. 더 이상 자살하고 싶지 않아졌다는 말, 꼭 지켜.”


“으음. 역시 달에 갈 때까진 미뤄두는 편이 낫겠어요.”


H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휴대용 페이스 스캐너를 꺼내 들었다. L이 입꼬리를 올리고 활짝 미소 지었다. H가 L의 얼굴을 찍었다. 패드에 연결된 스캐너는 몇 초 동안 로딩 후 인식된 결과를 내놓았다. 빅 데이터를 통해 얼굴 사진만 가지고도 감정을 분석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짓고 있는 표정과는 상관없이 감정을 분석해 주는 데다 정확도가 높아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었다. 


H는 패드의 인식 결과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 H는 결과를 승인해서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내 웃음은 진짜였어요?”


“…그건 말해 줄 수 없어. 알잖아.”


“페이스 스캐너 때문에 사진 찍는 것도 스트레스였죠. 시중에 나와 있는 건 가짜도 많았는데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그거 가지고 사진 분석 하는 바람에 가짜 웃음이니 어쩌니…. 가뜩이나 사진 찍을 때 웃는 것도 곤욕인데 그게 가짜 웃음이면 어떻고 진짜 웃음이면 어떻다는 건지. 자기들은 회사에 나가서 진짜로 웃나.”


“아이돌도 힘들겠군.”


“뭐 적성에도 안 맞는 일 하는 분도 계신데요.”


“이만 가봐야겠어.”


“다음에 봐요.”


H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집 앞엔 여전히 몇 몇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었다. H에게 무슨 말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기다렸던 기자들이 달라 붙었지만 H는 묵묵부답으로 자리를 떠났다. 


H는 차에 올라타기 전 울타리가 높은 저택을 슬쩍 뒤돌아봤다. 창문 가에 L의 모습이 언뜻 보이는 것도 같았다. H는 L이 살고 있는 저곳이 또 다른 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L은 달에 가고 싶다고 했지만 이미 달 속에 있었다.

  



*작중에 등장하는 조직과 나라는 실제 상황이 아니라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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