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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Apr 06. 2020

강남의 학교에서는 독후감을
어떻게 가르칠까요?

스몰 스텝으로 독후감 쓰기

내가 가르치고 있는 이 지역의 학교들은 대부분 필독서가 정해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수행 평가로 써내거나 아니면 독서교육 종합시스템에 올리도록 학교 차원에서 점검을 한다. 물론 안 하고, 안 내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떻게 하든지 간에 써서 낸다.    

   

오늘도 학교에서 이번 주까지 수행평가할 건데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 하냐고, 그거 왜 꼭 쓰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민선이가 툴툴거리며 왔다. 학교 선생님이 유인물로 읽을거리를 내줬다며 가져온 것이 헤르만 헤세의 <나비>였다.      



<나비>는 나비 잡기에 흠뻑 빠진 ‘나’가 이웃집 아이 에밀에게서 내가 잡은 나비에 대해 혹평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에밀이 점박이 나비를 가졌다는 소문을 듣고 그 아이 방으로 가 점박이 나비를 훔쳤지만 도로 제자리로 갖다 둔다. 하지만 이미 점박이 나비는 산산조각이 나버린 상태다.  

    

어머니께 사실을 말씀드리고 에밀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지만 에밀은 ‘나’를 경멸한다. 한번 저지른 일은 어떻게 해도 바로잡을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채집했던 나비를 손으로 비벼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순진한 ‘나’가 유혹에 못 이겨 잘못을 저지르나 점박이 나비 사건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해 가는 이야기이다.  

      

이런 심심한 내용인데 이걸로 뭘 쓰라는 건지, 도대체 무얼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민선이에게 『왕경』을 쓴 손정미 작가에 대해 말해줬다. 작가는 삼국이 통일되기 직전의 수도 왕경(경주의 옛말)에서 펼쳐졌던 순간들을 『왕경』의 이야기 속에 사실적으로 잘 버므려 냈다.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위해 2년 동안 치밀한 조사를 거쳤다고 하는 데 70% 정도의 사실과 작가가 준비한 자료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글 쓰는 게 도저히 엄두가 안 나면 손정미 작가처럼 자료를 지혜롭게 활용해서 쓰라고 조언을 했다. 책의 내용에 근거해서 그걸 잘 이용해 쓰라고 ‘활동지’를 나눠줬다.   

   

글을 안 써본 친구들은 처음부터 완결된 독후감을 써내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사실 글을 잘 쓰는 학생들도 글 쓰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몇 년 전 학교에서  나눠줬던 독후활동지였다. 독후활동지에 소개된 것처럼 단계별로 써보게 했다.  크게  총 두 단계로 구분 되어 있고 각 항목마다 또 작은 항목으로 나눠줘 있다. 이처럼 글쓰기도 스몰스텝으로 작게 여러 단계를 거쳐서 쓰면 어렵지 않게 한 편의 글을 써낼 수 있다.       


출처: http://blog.daum.net/kutc22/161


최근에는 써내는 형식이 바뀌었지만 예전에 쓰던 형식이 아이들이 독후감 쓰기에 수월해서 즐겨 사용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전까지도 썼던 형식은 아래와 같다.

주어진 열 권 책 중 한 권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인데


첫 번째가 책의 기본 내용을 파악하는 단계이다.  

1.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를 구체적으로 적는” 항목이다.

 5줄로 150자 이내로 쓴다.(학원 선생님이 억지로 시켜서 쓴다고 적는 아이도 있다.)     


2.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구절과 그 이유를 쓰시오”인데 8줄로 200자 조금 넘게 쓴다.

인상 깊은 구절을 찾고 그 이유에 대해 쓰다 보면 한 두 단락은 너끈히 쓸 수가 있고, 이 활동을 통해 책을 좀 더 꼼꼼히 읽게 되는 장점이 있다.      


3.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과 그 이유를 쓰시오”. 이 항목은 아이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글을 쓰는 학생의 현재의 생각을 읽어낼 수가 있어 논술 수업할 때 더 친밀한 느낌이 들게 한다.


두 번째가 줄거리 요약 및 감상의 단계이다.

책의 줄거리와 책을 읽고 난 감상을 처음(5줄 내외), 중간(18줄 내외), 끝(5줄 내외)으로 구분하여 작성한다.


다음은 민선이가 그 형식에 맞춰서 쓴 글이다. 유려하게 잘 쓴 글은 아니지만 민선이 스스로 만족해했다. 다 쓰고 나서는 “저 오늘 너무 잘한 거 같지 않아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글 쓰는 데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출처: "신동중학교 독후활동지"에 쓴 글입니다~^^


     

아니, 좀 전에는 죽어도 못 쓰겠다며 엄살을 부리더니, 잘 썼네. 이렇게 글밥이 긴 글을 쓸 수 있으면 나중에는 정말로 양질의 글을 써낼 수 있지 하며 칭찬을 듬뿍해줬다.  

 

민선이는 앞 뒤 합해서 1250자 정도의 글을 써냈다. 물론 문장의 표현력이나 완결성은 조금 부족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적절히 잘 나타냈다. 미약하더라도 완성된 글을 한 편 써냄으로써 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덜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한 편의 글을 써보는 경험은 글쓰기에 자신감은 물론 다음 글을 써낼 수 있는 기폭제로써 작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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