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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하이커 Oct 01. 2023

삶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그것도 여러 번에 걸쳐...

포르투갈 - 마데이라섬, 새로운 여행의 시작

한 참 들떠 있던 마데이라 여행일 새벽에 이지젯으로부터 갑작스러운 항공편 취소 이메일이 날아왔다. 역시 이지젯이 이지젯질 하는구나 하며 부랴부랴 대체 항공편을 알아보니 다음날 새벽 브리티쉬 에어웨이 편이 시간상 가장 가까운 항공편이었다. 두 달이나 준비해 온 여행이어서 혹시라도 이것마저 놓쳐 버릴까 싶어 부리나케 예약을 마치고 이지젯 항공사를 향한 분노를 다스리며 하루를 공으로 보냈다.


이지젯 항공편의 취소로 뜻하지 않게 가장 비싼 항공권을 구매하게 된 것이며 사용도 못하고 하루 비용을 지불하게 된 숙소와 렌트차량도 억울하긴 했지만 가장 속이 쓰린 것은 그러지 않아도 짧은 여행을 어처구니없이 하루 손해 보는 것이었다.


이래저래 분노는 가라앉혔지만 혹시나 또 취소 이메일이 올까 싶어 밤새 잠을 설친 후 이른 아침 히드로 공항을 경유해 마데이라의 푼샬로 향했다.


고요해 보이는 마데이라 섬 상공. 구름 밑으로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마데이라 섬의 푼샬 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 중 하나라더니 빈 말이 아니었다. 1964년에 오픈 시 겨우 1600m세계에서 가장 짧은 활주로를 가진 공항들 중 하나였는데 70년대  번의 큰 항공 사고를 겪은 후 증축 공사를 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푼샬 공항은 여전히 세계에서 제일 위험한 공항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도착하는 날은 갑작스러운 돌풍 때문에 착지 시도를 세 번이나 실패하고 급상승하길 반복하다 네 번 만에 가까스로 착지에 성공했다. 두 번째 시도까지만 해도 농담까지 하며 센 척하던 몇몇 승객들도 세 번째 시도 때는 숨소리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네 번째까지 실패하면 포르투갈 본토로 회항하겠다는 기장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는 듯했다. 네 번째 시도만에 착륙에 성공하자 비행기 안에서는 승객들이 엄청난 환호성을 질렀다.


마데이라를 같이 누빌 렌트 차량

어렵사리 도착해서 미리 예약해 놓은 차를 렌트하러 갔는데 Seat Arona가 준비되어 있었다. 오르막길이 많아 제일 작은 차보다 한 단계 큰 차를 렌트했더니 생각보다 차폭이 넓었다. 렌트 비용은 하루 100유로 (약 14만 원) 정도에 휘발유는 Full-to-full 원칙으로 차량 반납 전에 가득 채워서 반납하기로 했다. 우리 차에는 없는 후방센서가 달려있어 후진할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러 나왔다.


마데이라는 VE로 시작하는 고속도로급 도로와 ER로 시작하는 국도로 연결되어 있는데 운전 중 빛을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터널을 자나야 하고 터널과 터널 사이에는 수많은 회전 교차로가 존재한다. VE나 ER로 시작하는 이름이 붙은 도로만으로는 목적지까지 가기 쉽지 않기 때문에 30% 이상의 경사가 있는 골목골목을 구불구불 돌아다녀야 할 경우가 많다.


내비게이션이 영혼 없이 안내하는 길 중에는 가드레일도 없이 차폭보다 겨우 한 뼘 정도 넓은 도로를 낭떠러지 따라 올라가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출발 전 도로의 모습을 구글맵으로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둘이서 먹을 빠옐랴를 주문했더니 이런 비주얼의 예술품을 내놓았다.

푼샬 공항에서 한 시간 정도 운전해 칼례타(Calheta)에 있는 AirB&B 숙소에 도착하였다. 계획한 일정을 시작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근처 레스토랑에서 빠엘랴(Paella)를 주문해 놓고 다음날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여행을 계획하기로 했다. 오래 걸리지 않아 주문한 빠엘랴가 나왔는데 그 위엄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명 이상만 주문할 수 있다는 빠엘랴는 접시 가득 해물이 올려져 있었다. 도대체 밥은 어딨나 싶었는데 해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뿐 다 먹기 힘들 정도로 바닥에 가득 깔려 있었다. 커다란 게의 집게발을 부수기 위해 작은 망치를 내어 주었는데 능숙하지 못한 망치 사용 때문에 파편이 여기저기 튀어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칼례타는 푼샬 같은 큰 도시가 아니라서 도시 내에 볼 것은 없지만 마데이라의 서쪽을 여행하기 위한 근거지로 알맞은 곳에 위치해 있다. 숙소와 레스토랑들이 항구 주변에 오밀조밀 모여있고 항구 주변으로 약 여섯 개의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다. 그중에 네 곳을 이용했고 대부분 높은 수준의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





사진 촬영을 좋아한다면 Fanal 안개 숲을 지나칠 수 없다.

도착 다음날의 일정은 Fanal 안개숲에서 시작을 했다. 안개숲이라고는 하지만 Fanal 숲 안개의 정체는 사실 구름이다. 가파르디 가파른 산을 운전해 올라가니 구름에 파묻힌 고목들의 숲이 나왔다. 정상에 위치한 구릉에는 소들이 자유롭게 방목되어 있고 구름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고목들은 그로테스크하기 그지없었다. 커다란 구름이 지날 때마다 판타지스러운 풍경이 온몸을 감쌌다. 아무래도 높은 산 위인 데다 구름 속이라서 기온이 많이 낮았다. 산밑의 더운 날씨를 생각하고 반바지 차림으로 올라갔다가 크게 후회를 했다. 기괴하게 자란 고목들은 서로서로 널찍히 떨어져 있어 사진을 업으로 혹은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방문을 해야 하는 포인트들 중 하나다.


이곳은 차가 없이는 올 수 없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주차할만한 공간이 거의 없다. 그래서 도로 옆으로 주차를 해야 했는데 도로 옆으로 차 한 대는 충분히 주차할만한 넓은 공간이 있었지만 그 뒤로는 바로 천길 낭떠러지이기 때문에 차에 탔다 내렸다 하기를 몇 번이나 거쳐서 주차를 마쳤다. 주차하는 동안 맞은편 차선으로 소떼가 지나가고 있었고 그 뒤를 자동차들이 줄줄이 따르는 모습이 무척 생경스러웠다. 반바지 차림만 아니었더라도 이곳에서 제대로 된 하이킹을 하고 내려가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너무 추웠다. 뿐만 아니라 이 날은 계획한 방문지가 여러 곳 있었다. 해가 높이 뜰 무렵 안개숲을 나와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Ribeira da Janela
대략 150m쯤 되는 암흑의 터널을 지난 후 낙석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세기말적 풍경을 만났다.

안개숲에서 나와서 향한 곳은 Ribeira da Janela이었다. 이곳은 자갈이 무성히 깔린 해변에 우뚝 서 있는 기암이 절경인 곳이다. 그중에서도 높다란 바위에 바늘귀 같은 구멍이 있는 가느다랗고 높은 바위는 이곳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다. 이곳은 주차공간이 넓어 차로 이동하기 편리하다.


자갈밭 위에선 바람이 심하게 불어 제대로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었지만 하늘에 뜬 구름들은 신기할 정도로 고요하게 움직여 묘한 기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방문객이 많이 없는 한적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 끊어진 폐도로로 향하는 암흑의 터널을 발견했다. 용기를 내어 어두컴컴하고 긴 터널을 통과하고 나니 낙석으로 아스팔트 도로가 완전히 파괴된 세기말적 풍경이 펼쳐졌다. 아무도 찾지 않는 폐도로에서 한참을 놀다가 다음 목적지인 Seixal로 향했다.


Seixal의 자연 풀장. 사용료는 대자연이 내준다.

Seixal에는 화산활동에 의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풀장과 검은 모래사장이 유명하다. 우선 자연 풀장에 발을 담고 한참을 놀다가 검은 모래사장으로 가려는데  고속도로에서 나들길을 잘못 들어 원래 목적지인 동쪽이 아닌 서쪽으로 가게 되었다.


Porto Moniz의 상용화된 자연 풀 (Pool)

덕분에 검은 모래사장 대신 Porto Moniz에 도착해 버렸다. 이곳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풀장이 유명한 곳인데 Seixal과 달리 상용 풀장으로 재탄생시키고 입장료(3유로)도 받는다. 이곳에서 두 시간 정도 물장구를 치다가 다음 목적지인 Garganta Funda 폭포로 향했다.


Garganta Funda. 절경의 폭포는 말라서 볼 수 없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에서나 볼 법한 풍경을 만났다.

이곳으로 가는 길은 정말 악몽과 같았는데 가드레일도 없는 도로가 산을 따라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데다가 도로 너비도 차폭보다 겨우 한 뼘 정도 넘는 도로였다. 도로 너비를 확인하려고 오른쪽 차문을 열었다가 수백 미터 낭떠러지가 보이자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지간하면 일방통행 도로였다 해도 나 같은 소심 운전자는 접근도 안 했으려 만 이 도로는 자그마치 양방향으로 통행을 해야 하는 도로였다. 행여 마주 오는 차가 있다면 낭떠러지 길을 몇 백 미터 후진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 번 들어선 길이라 돌아가지도 못하고 끝까지 올라가긴 했는데 정말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무서운 경험이었다.


도착 후에는 간담이 서늘했던 경험을 했던 기억이 사라질 정도로 가치 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더욱이 저녁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고 수평선 위에 놓인 햇빛이 유화로 그려진 풍경화만큼이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물이 말라서 Garganta Funda 폭포의 절경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산 위로 펼쳐진 넓은 들판과 덩그러니 놓인 집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하루 만에 돌아다니기엔 너무나도 많은 장소들이었지만 이지젯의 횡포로 잃은 이틀을 만회하기 위해 새벽부터 움직여야만 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는 않았지만 B&B 숙소로 돌아와 숙소에서 같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마데이라의 특산물인 흑갈치 요리인데 나는 이렇게 치즈로 범벅을 한 요리는 잘 믿지 않는다. 신선한 재료라면 이렇게 치즈에 감추고 싶을까 하는 마음에서. 역시나 치즈 때문에 해물의 신선도와 식감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B&B 숙소 주인의 따뜻한 환대와 친절함에 대한 보답은 이만하면 되었으리라. 내일은 조금 더 제대로 된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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