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하이커 Oct 03. 2023

사람이 떠난 마을, 외로움이 지킨다

포르투갈 - 마데이라섬, 검은 모래사장과 폐허 마을

Seixal의 검은 모래사장


본격적인 여행 3일 째는 첫날 가려다 실패한 Seixal의 검은 모래사장에서 시작을 했다. 모래가 검다는 것 때문에 많이 알려진 곳이긴 하지만 한국에도 화산섬이 있고 그 때문에 검은 모래사장도 몇 군데 있으니 모래 색깔만으론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해안을 따라 우뚝 솟아 있는 산들이 어우러진 해안 경치는 감탄할만했다. 이곳에는 서핑을 하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바위로 둘러싸인 어느 자연풀 안에서는 서핑 강습도 이루어지고 있었고 커다란 밴에 각종 서핑 장비를 준비해 두고 일일 서핑 교실 같은 걸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놀이를 하기에 이상적인 모래사장이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서 수영을 목적으로 물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서퍼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우리는 가방에 먹거리를 잔뜩 넣어 다니고 있는 중이었기에 불필요한 금전지출은 피하기로 했다. 방파제 한편에는 유독 파도가 심하게 부딪쳐 부서지는 곳이 있었는데 파도가 부서지는 순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우리도 한참을 기다리다 파도 배경 사진을 찍었지만 늘 타이밍이 한 컷 비껴 나서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물벼락만 제대로 뒤집어썼다.


검은 모래사장 해변은 대체적으로 고요한 분위기였고 몇 그룹의 서퍼들 말고는 방문자가 많지도 않아서 크게 눈치 보지 않고 드론을 꺼내서 날릴 수 있었다. 그래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우리 머리 위에서 근접 촬영을 하거나 방파제 넘어 먼 곳을 촬영하였는데 서핑하는 사람들이 젊은 층이라 그런지 불편해 하기는커녕 관심을 많이 보였다. 어려 보이는 학생 하나가 다가와서 자신의 서핑 모습을 비디오로 좀 찍어주면 안 되겠냐 물었다. 내 드론 운영 능력으로는 서핑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찍어줄 순 없고 위에서 안전한 거리를 두고 촬영해 주겠다고 하니 무척 좋아했다. 덕분에 준비해 온 배터리를 모두 소진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Gabo Girao의 Skywalk 전망대

다음 행선지는 Gabo Girao라는 Skywalk 전망대인데 마데이라 남쪽을 전망할 수 있는 높은 지역에 위치해 다. Gabo Girao는 580m에 달하는 가파른 절벽으로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이 솟은 절벽 중 하나로 꼽히고 유럽에선 가장 가파른 절벽이라고 한다. 이곳의 Skywalk 전망대는 미국의 그랜드캐년이나 부산의 오륙도에 설치된 Skywalk와 비슷한 설계를 따르고 있다. 바닥은 유리로 되어 절벽 아래를 볼 수 있지만 큰 긴장감은 없다.


부산의 오륙도 Skywalk와 비교하자면 특별히 크거나 넓지 않았지만 절벽의 높이가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이곳의 입장권은 입구 맞은편 자동판매기에서 2유로에 구입할 수 있었다. 이곳은 칼례타와 푼샬의 중간쯤 위치해 있어 한 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찾아왔는데 동선 내에 연결할 수 있는 다른 여행 포인트가 없어서 아쉬웠다.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엄청나게 고생했었는데 알고 보니 Skywalk 가까운 곳에 신설한 유료 주차장이 있었다. 내비게이션에 주차장이 업데이트되어있지 않아 몰랐던 것이다.

Nossa Senhora de Fatima 채플 (왼쪽), 채플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순례하는 사람들이 저 뒤로 보인다 (오른쪽)

이곳의 또 다른 볼거리라면 절벽에서 가까운 언덕 정상에 Nossa Senhora de Fatima 채플이 있는데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수백 개의 계단을 오르면서 기도를 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 하는 모습이 마치 불교의 오체투지 순례처럼 보였다.




Sao Jorge의 폐허 마을

다음으로는 Sao Jorge에 위치한 폐허 마을을 찾아갔다. 이곳은 공식적인 마데이라 관광지 리스트에서는 찾을 수가 없는 곳이다. 아마도 관광지로 개발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기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해외여행 전문 블로거들의 글에는 자주 언급되는 곳이기에 한 시간 넘게 운전해서 이곳을 찾았다. 차가 없이는 이곳에 갈 방법이 없다. 이 폐허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어 포르투갈어로 된 웹사이트를 자동번역해서 알아낸 것은 이 마을이 대략 16세기에 지어져 20세기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왜 사람들이 떠났는지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자갈밭 해변과 주민들이 떠나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아치형 게이트가 고즈넉하다. 돌로 만든 이 아치형 게이트가 이곳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게이트는 마을에서 자갈해변으로 연결되는 관문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자갈밭 해변엔 관광객들이 올렸을게 분명한 돌탑들이 곳곳에 쌓아져 있다. 이 폐허 마을로 향하는 도로의 입구에는 새로 지은 듯한 엄청난 규모의 레스토랑과 야외 풀장이 있다. 해변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저런 야외풀장을 짓는 걸 보면 이 자갈해변은 수영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이곳은 마을 뒤로 솟아있는 얕은 산을 오르는 하이킹 코스가 지역민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듯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폐허 마을과 바다의 조화가 절경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이킹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이킹 코스로 풀이 많이 자라 있어 비가 온 후의 하이킹이 안전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런 풍경은 맑은 하늘 아래서 봐야 할 것 같았다. 더욱이 폐허 주변에 차려진 간이 카페에서 풍겨 나오는 커피 향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마침 비가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아서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와 케이크를 먹은 후 정성 들여 고층 돌탑 하나를 쌓아 올리고 해지기 전에 다시 칼례타로 향했다. 




크게 만족했던 Manifattura Di Gelato 레스토랑에서 칼례타의 마지막 저녁을 먹기로 했다. 칼례타에 있으면서 두 번 찾은 레스토랑은 이곳밖에 없다.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식전 요리로 새우 수프를 시켰다. 해산물 수프를 먹을 때는 마르세유에서 먹었던 해산물 수프가 내 기대치의 기준점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평판이 나쁘지 않은 음식이었음에도 내겐 그저 그럭저럭 좋았다. 하지만 메인으로 주문한 Sea Bass요리는 역시 감탄할만했다. 전날 시켰던 흑갈치 요리가 마늘과 레몬을 섞은 소스를 얹어 만들었다면 이날 드레싱 된 소스는 식물성 기름과 라임을 이용한 듯했다. 구운 감자를 로즈마리에 잔뜩 비벼내어 화기와 로즈마리향이 섞여 아주 아로마틱 해서 조금씩 아껴서 입에 넣을 정도였다.




이전 12화 오전엔 바다를 누비고 오후엔 산을 오르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