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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하이커 Oct 07. 2023

구름을 아름모아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포르투갈 - 마데이라섬, Pico-to-Pico 하이킹

새벽 5시 알람이 울렸다. 창밖은 깜깜하고 아직 무척 이른 시간이지만 나는 이미 30분 전에 깨어 있었다. 설레는 마음에 저절로 눈이 떠진 것이다. 누운 채로 알람이 울리길 기다리다 알람 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나서 준비를 시작했다. 전날 저녁 스낵바에서 포장해 온 음식과 요리로 아침을 먹고 재빨리 샤워를 마쳤다. 5시 45분이 되면 택시가 우리를 픽업하러 올 것이다. 지난밤 숙소 호스트에게 아는 택시 기사가 있는지 문의를 했다. Pico Arieiro에 갈 생각인데 믿을 수 있는 택시 운전사가 있으면 소개를 받고 싶었다. 다행히 호스트는 집 주변에 택시운전을 하는 이웃이 있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택시 운전사 이웃은 택시 앱을 이용한 예상 비용보다 많은 금액을 요구했지만 이른 새벽에 택시앱으로 택시를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중간 정도의 가격에서 타협을 했다. 아직 렌트한 차를 하루 더 쓸 수 있지만 칠흑 같은 새벽에 1800m가 넘는 산 정상까지 운전해서 올라갈 마음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하이킹은 왕복 코스가 아니라 편도 코스였다. 적어도 계획상으로는 그랬다.


Pico (영어의 Peak)는 산 봉우리를 나타내는 말로 Pico-to-Pico는 하나의 봉우리에서 다른 봉우리로 능선을 따라 이동하는 코스이다.  Pico-to-Pico라는 하이킹 코스의 별명은  영어권 사람들이 붙였을 것이다. 시작 지점은 1880m 높이의 Pico Arieiro이고 도착 지점은 1862m 높이의 Pico Ruivo이다. 보통은 동이 트기 전에 Pico Arieiro에 도착해 해가 뜨는 모습을 본 후 하이킹을 시작한다. 


이 하이킹을 돕는 투어 서비스가 있는데 동트기 전에 Pico Arieiro까지 밴으로 이동시켜 주고 정해진 시간에 Pico Ruivo에서 픽업해 주는 서비스이다. 비용과 편의면에서는 확실히 매력적인 서비스였지만 우리가 원하는 날짜에는 이미 예약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투어 서비스에 비해 두 배는 비쌌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일찌감치 문 앞에 나서서 택시를 기다렸다. 혹시라도 택시가 일찍 도착하면 어쩌나 싶어 조바심이 났다. 약속한 시간으로부터 10분이 지나자 우리의 조바심은 택시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꼭 15분을 채워 6시에 나타난 택시 안에는 파파스머프처럼 인상 좋아 보이는 택시 운전사가 앉아 있었다. 택시 운전사는 실제로 아주 친절했지만 15분 늦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어찌 됐건 택시가 왔으니 다행이었다. 우리를 안전하게 산 정상까지 옮겨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파파스머프처럼 인상 좋은 택시 운전사 아저씨는 한 마리의 거친 야수처럼 운전을 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엄청난 속도로 달리다 길을 건너는 짐승들을 만나 급정거하기를 몇 번 하자 우리가 탄 택시는 구름을 마주쳤다.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 구름 속을 달려 한참을 지나가니 조그만 회전 교차로가 나왔고 그곳이 정상이었다. 파파스머프 운전사는 우리의 복장을 걱정했다. 그가 보여준 바깥 기온은 3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산 정상의 기온이 낮을 거 같아서 넉넉하게 입고 왔다고 믿었는데 차에서 내린 바깥 날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추었다.

구름속에 갇혀 해돋이는 커녕 하이킹을 시작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아직 구름 속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비를 맞고 있는 셈이었다. 머리와 얼굴에는 빗물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고 그 빗물은 조금씩 얼기 시작했다. 실제 기온은 3도보다 훨씬 낮았을 것 같다. 만약을 위해 가져온 긴팔 셔츠와 두꺼운 양말을 덧 신고도 추위를 이겨내기 힘들었다. 우리는 가방 안에서 몸에 걸칠 수 있는 거라면 종이까지도 꺼내 걸쳤다. 이미 동이 틀 시간이 지났지만 구름 속에 있어서 아직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해돋이는 당연히 무산됐지만 하이킹마저 망처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시야 확보가 안 되는 상황에서 하이킹을 시도했다가는 조난당할 위험이 컸다. 7시가 넘어가자 기다리다 못한 몇몇 그룹이 줄지어 하이킹을 강행했다. 대부분 몸집만 한 배낭을 멘 전문 하이커들이었다. 우리가 낄 수 있는 대열이 아니었기에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산 정상에 있는 카페는 9시에 문을 연다고 했다. 그 카페 벽면에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그곳에 서 있으면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가까스로 공간을 찾아 벽 앞에서 두 시간을 꼬박 기다렸다. 카페 문이 열리자마자 카페에서 가장 따뜻해 보이는 것들을 주문해서 꽁꽁 언 손과 몸을 녹였다. 이 부분만 읽은 독자들은 마데이라가 그렇게 습하고 추운 곳인가 싶겠지만 산 밑에선 반팔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서도 더위에 허덕이고 있을 터였다. 7시에 하이킹을 시작하려 했던 우리의 계획과는 달리 10시가 넘도록 구름의 높이가 낮아지질 않았다. 11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에야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기에 우리는 그제야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섰다. 


4시간이 넘는 하이킹 동안 이런 풍경을 옆에 두고 걸었다.

Pico-to-Pico 하이킹이 두 개의 봉우리 사이를 이동하는 경로라 능선을 따라 걷는 평이로운 길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상은 끝없는 내리막길이었다. 이만큼 내려간다는 것은 어디선가 그 높이를 다시 고스란히 올라야 한다는 것이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다시 올라오기 힘든 곳까지 내려가서 기상이 다시 악화되면 큰일이 날 것이었다. 처음 두 시간은 주변 경치에 취해서 그런 걱정을 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를 감싸고 있던 구름들이 높이가 낮아져 이제 모두 내 발치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걷다가 때로는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기분으로 휴식을 취했다. 어느 아슬아슬한 다리를 건널 때는 구름이 오른쪽 발치를 타고 올라와 내 허벅지와 허리를 휘감고는 오른쪽 어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광경을 그려내기까지 했다. 하이킹을 시작한 지 두 시간 후에 확인한 GPS에 의하면 우리는 계획한 코스의 절반 정도를 온 상태고 아직 한 시간 정도 더 내리막길을 가다가 갑작스러운 급경사를 올라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 시점부터 구름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구름의 모습을 보니 계속 진행한다면 급경사 지점에서 다시 두꺼운 구름에 싸이겠구나 싶었다. 계속 진행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게 쉽지 않았지만 안전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결국 중간 지점에서 Pico Arieiro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되돌아가는 길은 내려올 때와 반대로 끝없는 오르막길이었기에 생각했던 만큼 험난했다. 


Arieiro 정상으로 돌아와 다시 카페에 들렀더니 반바지 차림의 단체 관광객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들은 전망대만 구경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라서 산 밑의 기온에 맞춰진 복색을 갖추고 있었지만 방금까지 눈썹밑에 하얀 얼음을 달고 있었던 우리에겐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다시금 따뜻한 토마토 수프로 몸을 녹인 우리는 택시를 불러 타고 Old Town으로 이동했다. 




마데이라의 올드타운. 현지인들에겐 올드타운이라는 명칭이 익숙하지 않다.

시내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쯤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계획했던 산 정상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고 싶었지만 산 밑의 따뜻함이 그리웠다. 시내에 도착하자 30도가 넘는 온도 상승에 거의 넉 아웃이 될 지경이었다. 여행 막바지에 몸 상해선 안된다는 일념하에 우리는 그늘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서점에 들어가 보거나 전통시장에서 이국적인 과일을 구경해 보기도 했고 백화점에 들러서 여행 기념품을 구입하는 등  나름 관광객 같은 모습으로 시내를 돌아다녔다. 백화점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백화점 물가에 긍정적으로 놀랐다.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의 가게들의 물가를 보고 백화점 물건들은 넘사벽이겠거니 했는데 웬걸 백화점 물가가 길거리 가게들보다 훨씬 낮았다. 덕분에 수작업으로 만든 동전 지갑이며 가죽 필통, 손목시계 같은 것을 잔뜩 사고도 과소비를 했다는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올드타운내 Zona Velha 지역의 유명한 벽화 예술

푼샬 올드타운의 Zona Velha라는 지역은 벽과 문에 그려진 그림들로 유명하다. 집집마다 페인팅된 그림들로 문을 장식해 뒀는데 그림의 퀄리티는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그림은 애들이 장난 삼아 그렸나 싶기도 했고 또 어떤 그림을 보면 여긴 뱅크시가 왔다 갔을까 싶기도 했다. 올드타운 곳곳에는 이 그림들을 사진으로 담아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우리도 사진첩 어딘가에 모아둘 요량으로 모든 그림을 찍어 보았는데 어림잡아도 100장은 넘어 보였다. 

Zona Velha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는 골목을 만날 수 있다.

푼샬 올드타운의 Zona Velha 지역을 골목골목 다니며 놀다 O Jango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을 찾았는데 이번 마데이라 여행에서 가장 최악의 경험을 제공한 곳이다. 그 많은 레스토랑 중에서도 왜 하필 이곳을 골랐을까 후회가 막심하다. 이 레스토랑은 가게 주인이 인도인인지 모르겠으나 전 직원이 인도계 (혹은 파키스탄계)이다. 포르투갈식 그릴 요리인 Espetada와 생선 요리를 시켰는데 식사 전에 나온 샐러드는 썰어 놓은지 족히 사흘은 넘어 보였고 생선 요리는 소금을 얼마나 넣었던지 짜서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Espetada 요리는 탄 듯이 잘 익혀 달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나왔다. 고기를 구운 상태를 차치하고라도 고기가 자동차 타이어처럼 질겨서 도무지 씹어 넘길 수가 없었다. 도무지 참을 수 없어 고기를 제대로 다시 구워 달라고 했는데 알겠다고 가지고 들어가서는 30분이 지나도 나오질 않는 것이다. 더 이상 허기가 지지도 않고 식욕도 들지 않아 그냥 가겠다고 했더니 종업원들은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이제 팁 받을 차례라 생각해서 터져 나오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나 본데 어림도 없는 소리다. 이런 특급 관광지에서 레스토랑 불만을 표시했다가 얼마나 여행을 더 망칠 수 있는지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그냥 일어설 뿐이지 마음 같아서는 음식값도 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미리 검색을 해 보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하기로 했다.


다음 날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고 유종의 미를 위해 최고의 레스토랑을 미리 검색하고 예약해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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