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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하이커 Oct 05. 2023

감탄력이 1 상승했습니다

포르투갈 - 마데이라섬, Sao Lourenco 하이킹

여행 4일째, 칼례타 숙소에서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푼샬로 이동하기 전에 Sao Lourenco 하이킹을 했다. Sao Lourenco는 마데이라섬 동북쪽으로 꼬리처럼 늘어진 아름다운 섬들이다. 하지만 갈 수 없는 마지막 두 섬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은 본섬과 연결되어 있으니 독립된 섬이 아니라 반도로 칭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루트를 따라 동쪽 끝 점을 찍고 돌아오는 총거리는 약 8km이다. 바람이 심하긴 하지만 대부분 평이한 길이라 들지 않게 걸을 수 있다. 하이킹 루트의 마지막 지점인 동쪽 끝 정상에선 갑작스럽게 가파라지는 언덕을 올라야 한다. 일부 지점은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할 정도이기 때문에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면 이 부분은 힘들 수도 있다. Sao Lourenco엔 주차장이 넓지만 워낙 방문객이 많은 곳이라 늦게 가면 자리를 잡을 수 없거나 하이킹 시작 지점에서 아주 먼 곳에 주차해야 할 수도 있다. 강한 햇살을 피하기도 쉽지 않으니 이곳에서 하이킹을 하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가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이곳은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 있기 때문에 차가 없어도 방문할 수 있다. 이 섬은 입구에서 1유로의 입장료를 받는다.


Sao Lourenco 섬은 나무가 없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희귀 식물들이 자라는 곳이라서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보호되고 있는 야생 조류의 서식지이기도 하고 푼샬 공항과의 거리도 가까워 드론을 날릴 수 없는 지역이다. 나는 마르세유에서 사진 몇 장에 20만 원 가까운 벌금을 낸 이후로 비행금지 구역의 확인을 절대로 게을리하지 않는다.

나무가 없는 섬이라 햇빛을 피할 곳이 많지 않다.
줄지어 언덕을 오르는 하이커들
Sao Lourenco 하이킹 코스의 끝 지점
Sao Lourenco의 오아시스. 정상으로 급경사를 오르기 전에 쉬어갈 수 있는 카페가 있다.

하이킹 코스를 소개한 글들이 예상한 왕복 시간은 2시간이었지만 우리는 5분마다 멈춰 서서 감탄을 하는 바람에 4시간이 넘도록 이곳에 발이 묶여 버렸다. 내가 가진 슈퍼 파워 중 하나가 감탄력인데 멋진 풍광을 보고 또 봐도 감탄의 마음이 끊임없이 우러나는 특수한 능력이다. 하이킹을 하면서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해 시간 확인 후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서는 사람의 감탄력이 1.0 정도라면 내 감탄력은 8.5쯤 된다. 그러니 이런 풍광을 지나면서 평균적인 감탄력 보유자들에 맞춰진 예상 시간 안에 하이킹을 마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이킹 코스의 동쪽 끝지점. 즉, 가파른 언덕이 시작되는 지점에 오아시스 같은 카페가 하나 있는데 하이킹 루트 내에서 유일하게 사용 가능한 화장실이 이곳에 있다. 카페에서 음식을 주문을 했더라도 화장실 이용 시에는 1유로를 내야 한다. 카페에서 쉬며 바라보는 풍경도 상당히 아름답기 때문에 별로 피곤하지 않더라도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길 바란다.


우리가 여행한 시기가 5월 중순이었는데 이날의 날씨는 하이킹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적당한 구름과 기온 덕분에 얇은 바람막이 점퍼 한 장으로 구름에 의해 갑작스레 낮아지는 기온과 세찬 바람 모두에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엔 그늘을 만들어줄 만한 나무가 전혀 없기 때문에 한 여름에는 꼭 햇빛과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세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원래 계획은 오전에 이곳을 걷고 오후에 다른 곳을 한 군데 더 들렸다가 푼샬에 예약해 둔 숙소를 찾아가는 것인데 하이킹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오후 일정을 생략해야만 했다. 더욱이 다음 날 있을 하이킹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기에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찌감치 휴식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초면에 무척 당돌했던 주인냥반
푼샬의 초호화 숙소 내부 (왼쪽), 정원 (중간, 오른쪽)
조그만 수영장도 갖추어져 있었다.

나머지 일정은 모두 포기하고 일찌감치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푼샬 숙소를 찾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부유층 동네의 고급 저택이었다. 이 숙소의 호스트와는 벌써 3일 전부터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소통을 해 왔었기 때문에 만나보진 못했어도 상당한 친밀감이 들었다. 우리는 호스트를 만나서 열쇠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호스트는 저택의 열쇠를 방탈출 게임하듯 꼼꼼히 숨겨두고 우리에게 획득 방법을 알려 주었다. 창살에 손을 집어넣어 편지함을 열고 작은 박스 안에 있는 열쇠와 함께 차고를 여는 리모컨을 획득한 주차장 문을 열 수 있었다. 자동문이 열리자 차를 4대나 주차할 수 있는 거대한 차고가 눈에 들어왔다. 차고에서부터 저택 안으로는 연결되는 계단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갔더니 정원에 수영장까지 딸린 데다 경치가 어마어마한 집이 눈앞에 펼쳐졌다. 호스텔 단독룸 하나도 얻기 힘든 비용으로 얻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호스트도 없는 집에서 우리를 반겨준 것은 보자마자 당돌하게 무릎을 탐하는 주인냥반이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몇 해 전에 장기 투숙하던 커플이 길거리에서 데려온 고양이라고 한다. 장기 투숙인들이 떠나고 호스트가 떠맡았다고 했다. 주인냥반의 건강상태로 보아 충분한 케어를 받고 있는 것 같았고 숙소의 호스트는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믿음이 한층 더 깊어졌다.


짐을 대충 풀어두고 호스트에게 감탄의 메시지를 보냈더니 수영장도 우리말고는 쓸 사람 없으니 아낌없이 사용하라고 했다. 해가 지면 물에 들어가기엔 쌀쌀하겠다 싶어 일찌감치 수영장에 들어가 석양이 지는 시간까지 수영을 했다. 한참을 물속에서 놀았더니 허기가 졌다. 푼샬에서의 첫 저녁 식사이기 때문에 좋은 레스토랑을 찾아보기로 했다. 구글 검색을 통해 제법 평점 높은 레스토랑을 찾아갔더니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구글은 더 이상의 도움을 줄 수 없어 보였다. 이 동네는 집들은 멋진데 레스토랑이 너무 없다. 배가 많이 고파서 더 걷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결국 좋은 레스토랑을 찾는 걸 포기하고 음식이 있을만한 곳은 어디든 들어가기로 했다. 마침 작은 스낵바가 근처에 있었다. 포르투갈의 스낵바는 과자를 파는 곳이 아니라 작은 규모의 식당을 말한다. 미리 준비되어 있는 음식 중에서 몇 가지 골라 담아 저녁을 먹었는데 시장이 반찬 노릇을 해서 푸짐하게 먹고 배를 채웠다. 디저트로 가게 주인에게 포르투갈의 전통 칵테일 요리인 Poncha를 만들어 줄 수 있냐고 했더니 당연하다며 직접 오렌지를 갈아 만들어 주었다. 만만하게 봤던 Poncha의 알콜도수는 꽤 높았다. 기계도 없이 오렌지를 간 가게 주인의 정성 때문에 무리해서 두 잔을 마셨더니 가벼운 어지러움증까지 느껴졌다. 덕분에 들뜬 기분으로 숙소에 돌아와 일찌감치 깊은 잠에 들었다.


다음 날은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이자 우리가 가장 공을 들여 준비한 pico-to-pico 하이킹을 하는 날이다. 우리는 새벽 5시 전에 일어나 깜깜한 새벽의 산길을 올라 1800미터 넘는 산 정상에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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