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하이커 Oct 09. 2023

하늘 가까이 꾸며 놓은 천상의 정원

포르투갈 - 마데이라섬, 푼샬에서 100%를 채우다

푼샬 시내 전경
시내 곳곳에 꽃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온전히 푼샬에서 보내기로 했다. 하이킹에 빠져 자연을 찾아다니느라 모르고 있었는데 푼샬엔 마침 꽃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푼샬의 많은 거리들이 꽃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고 꽃을 주렁주렁 단 여성들이 시내를 활보하고 다녔다. 아마도 푼샬에서는 일 년 중 가장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몇 주가 아닐까 싶다. 어쩐지 아직 본격적인 휴가 시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었다. 도시에만 머물 계획인 관광객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축제였을 것이다. 


푼샬의 대중교통은 편하고 비싸지 않다. 도시 내에서 굳이 렌트 차량을 이용해야 할 필요를 못 느꼈기에 우리는 마지막 날엔 대중교통만으로 이동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여행 전부터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우리는 푼샬을 떠나기 하루 전까지만 차량을 예약해 두었다. 따지고 보면 어제도 택시만으로 Pico Arieiro를 다녀왔기 때문에 하루 일찍 반납했었다면 100유로를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차를 가지고 조금 더 멀리 갔다 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운전성향과 좁디좁은 골목, 그리고 열약하기 그지없는 주차환경 때문에 푼샬에서의 운전이 결코 마음 편치는 않았을 것이기에 렌트 비용을 크게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일찌감치 차량을 반납하고 시내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곳저곳 돌아다녔다'라고 영혼 없이 쓴 글을 다시 읽고 나서 묘한 어색함을 느낀다. 도시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고 하는 말과 자연에서 산을 오르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는 말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도시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는 말은 갈 곳을 정하지 못해 하염없이 걷기만 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비해 하이킹을 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는 말은 치밀한 계획과 준비로 시간을 알차게 활용했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내가 정의한 대로 우리는 '도시를 이곳저곳' 정처 없이 걸어 다녔다. 이상하게도 산을 서너 시간 오르는 것보다 도시를 한 시간 걷는 게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 같다. 우리는 정처 없이 골목골목을 돌며 점심시간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린 것 같다. 




점심을 먹었던 스낵바 Bellas

평소엔 아침을 숙소에서 시리얼과 커피로 때우고 점심은 가벼운 샌드위치를 준비해 다니며 저녁만 풍성하게 먹었다. 돈을 아끼려는 것보다는 앉으면 2시간씩 소비하는 시간을 아끼려는 이유다. 오늘은 여행 마지막 날이라 점심과 저녁을 모두 음식점에서 먹을 요량이었다.


어제의 실수 (Zona Velha 주변 O Jango에서의 저녁식사)를 만회하기 위해 음식과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의 유명 블로거의 아티클에서 팁을 얻었다. 그렇게 찾은 점심 식사 장소는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이용할 케이블카 타는 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Bellas라는 스낵바였다. 다시 설명하지만, 포르투갈의 스낵바는 과자를 파는 곳이 아니라 한국의 간이식당 느낌의 음식점이다. 스낵바에 따라 퀄리티가 천차만별이지만 큰 기교 없이 좋은 재료와 엄마표 음식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서 미리미리 검색품만 판다면 식비를 절약하면서도 품질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우리는 참치 스테이크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생선 요리를 하나 주문했는데 역시 전문 음식 블로거의 평가대로 여느 레스토랑보다 나은 음식맛을 선 보였다. 후식으로 패션푸르트 치즈케익을 추천받아 먹었는데 부드럽고 중독적인 맛을 가지고도 결코 달지 않았다. 더블 에스프레소와 함께 스프라이트 두 병을 더 마셨음에도 총비용이 35유로 밖에 나오지 않아 흥겨운 마음에 두둑한 팁을 남기고 나왔다.




케이블카로 Monte 언덕을 오르면서 푼샬 시내를 전망할 수 있다.
Monte 궁전의 Tropical Garden (왼쪽, 중간)과 Toboggan이라는 썰매 (오른쪽)

우리는 Bellas에서 행복한 점심을 먹은 후 오후 스케줄의 하이라이트인 Monte 궁전으로 향했다. Monte 궁전으로 가기 위해선 왕복 18유로인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된다.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궁전 주변은 거대한 열대 정원 (Tropical Garden)으로 유명하다. 궁전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왕이 살았던 곳은 아니다. 18세기에 영국인 귀족이 이곳 (Monte)에 있던 교회를 사들여 성처럼 만들고 살았는데 1897년에 Alfredo Guilherme Rodrigues라는 사람이 다시 매입해서 궁전 같은 모습으로 재탄생시킨 후 호텔로 운영을 했었다. 이곳은 한동안 명성 있는 고위층 인사들의 휴양지로 널리 사랑받다가 1943년 창업주가 사망함으로써 호텔로써의 명맥이 끊겼다. 이후, 어느 금융기관에게 팔렸다가 1987년도에 Jose Manuel Rodrigues Berardo라는 사업가에게 매입되어 현재의 Monte Palace Madeira가 되었다. 지금 볼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Tropical Garden은 Jose Manuel Rodrigues Berardo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에 올랐다면 여기서 다시 다른 케이블카로 옮겨 타고 식물원까지 갈 수도 있다. Monte 궁전과 식물원을 모두 방문할 수 있는 번들 티켓을 살 수 있지만 우리는 식물원을 제외하기로 했다. Monte 궁전과 Tropical Garden만 돌아보려 해도 3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했다. Monte 궁전의 입장권은 12.50유로인데 이 입장권에는 마데이라의 와인을 마셔볼 수 있는 시음권이 포함되어 있다. 마데이라 와인은 알콜도수가 높고 당도도 상당히 높다. 오는 길에 레드와인을 한 병 사 오긴 했지만 내 입맛에 맞는 와인은 아니라서 내 와인 컬렉션을 장식하는 용도로 쓰일 것 같다. 


Monte 궁전의 열대 정원은 3시간이 아니라 하루 종일을 보내야 할 정도로 큰 규모의 정원이다. 정원이 이 정도 규모인데 명색이 식물원인 곳에 가면 도대체 얼마나 큰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였다. 이 정원에는 두 개의 인공 호수가 3십만 리터 용량의 물을 담고 있고 그 안에는 수많은 비단잉어들이 헤엄을 치고 있다. 한쪽에는 정확한 국적을 파악하기 힘든 동아시아 국가의 테마를 가진 정원도 있었다. 아마도 중국의 정원을 염두에 두고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정원의 설명문에 의하면 일본의 정원을 테마로 하였다고 한다. 부처님 상, 용상, 해태상 등을 골고루 섞어 놓고 조그만 연못에 빼곡히 풀어놓은 비단잉어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근대 유럽인들이 생각하던 동아시아의 이미지에는 한중일에 대한 뚜렷한 구분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


Monte 궁전까지 편도 티켓으로 올라갔다면 내려오는 길엔 Toboggan이라는 썰매 서비스를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나무로 된 탈 것에 바퀴가 달린 썰매를 남자 둘이 뒤에서 밀며 조종해 주는데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베니스의 곤돌라처럼 지역의 특색 있는 이동수단으로 홍보를 하고 있는데 의외로 이용료가 비싸다. 뿐만 아니라 푼샬 시내까지 내려가 주지 않기 때문에 썰매의 하차 지점에서 시내까지는 다른 이동 수단을 찾아야 한다.  




Fábrica de Santo António - 점원 뒤에 진열된 철제 쿠키 상자를 저렴하게 구매 가능하다.

푼샬 시내의 유명한 관광 포인트 중 하나는 Fabrica de Santo Antonio라는 가게이다. 이 가게는 Francisco Roque Gomes da Silva에 의해 1893년에 설립되었고 현재는 설립자의 6대째 후손들이 가게를 운영 중이다. 가게의 소품들은 1893년 설립당시부터 사용하던 것들이 많다. 그래서 가게 인테리어 자체가 아주 앤틱 한 느낌을 준다. 이 가게는 마데이라의 전통 과자를 만들어 파는 사업을 하고 있다. 마데이라 (혹은 포르투갈)의 전통 과자들은 우리나라의 약과와 비슷한 맛을 내는데 찐득한 달달함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큰 감흥을 줄 수 없는 맛이다. 관광객으로써 이 가게에서 꼭 사길 권하고 싶은 상품은 이 가게의 트레이드마크인 철제 쿠키 상자이다. 사진을 보면 진열장에 빼곡히 들어찬 쿠키 상자를 볼 수 있는데 이 철제 쿠키 상자만 따로 살 수 있다.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집에 잘 놓아두면 괜찮은 장식 아이템이 될 수 있다. 많이 가져와서 가족, 친구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주고 싶었는데 더 이상 짐을 늘릴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작은 사이즈로 하나만 들고 왔다. 




5 Sentidos에서 가진 마데이라 여행의 마지막 식사

저녁은 이번 여행 중 가장 고급일 듯한 5 Sentidos라는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이제 마데이라에서의 마지막 음식일 듯하여 다시 흑갈치 (Black Scabbardfish) 요리인 Filete de Espada와 Bella 스낵바를 추천해 줬던 블로거의 추천 메뉴인 Parrot fish를 주문했다. 패션 푸르트 소스를 얹은 흑갈치는 말 그대로 입에서 녹아내렸다. 입에서 녹는다는 표현은 으레 맛보다는 재료의 신선도를 표현하는 말이다. 표현 그대로 이 레스토랑의 식재료는 단연 최고였다. 와인과 함께 스타터로 수프를 추천받았고 통후추를 섞은 호박잼에 허브를 갈아 넣은 버터가 곁들여 나오는 빵을 주문했다. 식사 후에는 역시 패션푸르트를 이용한 디저트를 추천받았고 더블 에스프레소를 같이 마셨다. 이렇게 든 총식사비는 70유로 (10만 원). 레스토랑의 유명도 때문에 충분히 예상 가능한 가격이었다. 이곳은 이미 유명할 뿐만 아니라 테이블이 많지도 않아서 예약 없이 찾아가서 자리를 받긴 힘들다. 여행의 마지막을 아름다운 음식으로 기억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었다. 내일은 숙소에서 집주인 냥반에게 무릎을 내주고 석별의 정을 나누다 느지막이 공항으로 향할 생각이다.


팬데믹 동안 계획했다가 무산된 여행들이 네 번이 넘었기에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사뭇 남달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여행에 동반되는 모든 비용이 3년 전과 비교해 많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감당하기로 하였다. 이 번 여행에서 가장 많은 비용이 든 것은 이동수단이었다. 항공권, 차량 렌트, 택시를 비롯해 버스 이용료까지 합치면 전 여행비의 50% 이상이 이동에 쓰인 금액이다. 이동 경로를 꼼꼼히 계획하고 필요한 비용을 미리 계산해 두면 많은 여행비를 아낄 수 있다. 마데이라에서의 차량 렌트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택시 이용료와 잘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Uber와 비슷한 마데이라섬 전용 택시앱들이 있으니 이용후기를 잘 보고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 식비는 퀄리티 좋은 스낵바들을 잘 검색해서 가면 품질 좋은 음식을 레스토랑에 비해 반 정도의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여행 후 결산을 해 보니 이번 여행은 팬데믹 이전 여행들에 비해 반도 안 되는 기간에 거의 두 배 가까운 비용이 든 것 같다. 가성비를 꼼꼼히 따지는 우리에겐 역대급 지출이 발생한 여행이었지만 우리 인생에 남긴 임팩트 역시 역대급으로 컸던 여행이었다.         





이전 15화 구름을 아름모아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