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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하이커 Sep 04. 2023

아테네에서 새벽기차를 타면 천공의 성에 오를 수 있다

그리스 - 칼람바카

아테네에서 칼람바카(Kalambaka)로 가기 위해서 Larissa역에서 밤 11시 55분 열차를 타고 가다가 새벽 4시쯤  Paleofarsalos역에서 한 번 갈아타야 했다. 열차를 갈아타고 한 시간 정도 더 가니 칼람바카 역이 나왔다. 칼람바카 역엔 대기실이 있는 근사한 역사 따위는 없었다. 구멍가게만 한 문 닫힌 역사 앞 철로 위에 떨구어진 우린 2월의 새벽 기온과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하늘은 아직 칠흑처럼 어두웠고 지중해 기후라곤 해도 2월의 새벽 기온은 살갗을 뚫고 뼛속까지 전달될 지경이었다. 안타깝게도 역 주변에 가게라고 부를만한 곳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다 조그만 창고 크기의 채플을 발견했는데 이미 폐허가 된 지 오래되어 보였다. 채플의 문을 잠겄던 자물쇠는 누군가에 의해 파손되어 있었고 문 역시 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다. 저곳에 들어가면 바람이라도 피할 듯하여 들어갔더니 이미 실내를 차지하고 있는 여행객이 둘이나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반쯤 부서진 벤치 위에 누워있던 백인 청년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는 헤드셋을 쓰고 무척 흥겨운 듯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 근처에는 일본인으로 보이는 소년스러운 모습을 한 또 다른 청년이 있었는데 백인 청년과 일행은 아닌 듯했다. 그 둘은 메테오라까지 걸어서 올라갈 예정이라고 했다. 사실 우리도 이때까지는 걸을 생각이었다. 


내 친구의 동의를 얻은 것은 아니라서 '나'도 이때까지는 걸을 생각이었다고 말하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친구 녀석은 아직도 우리가 어딜 가려는 건지 짐작도 못하고 있는 듯했다. 나야 이런 여행 스타일이 몸에 익어 있어 상관없었지만 친구 녀석은 먼 곳까지 와서 안락한 호텔방을 놔두고 새벽 기차를 타고 이런 곳에서 고생을 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친구를 부서진 건물 안에 두고 몸을 녹일만한 가게가 있는지 찾아보러 나섰다. 구글 지도에 의하면 0.5km 정도 떨어진 곳에 일찍 문을 여는 조식 카페가 있다고 하니 진짜 문을 열었는지 보고 올 요량이었다. 어두컴컴한 길을 한참 따라 올라가 보니 다행스럽게도 진짜로 불빛이 훤하게 켜져 있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친구를 데리러 역으로 향하다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발견했다. 이런 계절에 패키지여행상품을 이용하지 않는 여행자가 칼람바카에 몇이나 된다고 저렇게 이른 시간에 나와 있을까 싶다가 애기나 섬에서 만났던 택시운전사와 같은 좋은 거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말을 먼저 걸어 보았다. 이번 택시 운전사는 노년의 남성이었다. 그는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힘들게 소통을 시도하다가 무심결에 독일어를 내뱉었다. 나는 내심 기뻤다. 사실 영어로 소통이 가능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어를 하시는군요. (Sie sprechen Deutsch)"라며 사용 언어를 바꾼 후, 우리는 그나마 목적지와 시간, 그리고 요금에 대한 합의에 이룰 수 있었다. 아직 메테오라에 오를 시간은 아니기 때문에 동이 틀 무렵 카페 부근에서 우리를 픽업해 달라고 부탁하고 그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친구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부서진 건물에 도착했더니 친구는 턱까지 따닥 거리며 떨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에 샌드위치 하나 먹으러 가자고 친구를 일으켜 나가는데 다른 여행자들은 메테오라로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변에 카페를 발견했다고 말해도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어쩔 수 없이 우리 둘만 카페로 향했다. 그들은 걸어서 깜깜한 새벽의 언덕길을 한 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할 것이었다.


카페에 도착해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걸쭉하고 쓰디쓴 커피를 마시며 갓 화덕에서 구워낸 빵을 먹었는데 맛을 평가하기는 힘든 그저 생존음식이었다. 빵과 커피는 저렴하고 푸짐했지만 끝가지 먹진 못했다. 어차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온기였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잠시 졸다가 택시 운전사의 전화를 받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택시 운전사는 우리가 자신에게 오다가 행여 다른 택시라도 만났을까 걱정되는지 차가운 아침 기온에도 불구하고 차 밖에서 애타게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 운전사는 오르막을 구불구불 달리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뭔가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의 노력은 나름 성공했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그에게 하산할 때도 전화를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사실 하산을 택시로 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있을 수 없는 낭비처럼 느껴졌지만 나 역시 친구에게 최소화된 육체적 피로와 함께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버렸기에 추가로 택시비를 쓰기로 했다.  


Great Meteoron 수도원


우리의 여행은 메테오라의 제일 높은 지점에 있는 Great Meteoron에서 시작되었다. Great Meteoron은 메테오라 언덕 위의 수도원들 중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다. 설명에 따르면 이 수도원은 14세기 후반에 지어졌다고 했고 수도원의 가장 중심이 되는 교회 건물은 16세기에 이르러 따로 지어졌다고 했다. 우리가 도착한 시점은 아직 깜깜한 새벽이었고 해가 뜨려면 아직 15분 정도 더 기다려야 했다. 해가 뜨고도 한 시간은 더 있어야 방문객을 위한 문이 열릴터였다. 우리는 그 시간을 기다리며 떠 오르는 햇빛에 시시각각 색깔이 변해가는 Great Meteoron과 주변의 경치를 즐겼다. 


메테오라의 맞은편 산 위로 해가 떠 오를 즈음, 칼람바카 역의 부서진 채플 건물에서 만났던 여행자 둘이 땀을 흘리며 도착했다. 우리는 편하게 올라와 메테오라의 해돋이를 맞이할 수 있었기에 나름 우쭐했지만 그들은 우리를 치트키 쓴 게이머처럼 보았을지도 모른다.


Great Meteoron은 9시에 문을 열었다. 수도원에서는 예의를 갖춘 복장과 절대적 정숙을 요구하고 사진 촬영을 금해서 관광객으로써의 즐거움은 크지 않았지만 서유럽의 교회들에서 보기 힘든 그리스 정교회 특유의 프레스코화들과 중세풍의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메테오라에서의 즐거움은 광활한 풍경과 우뚝 솟은 기암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수도원들의 조화를 앵글에 담는 데 있었다.


Varlaam 수도원

우리는 가급적 많은 수도원을 올라 볼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다음 수도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 목적지는 Rousanou 수녀원이다. 가는 길에 Varlaam 수도원이 있지만 동선이 맞지 않아서 Varlaam 수도원은 먼 곳에서만 바라보기로 했다. Varlaam 수도원과 Rousanou 수녀원의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 조그만 돌산이 있어 그 위에 올라 새벽에 먹었던 카페 음식에 이어 모자란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렇게 Varlaam 수도원은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먼 곳에서 그 모습을 보며 아침을 먹음으로써 가슴 깊숙이 새겨둘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Varlaam 수도원은 목요일과 금요일은 방문객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잘못했으면 헛걸음을 했을 뻔했다.  

Rousanou 수녀원에서 찍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진

Rousanou 수녀원도 14세기에 지어졌고 수녀원 이름의 근원에 대해서는 최초 설립자의 이름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고 했다. 수녀원에서는 카메라를 꺼내기도 어려운 분위기라서 사진 촬영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원래는 금남의 구역이었을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이 수녀원은 마치 커다란 집 한 채를 기암절벽 위에 통째로 얹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수녀원 내부는 방문객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어 전체적인 느낌을 말한 순 없지만 어쩐지 아기자기하고 잘 꾸며진 성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메테오라에 있는 수도원들은 각각 오픈을 하는 날과 시간이 달아서 모든 수도원을 하루에 다 방문할 수는 없다. Rousanou 수녀원의 경우 방문할 수 있는 날이라서 방문하긴 했지만 다른 수도원들에 비해 낮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가장 높은 곳에서 투어를 시작한 우리는 수녀원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느라 다리품을 꽤 많이 팔았다. 방문할 수 있는 다른 수도원들이 많았다면 아마도 그냥 지나쳤을 듯한 곳이다.

전문 사진작가들의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찾아낸 메테오라 최고의 뷰포인트

이제 Rousanou 수도원에서 다음 목적지인 Saint Stephen 수도원으로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꽤 긴 거리이긴 한데 이 구간을 이동하다 보면 꼭 멈춰야 할 뷰포인트들이 여러 곳 있다. 나는 이미 많은 전문 사진사들이 메테오라를 찍은 사진을 분석해서 뷰포인트를 찾아 놓았었기 때문에 이 구간만큼은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차를 타고 이동한다면 주차문제 때문에 놓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사진을 찍는 곳은 널찍한 바위 언덕 위였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도 오를 수 있을 만큼 평평한 돌바위 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걔 중에는 당연히 오늘 새벽부터 끊임없이 얼굴을 마주치는 두 여행자들도 있었다. 그중 일본인 친구는 오늘 더 이상 아무 곳도 가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도 한 듯 어느 바위 그늘 밑에 누워 있었다. 


내 친구는 이곳에서 본 아시아인이 반가웠던지 특유의 한국식 친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극기야 광활한 자연의 고요함을 즐기며 백일몽을 꾸고 있던 일본인 여행자를 깨워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그는 요즘 들어 유독 자주 만나게 되는 세계일주인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북미를 가로로 횡단한 후 유럽 서부로 건너와서 이베리아부터 발칸까지 다시 가로질렀으며 이제 그리스에서 지중해를 건너 이스라엘에 도착한 후 중동 지역을 들렀다가 인도로 넘어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이런 식으로 한 번에 여행의 뽕을 뽑으려는 이유가 뭔지 물었다. 나는 사실 그게 늘 궁금했다. 그렇게 한 번에 세계여행을 해 버리다가는 즐거워야 하는 여행이 오히려 고행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고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난 많은 세계일주인들이 지구를 한 번에 돌아보는 것을 인생의 꿈으로 여기고 있었고 일본인 세계일주인의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세계일주인 친구에게 메테오라의 고요한 풍광을 돌려주기 위해 다음 목적지인 Saint Stephen 수도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왼쪽 언덕 위의 수도원이 Saint Stephen 수도원이다.
Saint Stephan 수도원 내 전망대에서 바라본 칼람바카의 전경

오후 한 시쯤 되어 Saint Stephan 수도원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친구 녀석은 이미 녹초가 되어 더 이상 사진을 찍고자 하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 사진 촬영이 취미라며 비싼 카메라 장비를 사 모으던 친구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인생사진 한 번 찍어 보겠다고 찾아오는 메테오라를 데려온 것에 나름 뿌듯해하고 있었건만 친구 녀석의 얼굴에는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이 도배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Saint Stephan 수도원에서 오늘의 여행을 마치기로 했다. 어쩌면 택시를 부르기로 한 것이 잘한 결정 같았다. 


Saint Stephan 수도원은 다른 수도원들과 달리 상당히 관광지화 되어 있었다. 수도원 부지가 엄청 넓어 입장 가능한 인원의 제한이 없었고 수도원 내부에는 바위 절벽 쪽으로 전망대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 또한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수도원 정문 앞에는 푸드트럭 및 커피트럭들이 줄지어 있었고 기념품 판매를 하는 트럭도 있었다. 덕분에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커피와 함께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택시 운전사에게 전화를 해서 픽업을 부탁했다. 


아테네로 돌아가는 기차는 5시 22분에 있었다. 올 때와는 달리 중간에 갈아타지 않아도 되었고 우리는 차에 오르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기차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아테네에 도착했는데 저녁을 먹을 곳을 찾을 수 없어 한참을 돌아다녀야 했다. 다행히 문을 닫기 직전의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감히 원하는 메뉴를 고르지는 못했지만 성공적으로 저녁을 해결한 후 아테네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아크로폴리스 (좌: 고대극장, 우: 박물관)

다음 날은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날인데 기어이 아크로폴리스를 올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또다시 친구의 투덜거림을 무릅쓰고 아크로폴리스에 다녀왔다. 고백하건대 아크로폴리스는 굳이 올라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어터지는 단체 관광객들 사이에서 많은 후회를 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자체보다는 박물관이 좋았다. 비가 오는 날이라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서 하루 종일 보내도 될 것 같았다. 특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하다. 나는 마침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를 읽고 있던 중이었기에 아는 이름의 석상이 보일 때마다 꼼꼼히 설명을 읽었다.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이 늦은 오후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테네에서 제법 느긋한 오후를 보낼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는 며칠간 심한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다른 친구를 통해 들은 바로는 나와 같이 간 그리스 여행이 군대 행군 같았다고 했단다. 이 친구는 요즘도 내가 같이 여행이나 한 번 가자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평소 내 여행에 비해서 반도 못 걷고 삼분의 일도 안 되는 스케줄을 소화했을 뿐인데 어디 진짜 등산 계획이라도 세웠더라면 큰일 났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역병이 창궐하기 전인 2019년 2월, 3박 4일의 여행에 든 비용은 채 50만 원이 안 되었다. 훗날 역병 사태가 끝난 2023년 2월에 이 여행을 다시 예약해 보려 했으나 비용이 몇 곱절이나 올라 포기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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