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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하이커 Aug 12. 2023

구글맵에서 찾은 두브로브니크의 진주

크로아티아 - 로푸드 섬

두브로브니크에서의 둘째 날은 페리를 타고 근처 로푸드(Lopud)섬에 가서 물놀이를 하며 보내기로 했다. 이 섬은 구글 어스로 둘러보다가 점찍은 곳이다. 지도 위에 파라솔 마크가 있기에 무인도는 아니겠거니 하고 가는 방법을 검색해 봤는데 당연히 한국어로 된 정보는 없었다. 다행히 영국인들에게는 조금 알려진 섬 같았다. 크로아티아를 소개하는 영국 소재의 어느 웹사이트를 바탕으로 Lopud섬까지 가는 페리가 오전 9시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검색 능력을 풀가동해서 웹사이트(링크)를 통해 페리를 미리 예약할 수 있었다. Lopud섬까지의 왕복 요금은 23쿠나 (약 3.1유로, 약 4,500원)였다. Lopud섬까지 갔다 오는 요금이나 그곳에서 사용한 금액을 정산해 보면 이곳은 관광객 프리미엄이 전혀 붙지 않은 크로아티아인들만 즐겨 찾는 곳이 분명했다.


오전 9시 페리인데 준비를 다 끝내 놓고도 1시간이 넘게 남았다. 너무 일찍 일어난 탓이다. 방문을 열고 나왔더니 주방에 마야와 그녀의 어머니가 아침을 준비해 놓았다. 물에 녹여 마시는 커피와 함께 약과같이 생긴 달달한 케익을 내놓았는데 음식의 이름을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침 시간이 넉넉해서 아침을 먹으며 슈퍼호스트 마야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마야는 차분한 성격의 여성이다. 호구조사하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그녀의 신상에 대해 묻진 않았는데 아무리 봐도 서른을 넘겼을 것 같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투와 몸가짐에서는 오랫동안 몸에 밴듯한 교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하는 일을 궁금해했고 경청해 주었고 많은 질문을 해 주었다. 그러는 와중에 그녀가 영국의 어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도 자신의 전공을 계속 이어가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어쩐지 AirB&B 슈퍼호스트가 전업인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타야 할 페리는 이미 항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른 감이 있지만 미리 배에 올랐다. 너무 이른 건지 배 안에는 나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출발할 때가 되어서는 꽤 많은 사람들이 배에 올랐지만 그래도 듬성듬성 빈자리가 많았다. Lopud 섬까지는 약 1시간이 걸렸다. 




Lopud섬에 내렸지만 내가 물놀이를 하고자 하는 Sunj 해변은 섬의 반대 방향인 남쪽에 있다. 남쪽까지 걸어서 가면 대략 30분이 걸린다는데 날씨가 워낙 더워서 도무지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항구에서 Sunj까지는 골프 카트로 운영되는 택시 서비스가 있다. 편도 2유로 정도면 뙤약볕을 받으며 해변까지 걸어갈 필요가 없다. 골프 카트는 4명씩 가득 채워 떠났기에 나는 카트 안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없는 곳이겠지 하는 생각에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Sunj 해변은 내가 생각한 모습 그대로였다. 관광객들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크로아티아 현지인들이었다. 자갈밭 해변으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크로아티아 해변과 달리 이곳은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100미터를 들어가도 물의 깊이가 허리춤 정도로 아주 완만한 해변이었다. 게다가 관광객의 홍수도 없는 섬이라 물이 투명했다.


해변에서 파라솔 하나와 의자 두 개를 대여하는 비용은 약 12유로였다. 의자가 모두 필요하진 않았기에 하나를 거의 비워두다시피 했는데 어느 현지인이 와서 내게 의자 하나를 재임대해주지 않겠냐고 한다. 굳이 돈을 받지 않아도 괜찮았겠지만 마침 점심시간이었기에 그 값으로 피자를 한 조각 사 먹었다. 단돈 12유로로 파라솔에 의자에 점심까지 해결했으니 오늘의 일정은 정말 관광객 프리미엄이 쏙 빠진 알찬 여행이 될 터였다. 


점심이 지나고도 물속에서 얼마나 놀았는지 손끝이 불어있었다. 이미 하루의 피크 시간이 지났을 법한데도 해변은 한산했다. 두브로브니크의 좁아터진 자갈 해변엔 지금쯤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 있을 거라 생각하니 어쩐지 우쭐해졌다. 


오후 3시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다시 골프 카트를 타고 항구로 자리를 옮겼다. 항구 주변에는 몇 백 년은 족히 그 자리를 지켰을 법한 수도원이 있었는데 그 주변에 몇 개의 카페가 있었다. 그중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커피와 커다란 파르페를 먹으며 페리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곳은 카페도 현지인 가격이라서 아예 저녁을 먹고 갈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는데 저녁을 먹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페리가 출발하기 전에 식사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맥주를 한 잔 더 시켜 마신 다음에 두브로브니크로 향하는 페리에 다시 몸을 실었다.




두브로브니크에 돌아오니 제법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구시가지의 곳곳에서는 거리의 음악가들이 연주를 시작하고 있었고 나는 다시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에 묻혀 존재감이 없어져 버렸다.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지는 큰길을 중심으로 작은 골목들이 격자형으로 나누어지고 있었다. 저녁 식사 헌팅은 아무래도 작은 골목에서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동안 느끼는 갑작스러운 물가상승에 쇼크를 받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작고 아담한, 그렇지만 그렇게 특징적일 게 없는 작은 레스토랑에서 엄마표 생선 요리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구멍가게 같은 슈퍼마켓에서 맥주를 한 캔 사서는 기타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Libertas라는 Duo밴드 앞에 앉아 거의 두 시간을 보냈다. 일어나면서 그들의 CD도 하나 사 왔는데 집에 돌아와서 들어보니 CD의 녹음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자기 전에 마실 요량으로 레드와인 한 병과 초콜릿 하나를 사들고 길을 되짚어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은 온전히 두브로브니크를 즐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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