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자꾸 눈물이 난다. 철퍼덕 엎드려서는 그때 엄마가 발은 현관에 몸은 거실에 걸쳐 엎드려 누워서 집을 나가지도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꼼짝 않고 있던 것처럼, 나도 뭔가를 하다가 그렇게 엎드린다.
그렇다고, 이대로 다 멈춰버릴 작정인가? 출발선상이 다르다는 건 어쩌면 가는 길이 다르다는 뜻일 거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가는 거고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는 거다. 상처는 권력이라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 아프다. 상처 하나 없이 마알간 눈을 하고 웃는 모습이야말로 권력 아닌가? 나는 벗어나려 발버둥 쳐도 더 깊이 빠져버리는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홀가분하게 세상을 누비는 가벼운 발걸음이야말로 권력 아니냐는 말이다. 생이 다른 것이 슬프다. 그치만, 이 생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안고 길을 떠날 수밖에 없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나니까. 그런 면에서는 공평할 수 있겠다. 모두는 각자의 생을 이고 지고 길을 떠나는 것일 테니. 나는 내 생에 애정을 가지고 싶다.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니 고유하다. 그 아프고 아픈 고유함을 귀히 여기고 살아가야겠다. 그래야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또한 발버둥이겠지만, 여기가 늪이 아니라 바다 한가운데라면, 이 발버둥으로 볕을 쬘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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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풀꽃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하리라.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에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다른 꽃들 사이에서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_루이스 글릭(류시화 역)
* 눈풀꽃 : 수선화과의 알뿌리 식물 / 이른 봄에 20-30cm의 흰 꽃이 핀다 / 눈 내리는 땅에서도 꽃을 피우는 특성 때문에 설강화(snowdrop)라고도 한다.
소장님 덧: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루이스 글릭의 시예요. 헝가리 출신 유대인인 글릭은 10대 때 거식증을 심하게 앓아 7년 동안 심리치료받으며 정서적 혼란으로 학교 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군요. 두 번의 결혼도 얼마 가지 못했대요. 시인에게 시는 '삶을 잃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노력' 중 하나였대요. 그 본능적인 노력의 결과가 이렇듯 단순하고 아름다운 시가 되어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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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며칠 전 읽었던 시인데, 페이스북 글쓰기 그룹에 소장님이 그 시를 올렸다. 첫 문장에 나는 주저앉아 울었다. 겨울을 사랑한 것이 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생을 사랑하려고 겨울을 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요 며칠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이 어디였는지 무엇을 따라가고 있었는지 희미해졌고, 지나온 길을 보니 덧없이 느껴졌다. 울고 울다가 시를 만나 시가 내게 내미는 손을 잡는다. 찬바람이 몰아치고 숨이 턱 막히면 나는 살아있는 거다. 살갗이 에리다면 나는 맞서고 있는 거다. 그걸로 됐다. 나는 삶을 잃지 않으련다.
10.10.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