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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느 Nov 29. 2023

Day 3

나는 다전입니다 (3)

업무와 무관한 이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팀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신의 발표 내용으로 이목을 돌리려면 무어라 말해야 할까. 다전은 적당한 단어를 골라 대답하려고 애썼지만, 끝끝내 입 밖으로 내질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 없어요, 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했다간 김 팀장은 다른 팀원들 앞에서 무안을 사고 말 것이다. 다전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의 어투는 단호한 데가 있었다. 팀에 발령 난 날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자신의 이름을 걸고넘어지며 무람없이 ‘바꾸라’고 말하는 그의 체면 따위야 알 바 아니다 싶다가도. 퇴근 시간까지 같은 장소에 있어야 하고, 내일도, 일주일 뒤에도 앞으로 계속 얼굴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대답하길 머뭇거리게 되었다.


“내가 어려운 질문한 건가?”


선뜻 말하지 못하자 김 팀장이 재차 말했다. 아, 그게. 다전은 겨우 입을 뗐으나 속엣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난처해하는 표정을 본 이 대리가 팀장의 팔을 살짝 잡았다. 에이, 팀장님. 아무리 저희끼리라지만 그래도 성과 보고하는 자리잖아요. 그의 말에 김 팀장이 아, 하더니 미안해요, 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말해도 입에 잘 안 붙어서. 다전 씨, 다전 씨, 하다가 서둘러 말할라치면 다정 씨, 다절 씨가 되어서. 이름을 자꾸 잘못 부르게 되더라고. 발표 잘 들었어요. 고생했네. 팀장은 겸연쩍었는지 빠르게 이유를 늘어놨다. 다전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몇몇 팀원이 친 박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앉으면서 목에 걸린 사원증이 살짝 흔들렸다. 다전은 절로 그쪽에 시선이 닿았다. 영업 1팀 / 나 다 전. 흰색 배경에 다전의 사진과 이름이 흑백으로 담겨있었다. 늘 보던 사원증인데 괜히 눈에 띄었다. 다전은 한 손으로 사원증을 감싸 쥐었다. 저마다 가진 의미가 있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왜 유독 제게만 그런 걸까. 그는 생각했다.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팀장은 다음 발표 자료를 그러모으고 있었다.


열린 창문 틈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동시에 회의실의 스피커에서 삑- 하는 기계음 소리가 들렸다. 다전은 스크린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내 다른 팀원의 발표가 시작됐다. 동료의 말소리와 서늘한 바람을 함께 느끼며 다전은 뻑뻑한 눈을 감았다. 오늘 저녁에 마라톤 대회 기념품이 도착할 예정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달리기 연습 후 집에 가면 택배가 와 있을 것이다. 어서 뛰고 싶다고, 다전은 생각했다.


목표치보다 3km를 더 뛴 다전의 다리가 사정없이 후들거렸다. 집 앞까지 도착했지만, 문을 쉽게 열지 못했다. 지친 나머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대로 문 앞에 주저앉았다. 아! 다전은 엉덩이에 통증을 느끼며 소리쳤다. 그의 아래에 갈색의 작은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부딪힌 자리를 매만지며 테이프를 뜯었다. 안을 확인하니 비타민 음료와 단백질 초콜릿바, 스포츠 양말 한 세트, 대회 안내문, 주황색 바탕의 배번호가 들어있었다. 11060 나 다 전. 배번호 색 한번 요란하네. 다전이 중얼거리고는 상자를 품에 안았다. 읏샤, 하는 소리를 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7.7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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