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을 인정하지 못하고

조울증 치료에 실패했을 때

by 폴짝
삶의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음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일어섬에 있다.
- 넬슨 만델라


조울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확고한 병식이 생기기까지는 보통 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 경우에는 첫 진단으로부터 대략 6, 7년 차쯤 되었을 때 어느 정도 병식이 생겼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수록 증상이 완화하고 병에 적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도 이와 상관이 있어 보입니다.


저는 조울증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제 의지로 입원하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 병을 잘 안다는 착각, 그리고 오만함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퇴원 후에 처방대로 약을 먹어도 여전히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가며 나타났고, 결국 다시 조증이 심해졌을 때 임의로 약을 끊었습니다. 병식이 없는 조울증 환자들이 흔히 그러듯이 약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약 없이 의지로 병을 이겨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약을 대체할 방법은 찾지 못했고 또다시 병을 방치한 채 몇 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심한 조증을 겪을 때마다 이른바 ‘뇌가 타버린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조울증을 방치하면 상당한 뇌 손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뇌 건강이 나빠지면 조울증 치료는 더 어려워집니다.


약을 끊고 나서, 1년도 넘는 기간동안 심한 조증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조증이 이 정도로 장기간 이어지는 것은 드문 일인데, 에너지 소모가 심한 조증은 그 특성상 오래 유지되지 않고 얼마 후 우울증으로 곤두박질치는 게 보통이기 때문입니다. 긴 시간 동안 계속된 조증기 동안, 잠을 별로 안 자도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았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몹시 피곤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하지막 이 조증 기간도 결국은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길었던 조증의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깊은 우울증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이 과정을 겪으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기분이 많이 들뜰수록 우울증도 그만큼 깊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조증 정도가 심할수록 우울증 기간도 길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당시 인간관계는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고, 지금껏 성취했다고 생각한 거의 모든 것들이 무너져서,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할 만한 것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부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사고조차 명료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나마 분명하게 들었던 생각은 ‘내가 조울증이 맞는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진단을 받고 입원했을 때는, 쾌락형 조증 상태였기 때문에 조울증으로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흥미로운 사건으로 느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울증이 심해지고 마음의 열기가 사라지자, ‘정신병’이라는 말의 무게가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에는 조울증에 관한 공부도 거의 안 한 상태였고, 병식도 없었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환자들의 사례를 많이 접했다면 조울증 환자 중에서도 제 증상이 심한 편이었다는 것을 알았겠지만, 조울증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의 경험을 접하게 된 것은 이보다도 한참 나중 일입니다.


‘조울증 환자 아니냐?’며 농담처럼 말하는 것을 일상에서 접할 때마다, 이 병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사라지는 날이 오기는 할까, 하고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병에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를 비난할 때 이런 말들을 쓰게 되더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어쩔 수 없는 조울증 환자로군,’ ‘미친놈이 별 수 있겠나.’ 이런 표현들은 남한테 들은 말이 아닙니다. 제가 저 자신에게 했던 말들입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주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자신을 비난하고 상처 입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을 찾지 못하거나 비난할 대상이 없으면 스스로를 탓하기 쉬웠던 것 같습니다. 제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조울증 때문에 자신을 욕했던 것도, 마치 자연재해처럼 닥친 이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이유를 찾다가 실패하게 되면 결국 비난의 화살은 저 자신에게 향하곤 했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릴 정도로 궁지에 몰린 조울증 환자는, 먼저 자신을 아끼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실 이조차도 조울증 환자에게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증 증상에는 환자 스스로에게 해가 될 수 있는 행동(과소비, 무모한 행동, 무분별한 성생활 등)을 서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아낄 줄 알게 되어야, 이러한 조증 증상의 피해를 덜 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조울증 환자에게 꼭 필요한 것은 신뢰할 수 있는 든든한 조력자입니다. 환자의 상태가 조울증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조증과 우울증을 오갈 때에도 환자의 본래 모습을 잊지 않는 사람, 그리고 쉽지 않은 조울증 치료 과정을 함께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조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족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환자가 조울증에서 회복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안타깝게도 한참 조울증 증상이 심할 때 제 주변에는 이런 역할을 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조울증으로 입원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가족조차 저를 이해해기 힘들어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시기에 외로운 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가족들을 원망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조증 당시의 일기를 읽어 보면서, 그때 가족들이 받았을 고통도 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가족 중에 누군가가 나를 괴롭힌다면, 그 행동의 원인이 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멀리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조울증의 피해를 직접 받는 가족이 환자를 품어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대단하다,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조력자가 없다고 해서 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조울증 환자가 치료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자존감을 단단하게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자신을 아낄 줄 아는 힘을 키워 나가는 것도 조울증 치료와 관리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저도 조울증에 관해 이런 글을 쓸 정도로 여유가 생겼지만, 사실 오랫동안 심한 우울증이 오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곤 했습니다. 최악의 우울기가 왔을 당시 하필이면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일을 나가지 못해서 수입이 끊겼고, 얼마 안 되는 은행 잔고도 결국 떨어졌습니다. 요금을 내지 못해서 TV와 인터넷, 핸드폰, 가스 순서로 끊기는 경험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의욕이 완전히 사라진 저를 스스로 돌볼 수 없었기 때문에 상황은 최악의 최악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울증 환자의 자살률은 우울증 환자의 자살률보다도 상당히 높습니다. 일반인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그 때문에 조울증이 얼마나 위험한 병인지 잘 체감하지 못합니다. 조울증 환자는 우울기, 또는 우울증에서 경조증으로 바뀌는 기간에 자해나 자살 시도를 많이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자살에 관한 생각만 했고 실제로 시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시도하지 '못했다'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자살을 결행하기에는 너무나 소심했기 때문입니다. 분명 죽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동시에 죽음이 두렵다는 모순된 감정이 들었습니다. 제 지인 한 사람은 이 말을 듣고는, ‘그건 건강한 소심함이네. 그 소심함 잃지 말아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심각했던 당시 상황도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니 약간은 우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까이서 바라본 인생은 비극이며, 멀리서 바라본 인생은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병을 온전히 관리하지 못하는 조울증 환자는 가능하면 혼자 지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스스로 생활을 유지할 능력이 사라질 때가 있으며, 때때로 자해나 자살을 시도할 우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게 됩니다. 실제로 조울증의 위기를 잘 극복한 환자들의 사연을 들어 보면, 대개 든든한 가족들이 그 배경에 있습니다.


다시 자취하던 때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먹을 것이 완전히 바닥나자 저는 굶주리다 못해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이 있던 본가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한때 가족들과의 불화 때문에 집을 뛰쳐나왔다가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돌아왔기 때문에, 저는 패배자가 된 것 같은 비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불편한 감정 때문에 집에 돌아온 뒤에도 부모님과는 거의 마주치지 않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오고 해가 바뀌도록 우울증은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조증의 폭풍 뒤에 찾아온 사막 같은 우울증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고, 때때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막막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겪는 와중에도 병원에 가지 않았고,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병을 극복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부질없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고, 그것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켜 주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즉시 치료를 시작했더라면, 길었던 우울기가 상당히 짧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한 번 오기가 생기면, 점점 포기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한 번 그 시기를 놓치면 포기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이때가 저의 ‘잃어버린 15년’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긴 세월을 쓰레기통속에 내던져 버린 것은, 다름 아닌 저 자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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