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에게 노란봉투를 건네고 싶다
법률만큼 재미없는 게 있을까? 더구나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편을 가진 법률 얘기를 꺼내긴 부담스럽지만, 가수 이효리 씨의 명성에 기대어 노란봉투법 이야기를 끄집어내 본다.
노란봉투법을 말하자면 2014년 노란봉투 캠페인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쌍용차 파업으로 사측과 경찰이 노조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2013년 법원은 약 47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소식을 접한 주부 배춘환 씨는 당시 한 언론사에 ‘4만7천 원씩 10만 명이면 47억 원을 모을 수 있다’는 취지의 편지와 함께 큰아이 태권도 학원비를 아껴 모은 4만7천 원을 보냈다.
이렇게 시작된 노란봉투 캠페인은 과거 월급봉투가 노란색이었다는 것에서 착안하여 노동자들이 평범한 일상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정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마음을 담은 손 편지를 보내며 캠페인에 동참한 가수 이효리 씨로 인해 모금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결국 노엄 촘스키 교수 등 4만7천여 명이 동참해 14억 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
모금 캠페인은 ‘노란봉투법’ 입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 운동으로 이어졌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34명이 일명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 노동조합법상 손해배상 책임이 면제되는 합법 파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자 개인에게는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한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법은 19대, 20대 국회 모두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 새롭게 발의된 노란봉투법은 2023년 11월 9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으나, 2023년 12월 1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최종 부결되었다.
이제 무려 4수생 법안이라는 꼬리표를 단 노란봉투법은 바로 어제인 2024년 8월 5일 22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번에도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넓혀 원청도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한 노동조합법 제2조와 노동쟁의에 대한 사용자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제3조 개정이 골자다.
노란봉투법의 앞날은 험로가 예정돼 있다. 국민의 힘은 “불법파업 조장법(노란봉투법)은 우리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히는 대민경제 파괴 법안”이라는 입장이다. 어차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게 뻔한데, 야당이 정치적 계산으로 여론몰이용 쇼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노란봉투법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치권을 넘어 보수와 진보 언론에서도 극명하게 갈린다.
2015년부터 무려 9년이 흘렀다. 4수생 신분인 노란봉투법은 이제 5수를 준비해야 할 처지다.
현실 정치에 유토피아를 기대할 순 없겠지만, 이런 흔해 빠진 대치 국면 말고, 합의에 이르는 중용(中庸)을 기대하는 건 사치인가? 아직 우리 정치의 역량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예전엔 노란봉투에 봉급뿐만 아니라, 해고 통지서도 담아 전달했다. 정치인들에게 후자의 노란봉투를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