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현 변호사 Jul 31. 2024

전세살이의 서러움

한국에만 있는 전세, 득보다 실이 많다.

전세 만기가 다가오면 세입자들은 초조하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릴지도 걱정이고, 갱신이 안 되면 새로 전세를 구해야 한다. 집주인에게 전화 걸기가 학창 시절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 뵈러 가기보다 조심스럽다.


집을 내놓아서 공인중개사와 함께 사람들이 집을 보러 들어올 때면 묘한 긴장감도 흐른다. 전세 계약을 할 때 집주인이 신분증을 건네지만, 사진과 많이 다른 현재 모습을 보면서도 달리 신원 확인이 쉽지 않다.


계약 전후로 등기부등본을 수시로 떼어 보다가, 이사 당일 동사무소에서 확정일자·전입신고 절차를 거치고 다음 날 다시 깨끗한 등기부등본을 떼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문제는 그러고도 보증금을 떼일 수 있는 게 전세라는 점이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지 1년이 넘었다. 모든 죽음이 안타깝지만, 이들이 대부분 20~30대 청년들이라는 사실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누가 이들을 사지(死地)로 몰았는가?


전세(傳貰)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사한 제도가 일부 국가에 있지만 한국만큼 성행하는 곳이 없다. 영어에서도 번역할 말이 없어서 ‘Jeonse’라고 한다. 조선시대까지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지만,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를 중심으로 전세는 본격적으로 증가했다.


외국인들은 거액의 보증금을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맡긴다는 점과, 전세 기간 이후에 이를 그대로 돌려준다는 점을 신기하게 본다. 그들 눈에는 보증금을 돌려받으니, 공짜로 집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작년 KBS 보도에 따르면 전국에 사기 조직과 연결된 악성 임대인 176명이 갖고 있는 빌라는 2만 6천여 채나 된다고 한다. 그 가운데 전세 만기가 다가오는 집이 많은데 이미 보증금이 집값보다 높은 ‘깡통 전세’가 됐을 가능성이 높아, 피해 금액이 2조 원에 달할 거라는 분석도 있었다. KBS 보도대로라면 전국 곳곳에 시한폭탄이 묻혀 있는 셈이다.


전세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자신의 전 재산이랄 수 있는 목돈을 빌려주는 사금융이다. 그런데 집주인에 대한 신용정보는 거의 없다. 애초부터 보증금을 떼일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전세보증보험이 생겨났다. 이렇게 HUG(주택도시보증공사)가 대신 갚아준 금액이 지난해만 9,241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드문 제도라는 것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만큼 위험하다는 방증이다.

어느 경제학자는 전세를 가리켜 ‘산업화 촉진의 비밀병기’라고 불렀다. 이제 그 비밀병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되었다.


모든 제도에 명암(明暗)이 있고 제도 자체가 아니라 사기에 이용된 게 문제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갭 투자로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데 이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되었다는 사실은 전세 제도를 개혁할 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로이터를 비롯하여 외신들도 한국의 전세 사기로 인한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제도로 인한 젊은이들의 죽음은 그 제도를 바꾸지 못한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 여야는 전세 사기 피해를 두고 서로를  탓했다. 세월호 참사와 용산 참사, 그리고 전세 사기로 유명을 달리한 이들까지, 우리가 바라는 복지 사회, 안전 사회는 젊은이들의 무덤을 부단히 지르밟아야만 도달하는  곳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