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동경하던 가수들이 어느덧 연예계에 높은 정상을 찍고 레전드로 남아 후배들을 양성하고 하거나 결혼을 하고, 어리고 풋풋하던 티를 벗어 젠틀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자아내는 모습들을 요새 많이 보고 느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데뷔는 언제였고 무슨 노래가 언제 유행했었는지 잠시 추억을 역행하게 되며, 결론은 세월이 얼마큼 흘렀는가를 느끼며 아련함과 신기함을 뱉어내곤 했다.
어릴 적, 아이돌 노래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어른들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 유명한데 모를 수가 있지?’라고 생각하며 한 숨을 쉬었는데, 지금의 나는 요새 어떤 아이돌이 있고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잘 모르겠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유행들을 이제는 따라가기 힘들고 정신이 없어지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멀어져만 갔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간 것을 체감할 때마다 내 기억에서 항상 떠오르는 모습들이 있다. 초등학생 때 자주 했던 ‘미래의 나를 상상’하는 것이다. 자신의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림 그리기를 하거나 미래의 자신에게 쓰는 편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때 나는 온갖 상상을 하며 최대한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을 그리며 마치 이미 그것을 이룬 것 마냥 들뜬 모습으로 친구들에게 발표하던 모습이 생각나지만, 어떤 미래를 그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금에서 10년 전이면 초등학교는 이미 졸업하고도 남을 나이가 되었지만 그때의 환상적이고 성공적인 모습은 아직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여전히 나는 아직 어리고 부족함 투성이일 뿐이었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세상의 때가 많이 묻어버렸다는 것 정도이지 않을까 싶었다. 미래를 그리고 꿈을 당당하게 말하던 순수한 내 모습이 지금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 자체를 받은 지가 언제인지 조차 가늠되지 않을 만큼 관심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몇 년 뒤의 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당장에 나는 무언가를 해야 했고, 그것이 오래 걸릴수록 남들과는 뒤쳐지는 삶이라며, 가시밭길은 피해만 갔다. 누군가가 밟아온 순탄한 길을 쫒아서 가지만 그 길이 정작 나와는 맞지 않는 길인 것을 알아차릴 때는 이미 늦었거나, 막다른 길에 다다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고는 세상 탓, 남 탓을 하며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곤 하지만 뒤를 돌아 자신이 걸어온 기나긴 길을 돌아갈 용기는 나지 않으니 그 자리에서 한 숨을 내뱉는 것으로 끝이 났다.
세상을 만들던 우리였지만 지금은 세상이 우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람이 모여 사회가 되고 사회가 모여 나라가 되었지만, 지금은 사회에 속하기 위해 들어가고 그곳에서 서로가 더불어 가는 모습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경쟁만이 치열하게 치러지고 있었다. 자주적인 삶보다 강제적인 성격을 띠는 삶이 더 많아 세상의 발전은 상승하는 반면 삶의 만족도는 낮아져만 갔다.
나의 모습이 아닌 ‘남의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 더 중요시되는 순간, 우리는 꿈을 잃었다. 꿈은 낭비고 사치며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이룰 수 있는 환상의 단어가 되었다. 현실은 그만큼 만만하지 않다는 마음이 자리 잡아버렸다.
꿈이 없는 삶은 로봇과 다를 바가 없다. 영혼 없는 육체고 만족 없는 인생이다. 그런 인생을 사는 게 정상이라는 세상의 인식이 부조리하단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우리는 그 루트를 벗어날 용기를 갖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쌓아 올린 담으로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를 자처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생각의 틀에서 한 걸음 벗어나면 그 밖의 세상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우리의 삶에 크고 작은 목표와 꿈들이 필요하다. 그것이 최후의 나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어디를 바라보고 달리는 데 있어서 그것은 원동력이 되고, 행여 그 끝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잃은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배우게 되는 길이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한번 시도한 용기는 다음번을 기약하는 데 있어서 절대로 겁을 내지 않는다.
인생에는 환상이 필요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진실이라고 여겨지는 거짓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