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면 항상 하는 일들이 있다. 바로 옷 장정리인데, 지금까지 입은 옷들은 예쁘게 개어서 모아 정리하고 작년에 정리해둔 옷들을 꺼내어 옷장에 다시금 넣어둔다. 귀찮은 작업이지만 옷을 입고 생활하는 이상 우리는 이것을 매년 반복한다. 그렇게 일 년 사계절을 그렇게 정리하면서 늘 드는 생각이 있다.
나 작년에 대체 뭘 입었지?
정리할 옷들은 너무나 많은데 막상 입을만한 괜찮은 옷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 모두가 작년에 입었던 옷들인데 이걸 어떻게 입고 다녔나 싶을 정도로 별로였다. 아예 손도 대지 않을 녀석들은 모두 의류 수거함으로 보내고, 결국 쇼핑을 결정했다.
친구와 쇼핑을 약속한 어느 날, 어떤 옷을 살지 서로 고민하고 있었다. 때는 여름이었다.
“여자는 좋겠다. 여름이어도 원피스, 스커트, 반바지 선택지가 많잖아. 반면에 남자는 여름이면 티셔츠에 반바지 말고는 없으니.”
맞는 말이었다. 디자인이나 스타일에 한정적인 것은 사실이나, 선택지가 많다고 지금 하는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 선택 장애가 있는 친구 녀석은 원피스 같은 것들이 추가되어도 고민의 시간만 더 길어질 것이다. 그 시간을 기다리던 나는 지쳐서 고민을 덜어주기로 했다. 어떤 스타일의 옷을 사고 싶은지 묻자 녀석의 대답은 이러했다.
“뭐랄까. 유행이지만 남들이 입지 않은? 눈에 띄게 휘황찬란하지는 않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흔함 속의 유니크?”
그날 나는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인간은 본능에만 충실한 것이 아닌, 생각과 분석하는 방법을 알며, 끊임없는 진화와 발전을 추구해왔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사회기에 어디서나 “유행”은 존재했다. 한때 겨울을 강타했던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도깨비』를 생각해보자. 드라마 방영 당시 거리에 수많은 남성은 추위에 오들오들 떨더라도 롱코트를 입고 다녔고, 머리는 꼭 가르마 파마를 했다. 그 외에도 유명 스타일리스트가 예상하는 ‘올해의 히트 컬러’가 발표되면 옷은 모두 그 색에 맞춰서 나오곤 했다. 곱창 대란, 인형 뽑기 등 순간을 지나간 유행들이 너무나 많다.
그럴 때마다 친구와 같은 고민을 하는 순간이 많아진다. 유행을 따라가지 않으면 뒤처지는 느낌을 받고, 그렇다고 유행만 따라가자니 너무 개성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아서 싫다. 특별해지고 싶지만 너무 특별한 것은 싫어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남들과 똑같은 건 싫어 나만의 개성을 살리면 가끔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나타난다. 너무 튀려는 게 보인다며 손가락질을 받을지도 모른다.
유행을 따른다고 평화롭지만은 않다. 유행하는 스타일이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음에도 추구한다면, 남들의 시선에 보기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어울리지도 않는데 꼴에 유행이라고 따라 하네.”라며 뒤에서 수군댈지도…….
유행은 어차피 돌고 도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시간은 마치 성냥처럼 짧은 시간 장렬하게 빛을 내고 금세 사라진다. 어쩌면 매년 입을 게 없는 이유는 그날마다 유행에 맞는 것만 골라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유행에 상관없이 나와 잘 어울리는 무난한 옷들이 살아남았다. 분명 유행을 떠나서 각자에게 맞는 색과, 스타일, 성격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남들에게는 비록 평범할지라도 결국 자신에게는 특별한 모습으로 다가올지는 모르는 일이다. 계절이 바뀐 어느 날, 또다시 친구가 어떤 옷을 살지 고민하고 있다면, 그때는 그 고민을 조금 덜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너는 이런 스타일이 잘 어울리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