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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Sep 04. 2019

첫 알프스 트레킹을 가다

이태리 남티롤 Süd-Tirol


이태리 남티롤의
 알프스로 트레킹을 가는 날. 독일로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트레킹이라니. 최강 체력의 보유자인 독일 남편과 사는 일이 쉬울 리가 있겠나.


남티롤의 호퍼-알플 산장(위)과 바이에른 풍경(아래)


2019. 9. 3(화) 아침 9시. 이태리 남티롤의 알프스로 트레킹을 가는 날. 독일로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트레킹이라니. 최강 체력의 보유자인 독일 남편과 사는 일이 쉬울 리가 있겠. 그러나 어쩌랴. 기분 좋게 따라나설 수밖에. 빵집을 들르고 주유소까지 들른 후 출발했다. 뮌헨의 아침 기온은 16.5°(최고 기온 21°). 시속 160km. 독일의 고속도로는 속도가 무제한이지만 법정 속도 구간도 많다. 세 나라의 제한 속도는 각각 독일 120km/오스트리아 100km/이태리가 130km다. 오전 10시. 오스트리아 쪽인 Innsbruck&Kufstein으로 빠졌다. 오전 10시 30분. 오스트리아 고속도로 통행료 지불.


어제는 하루 종일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브런치에 글을 두 개 올리고, 집 청소를 하고, 빈 병을 대형 마트에 들고 갔다. 독일의 마트에는 빈 병과 빈 플라스틱 물병을 회수하고 돈으로 환급해주는 기계가 있다. 미네랄워터병을 기준으로 작은 것은 15센트, 큰 것은 25센트를 준다. 아이는 이것을 용돈으로 받는다. 대략 한 달에 10유로(12,000원) 정도다.  어제는 저녁을 일찍 먹고, 트레킹 배낭과 신발과 옷가지들을 대충 복도에 내놓고 잠이 들었다. 저녁은 아이가 좋아하는 뇨끼. 보통은 토마토소스로 만드는데, 어제는 바질 소스로 만들었다. 자기 전에 아이에게는 전래동화를 읽어주었다.



뮌헨-오스트리아-이태리 남부 티롤로 가는 길


12시 15분에 이태리 국경을, 12시 30분에 이태리 톨게이트를 지났다. 도중에 30분간 휴식. 남편의 비즈니스 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글을 쓰면 되니까. 남티롤의 볼자노는 언니와 형부가 10년간 살았던 곳. 지명을 보자마자 반가움이 앞선다. 목요일 뮌헨으로 돌아올 때 볼자노에 들러 마리아를 보기로 했다. 남편이 오후에 뮌헨에서 미팅이 있어 시간은 많지 않다. 잠시 얼굴 보고, 인사하고, 차를 한 잔 할 시간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가. 그렇게라도 한 번 보면 고마운 일이지. 1년에 한 번도 못 보고 사는 인연도 얼마나 많은데.


돌아보면 지난 1년 반 동안 셋이서 여행을 한 적이 없었다. 올 초에 새어머니께서 초대하신 리스본 가족 여행을 빼고는. 그래서 한국에 한 달간 아이와 둘이 다녀오는 걸 남편이 진심으로 기뻐한 듯하다. 그리고 우리가 돌아오는 때를 맞춰 남편이 야심 차게 준비한 가족 프로그램은 개학 전 알프스 트레킹! 사정이 이러하 적극적으로 응할 수밖에.  위의 산정에 이틀 묵는 일정이다. 남부 티롤의 거대한 슐레른 Schlern-Sciliar 자연공원과 로젠 가르텐 Rosengarten-Catinaccio이라 불리는 산봉우리 아래다. 석양 무렵이면 장밋빛으로 빛난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태리다운 로맨틱한 이름 아닌가. 언니가 살던 볼자노에서도 늘 보던 산이었다.



이태리로 진입(위) 남부 티롤의 슐레른 자연공원(아래 왼쪽)


오후 2시경 차로  수 있는 가장 높은 데까지 갔다. 산 아래 도시 푈즈 Völs-Fie는 880m. 우리가 주차한 곳 움스 Ums-Umes는 930m. 우리가 묵을 호프 알플 Hofer-Alpl 산장은 1364m다. 주차장에서 오르막 길을 1시간 남짓 오르면 다. 크게 어렵지는 않다. 그럼에도 계속 이어지는 경사 때문에 시어머니의 스틱이 도움이 되었다. 2457m의 슐레른 자연공원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오후 3시 산장 도착. 이참에 다이어트 어쩌고 저쩌고 하던 계획은 맛있는 메뉴 앞에 없던 일이 되었다. 비엔나 슈니츨, 일명 돈가스와 크누들-굴라쉬,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모둠 치즈 한 접시!


남편 왈, 1시간 걸은 것을 트레킹이라 부를 수는 없단다. 뭐 그렇거나 말거나 일단은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고작 1시간의 등산길에서도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니까. 그랬다. 숲에는 많은 길이 있었다. 세상에도 많은 길이 있다. 우리 마음 속의 길도 그렇다. 내려가는 길과 올라가는 길. 평평한 길과 울퉁불퉁한 길. 굽은 길과 곧은 길. 돌길과 흙길. 응달과 양지. 그림자가 드리운 길과 햇빛 비치는 길. 축축한 길과 마른 길.  본 길과 가지 않은 길. 나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나는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 그리고 당신은 또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청산은 말이 없고, 알프스도 그랬다.



호프 알플 산정에서 늦은 점심을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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