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의 마리 Sep 06. 2019

남티롤 돌로미티의 꽃, 로젠 가르텐과 만나다

알프스 트레킹 둘째 날


석양이 질 무렵 장밋빛으로 빛나는 로젠 가르텐과 만나지는 못할지라도, 밝은 햇살 아래 늠름한 로젠 가르텐이라도 만나고 가야 안 섭섭하지.


이태리 알프스의 남티롤 돌로미티 명소, 로젠 가르텐 Rosengarten. (아래 가운데는 엽서 사진임.)



2019. 9. 4(수) 첫날에는 일찍 잠이 들었다. 사실 산에서 크게 할 일은 없다.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책 읽고 글 쓰면 최고인데, 가족과 함께일 경우 그것도 여의치 않다. 저녁 7시 45분경 해가 지자 산속의 기온도 급속히 떨어졌다. 손님들은 모두 야외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해가 있을 동안에는 더울 정도였다. 대부분의 옷차림이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석양이 지자 얇은 점퍼를 꺼내 입었고, 산장에 비치된 야외용 담요까지 동원했는데추웠다. 저녁 8시 반 방으로 올라갔다. 9시 반 취침. 잘 때는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잤는데도 생각만큼 춥지는 않았다.


둘째 날엔 새벽에 잠이 다.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글을 썼다. 아침 8시 가족들 일어남. 아침 9시 식사. 10시 출발. 전날 1시간 트레킹을 하며 땀을 꽤나 흘렸던 에 점퍼를 챙기지 않은  실수였다. 남편 왈, 걸으면 땀이 나서 덥다나. 이럴 땐 누구 말도 안 듣는 게 낫다. 직감이 스승이다. 전날 산장에 오를 때는 서쪽 해를 등에 받으며 걸었다면, 둘째 날은 해가 들지 않는 동쪽 숲길을 걸어야 했다. 나와 남편은 괜찮았는데 예상대로 아이가 걸음을 멈추기만 하면 춥다고 했다. 산허리를 가로질러 가는 길을 힘들어했다. 틈틈이 사진 찍으랴, 아이도 다독이느라 갈 때는 3시간. 올 때는 2시간 반. 왕복 5시간 반이 걸렸다.





산장 뒤쪽 슐레른 산을 향해 수직으로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꺾었다. 오른편의 깎아지른 산 중턱을 오르락내리락 몸통을 가로질러 반대쪽 능선 위로 오르면 산 뒤편에 병풍처럼 펼쳐진 남티롤 돌로미티의 꽃, 로젠 가르텐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 능선에도 산장이 있다. 일명 대피소 산장 슛츠 하우스 챠폰 Schutzhaus Tschafon. 평평한 능선 위에 펼쳐진 풍광이 놀랍도록 수려하다. 능선 위로 올라올 때 나무 수백 그루가 뿌리째 뽑혀 있는 것도 보았다. 나중에 산장으로 돌아와 물으니 작년 10월 폭풍우가 몰아친 결과라고 한다. 우리 역시 산사태든 뭐든 난리가 것으로 짐작했다.


챠폰 산장에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당연하다. 돌로미티가 얼마나 유명한가. 로젠 가르텐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기까지 와서 1,731m의 챠폰 산장까지 오르지 않으면 서운하다. 석양이 질 무렵 장밋빛으로 빛나는 로젠 가르텐과 만나지는 할지라도, 밝은 햇살 아래 늠름한 로젠 가르텐이라도 만나고 가야 안 섭섭하지. 그날은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아서 그 산장에 묵은 사람들은 잿팟을 터뜨렸다고 봐야겠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온통 핑크빛으로 물든 로젠 가르텐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2,981m 산에서 무슨 일인들 못 일어나겠나.





챠폰 산장에서는 점심을 먹었고, 애플 슈트루들이라는 이름의 둘둘 만 독일식 애플파이를 먹었고, 카푸치노를 마셨다. 햇볕을 충분히 받자 아이도 더 이상 춥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산장 앞 평지에 썬텐용 의자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앞산엔 로젠 가르텐이, 오른쪽엔 눈처럼 하얀 침대 시트가 푸르른 산을 배경으로 펄럭이고 있었다. 햇살이 빛나는 날이었다. 이렇게 좋은 날을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감사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이까지 데리고 빗속에 낭떠러지 좁은 길을 걸을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길은 또 얼마나 미끄러울 것인가.


오후 1시에  도착했던 챠폰 산장을 오후 3시에 떠났다. 석양을 보지 못할 바에야 일찌감치 숙소로 돌아가는 편이 낫다. 미리 땀을 씻고, 편안하게 석양을 보며 저녁을 먹는 것이다. 그날 저녁 메뉴도 훌륭했다. 샐러드도 누들도 좋았다. 12명의 60대 그룹은 그날 저녁의 주인공이었다. 식사를 마칠 때쯤 일행 중 한 명이 아코디언을 켜기 시작했다. 옥토버 페스트 때 들을 수 있는 익숙한 독일의 포크송이었다. 일행들은 노래를 불렀고, 다른 테이블에 있던 손님들도 흥겨움에 동참했다. 노랫소리는 우리가 방으로 올라간 후에도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마지막 산장의 밤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전 02화 알프스 트레킹 산장을 소개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