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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an 10. 2021

집에 오자 눈이 오네

뮌헨의 새해 첫눈


퇴원 후 사흘은 발코니에서 눈구경을 하고, 이후 사흘은 아이와 응팔을 보았다. <응답하라 1988>을. 얼마나 웃었는지! 웃을 땐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처럼 무지막지하게 배가 아프지는 않았다.



2021.1.6 뮌헨에 새해 첫 눈이 내렸다!



퇴원한 지 6일다. 집에 돌아온 그날 밤 뮌헨에는 눈이 내렸다. 얼마나 많이 왔는지 지붕의 눈들이 며칠이 지나도 녹지 않았다. 퇴원하던 날 남편이 병원으로 마중을 왔다. 점심때였다. 조카가 와서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이후 조카는 매일 집으로 와서 새로 준비한 반찬과 함께 점심을 차려주고 간다. 이번 주까지 휴가라 가능한 일이다. 다음 주부터는 내가 해야겠다. 퇴원하던 날 아이는 율리아나 집에서 놀다가 오후 늦게서야 집으로 왔다. 엄마를 보고 울지는 않았는데 오랜만에 만나는 엄마가 낯설고도 좋은지 자꾸 곁에 와서 안겼다.

 

첫날 저녁에는 두 분의 시어머니와 시누이 바바라 모두에게 전화를 했다. 세 사람 다 집으로 돌아온 것을 축하해주었다. 수술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가 1차 목표였다. 쉬운 수술이 어디 있는가. 모든 수술에는 리스크가 있다. 예상보다 길게 보름이나 입원할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었다. 평소라면 그토록 긴 입원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1년 중 가장 한적한 크리스마스 휴가철이라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입원실을 썼던 폴란드 여성 미라는 퇴원이 연기되었다. 미라는 매일 아스피린을 복용했는데 그게 수술에는 안 좋았는지 수술 후에도 복부에서 자주 출혈이 났다.


내가 퇴원한 다음날은 공휴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이웃집 지붕에 소복하게 눈이 쌓여있었다. 전날 퇴원해서 다행이었다. 눈길에 행여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병원에서 친하게 지냈던 폴란드 간호사가 최소 3주면 수술한 상처가 아물 거라고 했다. 3주는 너무 빠르고 나는 4주로 생각하고 있다. (산책은 그때부터!) 아직 허리를 쭉 펴고 걷지는 못한다. 진통제나 항생제는 안 먹는다. 큰 통증은 없는데 자주 뜨끔하기는 하다. 그 정도야 참을 수 있다. 복부 주사만 1달을 맞아야 한다. 주사를 혼자 놓아야 해서 조금 성가시긴 하다. 눈과 추운 날씨 때문에 밖으로 산책을 나가진 못한다. 부종이 빨리 낫지 않는 이유다. 밤에 대여섯 번씩 화장실을 가는 것과 조금만 먹어도 위가 차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카타리나 어머니께서 보내신 과일과 언니가 보내준 책들!



퇴원 후 공휴일에는 카타리나 어머니가 하도 기다리시는 바람에 바바라와 아이가 대표로 어머니댁을 다녀왔다. 독일의 코로나는 여전히 잡히지 않고 록다운은 1월 말까지 연기되었다. 다음 주였던 아이 김나지움 개학도 연기되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두 분 시어머니는 백신 접종이 빨리빨리 진행되지 않는다며 걱정이 크시다. 요양원과 80세 이상 고령자가 접종 1순위다. 크리스마스 때만 해도 총 모임 인원이 5명까지 허용되었는데 이제는 딱 한 명만 조부모 등 남의 집을 방문할 수 있다. 독일은 아직 한국만큼 한파는 없다.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한파 소식이 들려오기는 했다. 지난해와 지지난 해 겨울에는 눈을 구경하기도 힘들만큼 따뜻한 겨울이었는데.


카타리나 어머니댁을 방문했던 아이가 과일을 잔뜩 들고 왔다. 어머니가 보내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열대 과일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셨던 모양이다. 내가 좋아하는 파파야, 망고, 파인애플, 베이비 바나나와 심지어 감까지. 파인애플부터 먹었다. 다음날 아침엔 남편이 파파야 주스를 만들어주었다. 조카도 파파야를 사 가지고 왔다. 열대 과일이라 음의 기운이 강하다고 해서 파파야를 먹을 땐 소금을 뿌려먹는다. 집에 오니 언니가 보낸 책과 소포도 도착했다. 새로 보내준 얇은 전기 매트를 침대 위에 깔고 병원에 들고 갔던 소형 매트는 부엌의 장의자 위에 놓았다. 서울의 K언니가 물탱크가 딸린 온수난방매트를 보내준다는 건 어렵게 사양했다. 쉽게 세관을 통과할 것 같지가 않았다.


매일 책도 읽고 있다. 암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어떤 시각을 가질 것인지, 책을 읽을수록 생각도 방향도 구체적이 되었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기도 전에, 암일지도 모른다는 담당샘의 말 한마디에 당장 내가 살아온 생활습관을 360도 바꿔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마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책을 읽고 암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암은 나를 데리러  저승사자가 아니다. 암은 오랜 시간 내 몸의 떨어진 면역 시스템이 키워온 병이다. 그것이 통증으로 비상사태임을 알려준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몸도 마음도 음식도 생활습관도. 성공 여부는? 모른다. 그러나 두렵지 않다. 내 몸에 일어난 일이니 내가 적극 책임을 질 수밖에. 내가 확신하는 건 나는 암을 극복할 것이란 사실 뿐!



첫눈 오는 날엔 눈사람을 만들자.(남편이 찍어서 보내준 사진들!).



눈이 온 날 아이는 스키복으로 무장하고 파파와 공원으로 갔다. 김나지움에서 새로 사귄 친구 한나와 이자르 강변에서 종일 눈사람을 만들고 돌아왔다. 눈사람은 다음 날도 녹지 않았다. 이튿날엔 율리아나 엄마가 전화를 했다. 이자르 강변 남쪽 숲에서 눈썰매를 탈 수 있는 곳을 발견했다고. 아이는 율리아나와 율리아나 남동생과 오전 내내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점심때 집에 들렀다가 오후에 다시 율리아나 집으로 놀러 갔다. 엄마가 아프다고 징징거리기는커녕 친구들과 노는데 바쁠 나이라서 안심이 되었다. (안심하세요. 저는 방콕했습니다!)


집에 와서 첫 사흘은 집이라는 공간 사이클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 삼시 세 끼를 먹는 시간과 그 이후. 집안일을 어느 정도까지 하거나 안 할지.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남편과 아이와 조카의 도움을 어느 정도까지 받을지.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빨래 돌리기처럼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청소는 하지 않았다. 조카가 끓여준 국과 밥을 챙겨 먹는 일은 하고, 설거지나 남편 음식 챙기기는 하지 못했다. 잡곡밥을 잘 먹는 아이는 엄마와 함께 먹기도 하고 파파와 먹기도 했다. 밥을 먹고 나면 복도를 걷거나 부엌에서 의자를 잡고 제자리걸음을 했다. 첫 사흘 동안은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침대에서 쉬거나 잠을 자기도 했다.


후 사흘은 아이와 응팔을 보았다. <응답하라 1988>을. 수술 전에 아이와 유튜브로 하이라이트만 본 적이 있는데 스토리가 끊어져서 몰입이 안 되었다. 이 얘기를 듣고 조카가 자기 넷플릭스 비번으로 아이 아이패드로 응팔을 보게 해 주었다. 나보다 아이가 더 좋아했다. 한국 드라마는 자꾸 중독이 돼. 한번 보면 자꾸 보게 돼. 진짜로 끊을 수가 없어. 그게 정답이야! 지난 이틀 동안 아이와 나는 총 16편을 돌파했다. 오늘 남은 건 네 편의 에피소드. 얼마나 웃었는지. 나는 배가 당기고 배속의 장기가 통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맘 놓고 웃을 수도 없는데. 그런데도 웃을 땐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처럼 무지막지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아이는 엄마와 함께 무언가를 재미있게 보고 웃는다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라마 본다고 얼마나 무리를 으면 어젯밤엔 자다가 토하고 한바탕 난리를 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 응팔을 사수할 것이다. 감칠맛 나는 조연들이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그 드라마를.



눈 온 다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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