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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30. 2020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아직 병원입니다만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상처가 덜 아물어서 입원은 2주로 연장되었습니다. 혼자 일어나 걷고, 먹고, 기운을 내서 구독자님들께 안부를 전합니다.



2020.12.21(월) 병원에 입원하던 날 아침 하늘.



수술은 이렇게 끝났다.

자궁 육종암 : 자궁, 난소 적출, 림프절 절단.

배꼽 아래부터 배꼽 위까지 세로 개복.

척추 전신 마취. 6시간 소요.

전문의 2명 집도.




12/21(월) 


수술 전날이었다. 아침 8시 입원. 병원 도착하자 하늘이 성당 천정화처럼 곱게 채색 중이었다. 입원실을 배정받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개인 물품을 옷장에 정리  침대에서 책을 읽었. 병원에서 보낸 시간 중 이때가 가장 즐겁고 평온한 시간이었다. 오후 2시. 침대에 실려 비뇨기과로 향했다. 그날 오후 나는 조금 중대한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소변줄'을 다는 일과 림프절 절단과 관련 서해부 양쪽에 조그만 물주머니가 달린 관이 꽂혔다. (알기 쉽게 '림프줄'이라고 부르자.) 그래서 물주머니만 세 개가 되었다.


그날 밤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수술도 못 받아보고 죽는 줄 알았다. 소변줄과 양쪽 림프줄까지 달고 비뇨기과 대기실에서 깨어난 게 오후 4시. 입 안이 바짝 말라 간호사에게 물을 마셔도 되냐니까 된단다. 차가운 가스 물을 주더라. 마셨지. 그리고 끝없는 대기. 저녁 7시에야 일반실 간호사 한 명이 나를 데리러왔다. 밤새 복통과 설사를 했다. 나중에는 양손과 양발이 차가워지고 마비 증세도 왔다. 당연히 못 잤다. 나중에야 뜨거운 물을 들이부었지만 한번 탈이 난 배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날 당직을 섰던 간호사들은 지금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라도 그랬겠지.




 12/22(화)-24(목)


새벽 5시쯤 조금 진정되었. 지쳐 잠다. 오전 7시에 마취실로 향했다. 마취 담당 여의사도, 척추 마취가 얼마나 지긋하게 아픈지 깜짝깜짝 놀라는 나를 붙잡고 격려해주던 간호사너무 친절해서 간밤의 끔찍했던 시간마저 잊게 다. 오전 8시. 수술을 집도할 제1 전문의와 인사를 했다. 제2 전문의로 등장하실 담당샘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금세 잠이 들었다. 오후 4시에 집중 치료실에서 눈을 떴다. 수술은 오후 2시에 끝난 것 같았다.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편안하고 기분이 개운다. 대수술에 걸맞게 깔끔마무리 같다고 할까.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한다. 담당샘이 남편에게 전화를 주었다. 생각보다는 시간이 더 걸렸지만 잘 정리되었다고.)


집중 치료실에는 사흘을 머물렀다. 원래는 하루나 이틀 정도 있다가 난리 난리 쳤던 일반실로 되돌아가야 했으나 고맙게도 혈압이 낮아주시는 바람에 하루 더 연장했다. 살다 살다 저혈압이 되다니. (나는 원래 고혈압 환자다. 자랑은 아니지만..) 치료실 하나에 두 명의 환자와 한 명의 전담 간호사가 있었다. 24시간 보호받는 기분이었다. 중환자실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시종일관 밝고 가벼운 분위기였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간호사들이 얼마나 프로답고 헌신적인지 환자로 누워있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무통이 달려있어 통증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수술 후 깨어나서부터 집중실을 떠날 때까지 가스가 나와주어서 배에 가스가 차는 일은 없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게 수술 자리보다 더 아프다. 배 속을 탁구공만한 둥근 공이 굴러다니는데 그 때마다 얼마나 아픈지!)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 침대 시트는 물론 이불과 베갯모 갈기. 몸을 돌리기 힘든 환자들을 위해 아침저녁으로 이불을 돌돌 말아 방향을 바꾸어가며 등 아래에 받쳐주기. 아침마다 몸을 닦아주고,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닦을 젖은 수건과 마른 수건, 양치를 하도록 치약과 칫솔과 물받침 통과 물컵을 갖다 주었다. 매 시간 모니터에 찍히는 내 상태를 기록하고, 의사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맞았다. 집중 관리실은 그녀들의 잠시도 쉴 틈 없는 집중 노고와 관리로 운영되었다. 둘째 날은 간호사의 도움으로 침대 가장자리에 앉는 미션 중 어지러움. 셋째 날 다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가 의자로 이동하는 미션 중 잠깐 졸도를 다. 그때 내 혈압은 70/50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수혈이 결정되었다. (수혈 후 아무 이상 없었고, 혈압은 정상으로 돌아옴!)




젊고 꼼꼼한 여의사 등장. 독일인은 아니고 외국인이었다. 장하기도 해라! 그녀의 긴 설명을 다 소화하기가 힘들어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스피커폰을 켜고 다시 처음부터 반복. 인내심이 대단한 의사였다. 수혈이 이렇게 까다로운 거였나. 이유는 혹 있을지도 모를 수혈의 부작용 때문에 최악의 경우까지 환자에게 미리 알릴 의무가 있다는 것. 그것까지는 좋은데 듣다 보니 두려웠던 수술보다 더 공포가 밀려왔다는 게 문제였다. 의사가 설명을 마치고 다시 실험실로 돌아가 최대한 내 혈액과 가까운 피를 골라 오는 동안 남편이 전화로 말했다. 수혈, 그거 그냥 하는 거 아닌가? 그 한 마디에 안심이 되어 수혈을 하는 오후 2시와 3시 사이 1시간 남짓 동안 간만에 나온 햇살에 폭 싸여 비몽사몽 잠이 들었다.


문제는 음식이었다. 독일에 회복기 환자를 위한 음식은 따로  없었다. 수술이 끝난 저녁에는 간호사에게 따끈한 차를 주문했더니 따끈한 감자 수프도 같이 나왔다. 나머지 이틀도 따끈한 차와 플래인 요구르트와 수프 위주로 먹었다. 빵은 들어가지 않았다. 실수는 생과일이었다. 집중 관리실에 있는 동안 세 번 생과일을 먹었는데 작은 귤 하나. 작은 사과 반쪽. 마지막으로 일반실로 옮겨가기 직전 저녁에 포도 다섯 알을 먹고 체하 말았다. 지하세계 하데스에게 발목 잡힌 르세포네의 석류알도 아니고.. 명치가 아팠다. 몇 번이고 간호사를 불러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혼자서 움직이지 못하던 때라 괴로움이 더했다. 또 하필 일반실에서 수술 잘해놓고 무슨 난리인지! 독일의 성탄절인 24일 저녁의 일이었다. 다음날 25일에는 무조건 종일 금식을 했다. 그리고 홀로 일어기를 시작했다. 


 

입원하던 날 병원의 아침 풍경. 입원 기간이 1주 연기되어 퇴원은 2021년 신년초가 될 듯하다. 그땐 또 어떤 풍경을 연출해줄까.


PS. 구독자님들께.

그동안 걱정 많으셨지요?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톡으로 상황을 전하기도 했는데 구독자님들께는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까지 전해야 할지, 글도 마음도 두서가 없을것 같아 엄두가  났습니다. 믿고 기다려 주셔서 고맙고, 굳건히 살아있으니 염려 마시라는 말씀부터 빨리 전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저, 살아 있습니다! 염려해 주신 모든 분들의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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