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마라톤 준비

21k, 아마도 마음의 준비

by 채널김

3달 전, 나는 또 일을 냈다.

큰 일은 아니고 하프마라톤을 신청해 놓은 것이다. 아, 나한테는 큰일이다.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또 일을 던져놨다. 그런데 아직까지 연습을 제대로 한 게 없다.


'이런, 망했네'


대회 날짜가 오지 않길 기도하지만 그게 된다면 지금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진 않았겠지.


아무튼 내가 신청할 때는 7월이고 본격적으로 여름이 깊어지기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때의 나는 3 달이면 금방 실력이 향상될 줄 알았다. 너도나도 나가는 하프마라톤쯤은 수월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왜냐면 3달 전만 해도 약간씩 실력이 상승곡선을 타는 걸 나 스스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름이었어서 너무 덥다 보니 최고의 컨디션을 못 낸다고 생각했다. 이 더위만 지나면 나는 날아다닐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시간은 빨리 감기가 되어 버렸고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 남았다. 왜 항상 이렇게 촉박하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나는 별별 이유로 훈련을 게을리했다.



시간을 3달 전으로 되돌려보자.

대회 등록을 하고 나서 초반엔 꽤 열심히 했다. 한 여름의 시작이어서 너무 더웠던 때였지만 그것조차 적응되는 듯했다. 그렇게 적응하다 보니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 자신감과는 반대로 여름이 깊어지며 점점 실력이 정체되어 갔다. 더위 탓, 장마 탓을 하며 8월이 어영부영 지나갔다.


그리고 9월에 늦은 휴가를 가게 됐다. 일주일간의 휴가를 핑계로 뛰는 게 게을러졌고, 며칠 안 뛰었더니 몸이 무거운 것 같았다. 휴가가 끝나고서도 어쩐지 몸이 적응이 안 되는 거 같고 더 놀고 싶고, 그러다 보니 점점 안 뛰게 되었다.



그리고 연달아서 찾아온 기나긴 추석.

행복했던 그 시간만큼 내 몸엔 지방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렇게 기나긴 휴식기를 가지고 나니 이제 '아차' 싶어졌다. 약간 오버하자면 뛰는 방법을 잊어버릴 때쯤 다시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물론 중간에 조금씩 뛰긴 했었다. 하지만 그냥 몸풀기 정도였고 나름의 양심 해소용이었달까. 긴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와보니 그 사이 날씨는 선선해져서 지금이 빨리 뛸 타이밍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더 오래, 더 멀리 달리기

사실 나는 아직까지 10k 뛰는 것도 꽤 힘들다. 게다가 여태껏 이상은 뛰어본 적이 없다. 대회가 코앞까지 온 걸 보고서야 덜컥 겁이 났다. 중간에 포기 안 할 자신은 있지만 제한 시간 안에 들어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프대회의 평균 제한시간은 2시간 30분이다. 시간 내에 들어오지 않으면 공식 기록도 없고 차량 통제도 풀려서 위험할 수 있다. 나에게 21k를 뛰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느껴졌다.


주말엔 뒹굴거리면서 노는 일상을 정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드디어 나도 보람찬 하루를 보낼 계획이 생겼다. 하프대회 준비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사실 별 거 없었다. 그냥 꾸준히, 천천히 많이 뛰는 것. 내가 지금 당장 많이 뛰어보려고 해도 하루아침에 안 되기 때문에 매일매일 마일리지를 쌓는 방법밖에 없다.


일단 평일에는 시간을 많이 쓰기 힘들다 보니 길게 뛰는 건 주말만 연습하기로 했다. 계산해 보니 10k 이상 뛸 수 있는 주말이 4번밖에 안 남았다. 정말 한 달 남았다. 게다가 요즘 발목도 조금씩 아픈 느낌이 들어서 조심하고 있다.


뭐 어찌 됐든 내 계획은 이렇다.

첫째 주 - 12k

둘째 주 - 14k

셋째 주 - 16k

넷째 주 - 18k

이렇게 주말마다 장거리를 조금씩 늘려가고 평일엔 하루는 뛰고 하루 건너서 10k-11k 정도를 뛰는 것이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첫 주에 12k를 뛰어봤다. 고작 2k라고 생각했는데 2k씩이나 되는 거리였다. 몸이 기억하는 거리는 이미 지났는데 왜 아직도 뛰냐며 심장과 다리가 그만 뛰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동안 한 시간씩만 뛰었는데 그 시간을 훌쩍 넘기니 내 집중력도 바닥이 났다.


장거리 달리기는 체력도 중요하지만 정신력으로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조금만 더'

'나는 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을 스스로 되네이면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저런 마인드 컨트롤도 한두 번이지 조금 지나면 금방 '그만 뛰고 싶다'라는 생각이 정신을 지배한다. 그러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해야 지치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역시나 운동 후 맛있는 음식? 신나게 주말을 즐길 준비?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다 보면 조금 수월해 지지려나?


그나마 위안이 됐던 건 더 멀리 뛰다 보니 새로운 곳을 탐색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동안은 시간이 안되고 체력이 안돼서 가보지 못했던 곳까지 갔다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경험이 있다. 그날은 마라톤 대회가 있었는데 선수들과 우리가 뛰고 있는 길이 일부 겹쳐졌었다. 그러다 보니 하프를 뛰고 있는 사람들과 엉겁결에 같이 뛰었다. 잠깐이긴 하지만 역시 잘 뛰는 사람들을 보고 감탄하고, 또 서로서로 응원까지 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잠깐의 재미가 지나가고 나자 또다시 외로운 싸움이 시작됐지만 말이다.


다 뛰고 나서는 뜻밖의 행사를 발견하는 바람에 맛있는 새우와 파전을 먹을 수 있었다. 기가 막힌 보상이었다. 아, 이 정도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면 언제나 즐겁게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남은 3주도 이 정도만 되면 더 바랄 게 없다.


뜻밖의 보상 너무 좋다

하지만 가뜩이나 거북이 속도인데 더 느리게 뛰어야 오래 뛸 수 있다 보니 걱정은 많이 된다. 그러면서 이러다가 갑자기 풀마라톤 나간다고 깝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걱정은 걱정이고 하고 싶은 건 또 하고 싶으니까 말이다.


과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어쨌든 완주만 하면 다행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