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by 이옥임

고개만 들면 우거진 수풀과 그 너머로 보이는 삐죽삐죽 솟아오른 아파트 빌딩 숲이 한 폭의 그림처럼 너무나도 잘 어울려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충동이 가끔인다.


올 1년은 참으로 행복했었다. 방학을 빼고는 매일 매 순간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늘 그것도 정면에서 대하고 살았으니까. 어디 그뿐이랴. 무려 서른여덟 명이나 되는 소중한 내 아이들과 함께 때론 즐겁고 때론 기쁘게 그리고 속상하고 화가 났던 일까지 모두 내 삶의 일부가 되어 그 어느 것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추억으로 차곡차곡 쌓여서 내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진작에 화법을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절박해지는 요즘 도화지를 펼쳐놓고 단숨에 그려나갈 많은 장면들을 놓치고 사는 일이 가장 안타까웠었다. 청명하고 높푸른 하늘의 뭉게구름 떠가는 모습이며, 빠알간 고춧가루가 이빨 사이에 끼인 줄도 모르고 목젖이 드러나 보이도록 자지러지게 웃어대는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들 모두가 그림과 글감으로 넘쳐나는 것을 특별히 그림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나로선 매우 크다.


글로 표현함에는 한계가 있고 글과 그림의 표현 기법이 다르니 또 다른 맛이 날 터 더 늦기 전에 그리고 후회하기 전에 그림을 배워서 묻어두었던 감동의 물결들을 모두 그림으로 남겨두는 작업을 서둘러야겠다.


어렸을 때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 다니는 일 말고는 무엇을 배운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자랐다. 사실 학교도 겨우 다녀야 하는 형편이었고 이제야 고백하지만 중학교도 검정 고시로 통과를 했으니 무엇을 하고 싶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하고 자란 셈이다.


결혼과 함께 직장에 다닐 때에는 적응하고 애들 낳아 키우느라 정신없어 돌이켜보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게 기억이 희미하다. 아니 신혼시절이 있었나 싶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 손잡은 젊은 엄마들의 예쁜 모습을 보면 그 시절의 내 모습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그 시절을 훌쩍 건너뛴 것 처럼.....


돌이켜보면 정말 열심히 살았다. 주변을 돌아볼 새도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살아왔다. 어렸을 적 가난의 악몽이 싫어서 다시는 가난으로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살면 부자가 될 거라는 믿음과 신념으로 살았었다.


다 같이 어렵고 힘들었던 시대였기에 말 그대로 가난이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다만 불편할 따름이라는 말을 위안으로 삼기도 했었다.


그런데 한참 감수성이 예민했던 어린 시절, 가난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상처받았던 멍울들이 가슴 속 한가운데 턱 허니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나이가 먹어서야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생채기였다. 여리디여린 가슴을 무참히 후벼파고 박힌 아픈 상처. 문제는 쉽게 치유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그 상처의 통증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으며 가난이 상처로 남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20여 년이 훌쩍 넘긴 지금에 와서야 못내 아프다. 무조건 절제해야 하고 참아온 세월만큼 패인 상처의 골이 나도 모르게 깊어진 모양이다.


그러나 마냥 아파해만 하기보다 그 상처를 말끔히 치유할 방법을 찾아야 할 일이다. 골 박힌 상처를 밀쳐낸다고 무조건 지우려만 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파할 만큼 충분히 아파해야만 그리고 끌어안고 보듬어야만 그 상처가 없어진다는 것을 절감한 나는 그래서 더 이상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더 늦기 전에 가슴 속 감동들을 모두 끌어내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글 쓰는 공부도 꾸준히 해야 하고 그림의 기법도 부지런히 익혀야 한다. 그래서 마음껏 내 안의 상처들과 감동들을 혼합해서 멋있는 작품으로 빚어내고 싶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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