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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Jun 15. 2018

<드라이브>

나의 색으로, 그리고 너의 색으로 물들어가는 영화

딱 5분의 시간을 주지.
출처: 영화 <드라이브>

전갈이 그려진 외투를 입고 다니는 한 남자가 있다. 전갈이라 하니 한 우화가 떠오른다. 강을 건너고 싶었던 전갈은 개구리에게 자신을 업고 길을 건너 달라고 부탁을 한다. 하지만 강을 건너는 도중 전갈은 개구리를 찌르고 만다. 개구리는 자신이 죽고 나면 전갈도 강에 빠져 죽을 게 뻔한데 왜 찔렀냐며 묻는다. 그러자 전갈은 자기도 그의 본성은 어찌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본성을 무시하고 어리석게도 강을 건너고자 했던 전갈의 이야기. 이야기 속 전갈을 닮은 그는 눈 앞에 놓인 강을 두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자신을 드라이버라 소개할 뿐 이름 한 번 등장하지 않는 이 남자. 그는 그의 뛰어난 운전 실력으로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면서 간간히 스턴트맨 알바나 범죄자들이 도망치는 것을 돕는 일들을 하면서 조용하게 자신만의 길을 가던 사람이었다. 차갑고, 말 수도 적던 그에게 어느 날, 어린 아들과 단 둘이서 살아가는 아이린이라는 옆집 여자라는 변수가 들어오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입을 틀어막고 보게 되는, 그래서 긴장감을 놓지 않게 되는 영화였다. 아름다움 속에 잔인함이 있다. 바로 이 느낌이 이 영화와 이 남자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드라이브>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베이비 드라이버>의 박진감 넘치고 경쾌하고 신나는 스피드로 매혹시켰던 영화와는 달리 생각보다 화려한 드라이브 씬이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의 첫 시퀀스에서도 드러나듯, 경찰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빠르게 속도를 내다가도 때를 지켜보기 위해 숨어서 멈췄다가 움직이는 그의 드라이브 기술을 보면서 이 영화의 스타일과 더 나아가 그의 캐릭터의 전부를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느려지다가도 폭발하는 스피드의 완급조절을 적절히 이용하는 그의 드라이브 스타일처럼 고요하게 잠들어 있던 감정들이 폭주하는 그의 변화를 지켜보는 묘미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70,80년대 풍의 조금은 복고적인 스타일의 음악과 네온처럼 화려하고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색감 또한 이 영화와 잘 어우러지는 매력이다.

당신 곁에 있었다는 건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어.
출처: 영화 <드라이브>

그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거나 단답으로 말하고, 그에게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그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거나 감정을 잘 드러내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멀리서 지켜보거나 누군가와의 거래를 통해서 꼭 해야 할 일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그러던 그가 아이린과 그녀의 아들을 만나고서 수줍게 짓는 미소는 보고 있는 이 또한 어느새 함께 미소 짓게 되고, 그처럼 얼어버린 맘도 녹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5분이라는 시간을 주고 그 거래된 시간만큼만 남을 도울 뿐 다른 이들과의 선이 분명한 그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위해 차를 태워 집에 데려다주고, 짐을 들어주고, 아름다운 석양을 함께 만끽한다. 그렇게 그는 그녀의 색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에서 주목할 수 있는 요소는 바로 색깔이다. 차가운 파란색은 그를 상징하고, 석양을 닮은 주황색은 아이린의 세상을 상징한다. 그가 처음 아이린의 방에 들어왔을 때,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그를 비추는 쇼트 뒤에서는 파란색 벽지가, 아이린의 뒤에는 주황색 벽지가 드리워져 있다. 정확히 보색 관계에 있는 파랑과 주황. 이 둘의 우연한 만남은 점점 서로의 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아저씨가 맡아줄까?
출처: 영화 <드라이브>

감옥에 있던 스탠다드가 출소하고 나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지만 쌓인 빚더미로 협박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드라이버는 스스로 그를 돕겠다고 나선다. 스탠다드의 옆에 있는 아이린과 어린 꼬마 아이를 지키기 위하여. 아이가 쥐고 있던 총알을 자신이 맡으면서 그는 그가 경계하던 선을 넘기 시작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4명이서 같이 식사를 하던 장면에서 그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로 맘먹은 순간 배경엔 온통 파란색으로 그들을 감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드라이버는 그의 비밀스런 공간을 내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스탠다드를 저격하기 위한 협박이었음을 드라이버는 뒤늦게 깨닫게 된다. 원래 5분이 넘으면 기다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었던 드라이버가 그 답지 않게 차 문을 열고 나와 당황한다. 그렇게 일이 꼬여 그의 작전은 수포로 돌아간다. 후에 그는 이 모든 일이 버니와 니노 일당에 의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고, 한 가족에게 상처와 슬픔을 안겨준 대가로 피의 복수를 시작한다. 그의 방까지 공격해 들어오는 일당 무리들의 총격전으로 그의 얼굴에는 피범벅이 된다. 차가웠던 그의 색이 이제 그녀의 색으로 물들어 간다. 다른 누군가의 드라마 속 대역이었던 그가 후반부에서는 오로지 그의 드라마를 위해, 스턴트 할 때 썼던 마스크를 쓴다. 이제 뒤집어쓴 마스크가 그를 위한 대역이 되는 것이다.

 a real human being,
and a real hero.
출처: 영화 <드라이브>

전갈인 그는 5분 뒤에 차에 내려서도 안 되고, 애초에 옆집 가족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어야 했고, 오로지 그만을 위해 도망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화 속 전갈과 같은 선택을 했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도 그는 아이린을 지키기 위해 개구리의 등에 올라탔다. 그렇게 그는 아이린이 일깨워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의 본성을 드러냈고, 그녀를 위해 희생마저 자처했다.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college의 <a real hero>라는 곡의 가사처럼 결국 그도 사람이었다. 그리고 인간이기에 어리석게도 본성에 따른 선택을 한 것이다. 도망치지 않았던 그의 바보 같은 선택을 비아냥거리고 싶은 게 아니다. 그게 바로 진짜 인간의 모습이며 감정에 충실히 사랑하고 또 누군가를 위해 이 한 몸 내어 희생할 수 있는 이가 바로 진짜 영웅이다.


평점: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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