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EESIA May 07. 2018

<마지막 날>

등대처럼 외로이 서 있는 이들을 위한 영화

사랑해. 시몬.
출처: 영화 <마지막 날>

바람에 한 없이 흔들리는 갈대.

쉼 없이 다가와 부서지는 파도.

불안한 듯 요동치는 쇼트.


한 편의 시 같은 영화였다. 이야기는 마지막 장면의 일부를 처음부터 잠깐 등장시킨다. 처음과 끝을 일치시키며 우리는 영화 제목처럼 그에게 마지막 날이 어떤 과정으로 그리고 어떤 감정으로 다가왔는 지를 보게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시몬이 낡은 카메라로 찍는 영상만큼이나 빛과 하늘 그리고 피사체의 흔들리는 모습들이 아름답게 묘사된다는 점이다. 조용한 영화지만 카메라 촬영 소리나 시몬이 혼란스러워 할 때 흘러나오는 피아노 곡도 영상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그래서 사실 내용보다도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그 화면의 잔상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다.

출처: 영화 <마지막 날>

반면, 스토리는 다소 지겨울 수도, 어쩌면 진부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비춰지는 상황들을 보면 시몬은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보내기 위해 오랜만에 집에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시몬의 예술 활동에 대해서 인정해주지 않는 아버지와 깊은 갈등이 있고, 조금 남다른 시몬과 사이가 안 좋은 누나와는 말다툼도 잦다. 그런 시몬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루이스라는 여자를 집에 데리고 온다. 가족들에게는 학교에서 만난 친구라고 소개해주고, 루이스에게 자기 방도 내어 준다.


그녀를 향한 시몬의 마음은 곳곳에 드러난다. 그는 늘 루이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주고, 그녀를 위해 바이크를 핑크색으로 칠해 놓는다. 핫초코를 태우다 무릎을 데인 그녀의 상처를 정성껏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흰 드레스에 맞춰 머리에 조심스레 장식도 달아준다. 하지만 그녀는 시몬의 오랜 친구인 매튜에 더 관심이 가는 듯하다. 매튜에게 이미 그가 왔다는 소식을 전했다는 어머니의 말에 당황하는 시몬의 모습을 보면 그가 가족을 떠나 있기 전,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감정의 교류가 있었던 것 같다.


매튜와 루이스, 두 사람을 바라보는 시몬의 감정은 외로움으로 사무친다. 그의 마음은 두 사람에게 닿지 않는다. 결국엔 파티 후 찾아간 술집에서 모두 노래하고 춤추는 군중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앉아있는 그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진 않지만 폭발해버린 그의 감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사랑받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동정하듯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서 벗어나려 홀로 수영을 하며 부푸는 자신의 감정을 혼자서 다독여야 했다. 하지만 늘 혼자인 그에게 두 사람은 너무나 가혹했다. 특히 셋이서 테니스를 치는 장면에서 그랬다. 역시나 매튜는 루이스와 한 팀이 되고, 시몬은 혼자였다. 시몬은 두 사람이 쳐내는 공을 혼자서 힘겹게 받아쳐내야 했다.

둘과 혼자의 차이.

그 차이가 공허함을 넘어서서 힘겨움으로 다가온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실감하게 한다.

너는 떠날 때가 되서야 그 말을 하는구나.
너는 떠나면서 사람을 사랑하나 보네.
출처: 영화 <마지막 날>

그런 18살 시몬은 아이도 어른도 아닌, 혼란스러운 시기에 있는 외로운 아이였다. 그는 한편으론 어머니의 사랑에 기대는 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후반부에 다다르면 사실 어머니 또한 형의 죽음을 감당하지 못해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와 자신을 낳았다는 사실을 그는 알게 된다.


결국엔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조차 자신은 누군가를 위로할 존재이자, 대신할 존재 일 뿐이었다. 여기서 조금 막장의 전개가 있는데, 심지어 자신의 진짜 아버지가 루이스의 아버지였다는 사실까지 드러난다. 솔직히 뜬금없는 이런 전개에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를 힘들게 했던 두 가지를 하나로 연결시키면서 매정하게도 시몬을 가장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몰아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몬은 늘 누군가의 모습을 찍어주는 사람이었다. 또, 바다 한가운데서 홀로 빛을 밝히는 등대이자 누군가에게 담뱃불을 건네는 존재였다. 모든 것을 다 내어주기만 했던 시몬에게는 사랑이 필요했다. 정처 없이, 때로는 빠른 속도로 걸어가는 시몬의 왜소하고 힘없는 뒷모습이 안쓰럽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외로움의 감정이 무엇인지, 혼자라는 기분이 무엇인지 시몬의 상황처럼 극단적으로 끌고 가면서 그 감정을 조금은 알게 된 것만 같다.

출처: 영화 <마지막 날>

결국 시몬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머리를 부딪혀 죽은 갈매기가 되었다.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배위에서 바다 경치를 바라보는 시몬의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몬이 화면을 가만히 응시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여태껏 시몬이 그러했던 것처럼 정작 시몬을 찍어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평점: ★★☆ 2.5



이전 14화 <드라이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