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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Nov 24. 2018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느낌'있는 영화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출처: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삶은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은희경 <새의 선물> 中

비단 어깨에 걸친 옷자락 하나에도 사연이 있는데.

비단 손짓 하나, '영아'라는 부름 하나에도 사연이 있는데,

우리가 스쳐 지나간 이 세월에는 어찌 사연 하나 없으랴.


군산은 우리 역사의 슬픈 자욱이 채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도시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곡물을 수탈당하던 항구도시이자, 미군 기지촌과 위안부 집창촌이 있던 곳. 윤영과 송현이 우연이 이 곳에 와 하필 일본식 민박집에 머무르게 되는 것도 그 이유다. 어쩐지 군산의 풍경은 일본의 후쿠오카를 떠올리게 한다.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한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고, 그분의 시를 사랑한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이 조선족이라면? 사람들이 흔히 외면하고 마는 조선족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그 시인을 예전처럼 바라볼 수 있을까.


송현의 대사처럼 그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지 않았더라면 그도 그냥 조선족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윤영의 집에서 일하는 조선족 출신 도우미 아주머니가 윤동주 시인의 먼 친척이었다고 하는 우연적인 전개는 앞서 언급한 가정을 기정사실로 만들며, 우리의 꼿꼿한 사고방식을 흐트러뜨린다. 그래서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지.'라는 말이 오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참 많은 인연과 우연이 연결되어왔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기에. 영화가 말하는 방식처럼,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을 천천히, 하나씩 거슬러서 올라다가 보면. 그리고 오늘에서 과거로, 그리고 그 과거에서 더 높은 과거로 올라가다 보면 말이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조선족을 비롯한 이주민, 혹은 난민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끔 한다. 그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호의적이어야 한다는 당위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선의, 도덕심, 양심, 뭐 그런 모호한 것들도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논점이 이상하게 맞물리지 않는 구석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되는 것. 맘 한구석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 찝찝하고도 이상한 그 느낌이 실로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바가 아닐까.


세상을 향한 변화는, 특히 인간을 둘러싼 오해와 혐오의 감정들을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은 때론 거창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작은 느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출처: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민박집에서 만난 이사장은 여느 사람 같지 않게 필름 카메라로 풍경 사진을 찍는다. 그중 몇 장은 방 벽면에다 전시해놓기도 한다. 그의 딸 주은은 사람들과 왕래하지 않고, 홀로 방구석에 앉아서 흑백의 cctv 화면으로 세상을 들여다본다. 어쩐지 그들의 흑백 사진, 흑백 화면은 혼자서 군산의 길거리를 지나가던 윤영이 일제강점기 당시의 순간을 담은 전시 사진들과 평화의 소녀상을 지그시 바라보는 행동과 겹쳐진다. "제가 옛날 사람이라서요." 그의 말마따나 그들은 옛날, 즉 과거를 사는 사람들이다. 아내를 잃은 슬픔, 어머니를 보내야만 했던 상처가 있다. 시간이 흐른다고 오늘이 오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어떤 장소는, 혹 어떤 기억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

출처: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맨 처음에 등장해야 할 영화 제목이 이야기 중간에 등장하게 하는 연출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군산에서의 여정을 보여준 뒤, 다시 그 모든 여정의 시작이었던 서울로 돌아가 그들이 어떤 계기로 군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다 보니 현재 시점에서 만났던 인연들이 과거 시점에서 비슷하게 마주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과거에서 현재가 아닌, 현재에서 과거의 방향으로. 영화는 우리가 자연스레 느끼는 기시감을 역추적하여 오늘의 인연이 결코 가볍게 오는 것이 아님을 넌지시 알려준다.


작품이 담고 있는 메세지만큼이나 눈에 띄는 건 아마 배우들이 아닐까. 전직 시인 윤영 역의 배우 박해일의 연기는 말과 행동에서 사뭇, 늙은이 같은 구수함이 느껴질 정도로 노련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혹 능청스럽게 역할을 소화한다. 또,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싶은 송현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가 보여준 흐느껴 우는 연기는 스크린을 넘어서서 눈물의 짠내가 느껴질 정도다. 이 두 배우가 가진 인간미 물씬 풍기는 매력은 영화의 잔잔한 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소탈한 대화에서 잔잔하게 쏟아지는 유머는 우리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를 올려다 준다. 그 밝은 기운과 함께 그들의 길을 그저 따라가다 보면, 이상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이 만나게 된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여기 와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농담 같은 말이 힘 있게 우리 마음으로 밀려오는 순간 말이다.

출처: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이 영화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느끼는 극단적인 감정의 양갈래를 하나로 합치하고자 한다. 유독 특별히 여기던 것을 한 단계 내려놓으라 설득하고, 유독 멸시하던 사나운 눈빛을 온화하게 풀어놓는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가 끝이 나고, 극장을 빠져나오면 이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내가 지나는 이 곳, 내가 지나친 모든 사람들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다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느낌 있다.

비가 자작하게 지붕 위를 스치는 소리.

심심한 동네를 산책하는 두 사람의 발걸음.

텅 빈 방, 창 사이로 흐르는 햇살과

마음을 기분 좋게 간질이는 바람결이 느껴진다.

마치, 내가 그곳을 거닐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숱한 우연과 셀 수 없이 많은 인연이 지나간 이 시간의 흐름을 함께 걷고 있는 우리.

이 또한 참 느낌 있다.


평점: ★★★★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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