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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28. 2021

나쁜 시가 긋고 간 상처에 붙인 안도현이라는 반창고

글쓰기 방법론 : how 2 write


어쩌다가 건너 건너 아는 분이  자작시를 읽게 되었다. 오래전에 등단을  분이고 시문학 동인지에도 실린 시라고 하는데 가슴에 들어오질 않았다.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도무지  같지가 않고 마치 유튜브에서 단풍잎 떨저지고 시냇물 흐르는 배경에 궁서체 자막이 엄벙덤벙 위로 흘러 올라가는 '감성시' 같았다. 나는   분을 건너 건너 아는 걸까 괴로워하는데 난데없이 가슴에 찌익 하고 상처가 생겼다. 얼른 책꽂이에 가서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2』를 꺼냈다.  뒤에 안도현 시인 편이 있었다. 거기를 펼치고 허겁지겁 아무 시나 하나 읽었다. <은행나무>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산서면사무소 앞

아름드리 은행나무 두 그루가

어느날,

크게 몸을 흔들자

은행 알들이 우두두두 쏟아져내렸다

그게 너무 보기 좋아서

모두들 한참씩 바라보았다


<은행나무> 전문


신경림 시인은 웬만한 사람 같으면 마지막 "그게 너무 보기 좋아서 / 모두들 한참씩 바라보았다" (책에는 '그게 보기 너무 좋아서'라고 오자를 냈다) 대신 인생 운운하는 구절을 넣고 싶었을 테지만 그런 유혹도 잘 견뎌서 실감 나는 표현이 되고 있다고 쓰고 있었다.

나는 그 해설을 읽고서야 비로소 무릎을 쳤다. 내가 읽은 건너 건너 아는 분의 시에는 본문에 의미를 설명하는 구절들이 너무 많았고 삶, 인생 이런 단어가 난무했던 것이다. 내가 인생이나 삶이 직접 등장하는 글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떠올렸고 '오롯이' ‘허허로운’ 같은 잰체하는 부사나 '어화 벗님네들...' 같은 의고체도 몾시 싫어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시를 쓰는 건 어려운 일이고 시와 '시 비슷한 것'음 분명히 다르다(한창 시 잘 쓸 때의 장정일 시인이 이에 대해 쓴 기가 막힌 평론의 제목을 지금도 기억한다 : 시와 시적인 것의 거리). 그래서 나는 시야말로 천재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쩌다 나도 시 비슷한 걸 쓸 때가 있긴 하겠지만 그건 내가 잠깐 천재가 되었을 때다. 누구나 가끔은 천재가 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자주 있지 않으므로 글을 쓰고 싶다면 그저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꾸준히, 열심히 읽고 쓰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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