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Apr 03. 2021

글을 쓰면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지

테드 창의 소설에서 글쓰기의 효용을 확인하다

기사를 쓰기 위해 지방으로 취재를 다니며 스마트폰으로 녹취를  적이 있었다. 녹음할  몰랐는데 나중에 녹취를 풀면서 다시 들어보니 정말 가관이었다. 나는 말도  되는 언어의 제조기였고 의미 없는 어조사 남발의 일인자였다. 어순은  꼬이고 단어의 사용은 부적절했으며 질문 내용도 중구난방이었다. 어딘가 숨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걸 듣고 해체해서 단정하고 의미 있는 문장으로 다시 정리하는  나의 일이었다. 아무리 말을 잘하는 사람도 글로 쓰기 전엔 엉망일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깨달음을 얻은 사건이었다.


작년에 나온 테드 창의 소설집 『숨』에 들어있는 단편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엔 유럽인 선교사 모스비가 아프리카 서부에 가서 지징기라는 어린이에게 글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온다. 난생처음 글이라는 걸 접하고 신기해하는 지징기에게 모스비는 말한다. "글을 쓴다는 건 단지 기억을 위해서만은 아니란다. 글을 쓰면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지."

테드창은 글이란 단지 누군가가  말을 기록하기 위한 방법일  아니라 말을 하기 전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단어들 또한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생각의 조각이다. 그래서 단어들을 옮겨 적으면 생각을 벽돌처럼 잡고 다른 배열들 속에 끼워 넣을  있다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문장의 편집을 벽돌쌓기로 비유해 이토록 멋지게 표현하다니, 역시 테드 창이다. 뭔가 칼럼을 쓰기 위해  소설을 다시 읽다가 글쓰기의 효용에 대한 적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메모 삼아 남겨둔다. 글을 쓰면 생각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역시 글쓰기 참고서로는 뛰어난 작가들이  소설을 따를 만한  없다. 소설을 읽자.

이전 29화 나쁜 시가 긋고 간 상처에 붙인 안도현이라는 반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