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모자란 어른이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무언가를 이루려면 마음보다는 돈, 능력, 인간관계 등등이 더 중요하다. 어른은 그 사실을 안다. 하지만 어른이어도 그 말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꿈은 돈으로 꾸던 게 아닌데, 그게 안된다니!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능력이 안된다니! 나는 저곳에 가보고 싶은데, 아는 사람이 없어서 안된다니!
꿈, 해보고 싶은 일, 가보고 싶은 세계가 제한된다는 것뿐일까. 갓 서른을 넘으면서 한 번, 삼십 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또 한 번, 이제는 투정도 마음껏 부리면 안된다는 사실이 억울했던 기억이 난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압박과 책임감은 최고조에 달했고, 이만큼 했어도 별로 달라질 건 없다는 사실과, 이제는 정말 내가 다 알아서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의 감정을 마치 사춘기 한가운데 다시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무엇이든 판단에 따라 할 수 있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인으로서의 자유가, 아마 처음엔 화가 났었나, 무서웠었나. 음, 이 나이는 처음이라.
거기다 확실히 삼십 대에 들어서니 잔병치레가 늘고, 몸이 망가질 때마다 회복하는 속도가 더뎠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또 새로운 모습으로 아파서, 한동안은 불면증과 강박증에 시달렸다. 새벽 4시쯤 도로를 치우는 청소차 소리에 샛눈으로 밝히던 아침들. 애매한 나이 때라 그런지 집에서나 밖에서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자주 놓이고, 마음도 싱숭생숭해 일상의 물에 잠겨 늘 허우적허우적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 괜찮을 거라 안심시켜줄 어떠한 믿을 곳이 없고, 그 불안함을 홀로 견뎌내야 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언젠가는 다 괜찮을 거라는 걸 알아간다는 것일까. 그리고 그 괜찮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일까. 서류상으로 이미 한참 어른이어도, 아직도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다.
어떻게든 일상은 온다는 것이, 아무리 아파도 언젠가는 익숙해진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일상이 된다는 것을 알고 살아간다는 것이.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는 법도 잊은 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나이가 들어가며 생전 처음 마주하는 일들이 이렇게나 많을지 몰랐다. 그리고 설마 내가 그것들을 그만큼이나 감당해 낼 그릇이 안 되는지도 몰랐다. 다 잘될 거라는 말은 늘 꾸던 꿈이었다. 그러나 그 꿈조차 꿀 시간이 없어졌을 때, 그 꿈이란 것이 마치 막연히 안주하게 만들었던 망상의 말 같았다. 막연히 안주하고 있던 망상의 바닥이 점점 좁아져갈 때 결국 나는 울었다.
자신에 대한 연민은 차치하고,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 예컨대 나의 어른들의 유한한 시간이 수치화돼서 내 앞에 주어졌을 때, 나는 서러워하며 울었다. 다 큰 어른이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나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해서 울고 있다는 걸 깨닫던 날, 자신이 겨우 그 정도의 사람임을 절감했던 날, 나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숙하고 이기적인 사람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힘든 날들을 버텨왔다고 해서 강한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는 걸, 오히려 더욱 약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나는 더 몸을 사리고, 더 현실에 안주하고, 옳고 그름에 무뎌지고 감정에 인색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걸.
어른이 되면 웬만한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 구할 수 있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대처할 방법들쯤은 다 알고 사는 줄 알았는데. 늘 조금 어리숙했던 나라서 어른이 돼도 이런 걸까. 어째서 한 살 더 먹을수록 여유로워지기는 커녕 더욱 조급하고 힘들어지는 걸까.
많은 질문들에 머리와 마음이 무거운 날은 시선이 발끝으로 향한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땅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추게 되는 날에는, 작은 지표 하나가 그렇게 간절하다. 하루 끝 집으로 돌아오는 길처럼, 나에게 확신을 줄 이정표가 있었으면 하는 날.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그 여정이 중요하다는 말에 기대어 살고는 있지만, 이 방향이 맞다, 너는 잘 가고 있다고 내게 힘을 줄 작은 지표들이 표시되어있는 지도가 있었으면 하는 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유보다, 늘 정해진 길을 찾으며 그에 마음이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은 역시 어설픈 어른의 마음인가 보다.
나는 약하고 이기적인 어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꽤나 창피한 일이다. 그래도, 그래서 계속 돌아보기로 했다. 외면하려고... 그런 자신을 외면하려고 어른인척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많으니 그냥 더 많이 생각하며 살고, 실수하면 계속 반성하고.
허우적허우적. 허우적대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조금 모자라도 어른이니까. 포기하지 않고.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게 너무 많지만, 일단 내 마음이라도 단단히 붙잡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