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퇴근 후 아이를 하원 시키던 중, 길에서 학습지 홍보하시는 분을 만났다. 안 그래도 딸이 요즘 들어 부쩍 글씨에 관심을 갖고 자주 물어보던 터라 잠시 들러 보기로 했다. 길가에 마련된 간이 테이블에 앉아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을 쓰고 읽는 딸의 모습을 보며 언제 이만큼 컸나 속으로 감탄하고 있는데, 직원분이 내 곁에 슬쩍 다가와 한글, 숫자, 한자, 영어를 한꺼번에 권해주었다. 내가 아이가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아이와 상의해서 결정하고 싶다고 말하자, 직원은 그런 내게 요즘 엄마 답지 않게 욕심이 없다고 한 것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요즘 엄마’에 관해 생각했다. 학습지 직원은 내가 안일하다는 뉘앙스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4살 때부터 한글, 숫자, 한자, 영어를 시작해야 한다는 말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해야 될 수 있는 '요즘 엄마' 라면, 마음껏 뛰어놀고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옛날 엄마’가 되는 편이 나았다. 직원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속으로는 반항심 같은 것이 튀어 올랐고, 오은영 박사님으로 빙의해 “그 어머님들은 그렇게 공부하실 수 있으시대요?”라고 반문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그날 나는 딸의 의견을 전적으로 반영해 두 과목만 신청했다.
일찍부터 아이에게 방대한 양의 학습을 강요하는 이면에는부모가 가진 결핍이 자리하는 것일지 모른다고 자주 생각했다. 언젠가 ‘사람은 제 숟가락을 입에 물고 태어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능력치를 갖추었다는 의미로 생각 되었다. 여기에 ‘될 놈은 어떻게 해도 된다’는 우리 엄마의 개똥철학을 곁들이면, 고작 6살짜리에게 학습을 강요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 아이내면에 지니고 있을 잠재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기대감이 싹튼다.그러고 보니나는욕심 없는 엄마가 맞다.
그런 내게도 아이를 생각하면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형제 많은 집의 장녀로 자란 나는 자주 외동인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다. 당시엔 매 끼니마다 소시지 반찬을 두고 여동생들과 다투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형제가 많다는 것이 왜 부러운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소한 일들로 만날 동생들과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누군가 곤경에 처하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것 또한 우리 자매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고 지탱하며 자랐고, 지금은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사이가 되었다.
나는 내 딸이 혼자 남겨질까 두렵다. 먼 훗날 나와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홀로 남겨질 아이가 느낄 외로움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가슴 한 켠이 시리고 아프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지금이라도 아이를 하나 더 낳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나는 자주 고민하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외롭지 않게 키울 수 있을까.
아이와 식물을 함께 키우면 생기는 일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엄마들에게 아이와 식물을 함께 키우라고 권하고 싶다. 단순히 식물이 주는 일상의 풍요로움 때문이 아니다. 식물을 돌보는 내 모습이 아이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일상의 대부분을 아이와 함께하는 나는 새로운 식물을 들일 때에도 아이와 함께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원하지 않아도 아이가 원해서 품게 된 식물도 꽤 있는 편이다. 나는 그럴 때면 "이 식물의 주인은 너야. 네가 잘 돌볼 수 있다면 데려가자."라고 말하곤 한다. 식물의 주인이 아이임을 명확히 밝히면, 생명을 품는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될 것 같았다.
그런 내 마음이 전해진 걸까. 언젠가부터 아이는 자신의 식물들을 직접 돌보기 시작했다. 내가 식물들에게 물을 주면 멀리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어느새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신의 화분들을 쪼르륵 들고 와서는 열심히 물을 부어 준다. 강한 소나기가 예고된 날 집을 나설 때 “창가 식물들은 괜찮을까?”라며 염려하는 것도 딸의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것이다. 하루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만들어 온 플라스틱 가습기를화분들 근처에 가져다 두며다정한 말을 건네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따스한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생명을 돌보는 일이란 무엇일까? 어떠면 그것은 매 순간 살아 움직이는 대상에게 끊임없이 귀를 기울여야만 가능한 고된 노동과도 같다. 타인을 배척하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 그러니 생명을 품는 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가. 나는 내 딸이 조금 일찍 한글을 쓰고 영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지금의 이 귀한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 자라길 바란다. 언젠가 이 세상에 홀로 남더라도 가슴속 온기로 하루하루 따뜻함 속에 지내기를. 그리고 그 곁에 여전히 다정한 초록 친구들이 함께 해 준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겠다.
글.그림: 김세경(꽃개미)
회사원이며 작가.
낮에는 HR 부서의교육담당자로 일하고 퇴근 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대낮에 창가의 식물이 주는 평온을 사랑합니다.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 <엄마가 되었지만, 저도 소중합니다>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