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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Sep 14. 2022

과습, 과한 사랑의 브루스

적당한 마음을 주는 법






이십 대의 대부분을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내가 다닌 대학의 공대생으로, 우리는 매일 같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알게 되었다. 거칠고 투박한 외모와는 다르게 순정파였던 그는 첫눈에 반한 어떤 여학생에게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부탁으로 종종 연애상담을 해주곤 했는데 대부분은 마음을 접으라고 설득하는 입장이었다. 여러 번 거절을 당하고도 포기하지 않는 그가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짝사랑은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계속되었다. 그는 그녀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것 같았다. 그녀가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기다렸다가, 다시 혼자가 되면 슬그머니 나타나 어깨를 내어주는 식이었다. 그런데 매번 그뿐이었지 발전은 없었다.


한번 쯤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도 있었다. 마침내 그가 그녀에게 마지막을 통보하고 저 멀리 호주로 떠났을 때였다. 두 번 다시 연락하지 않겠다던 다짐이 무색하게도 마음은 여전히 그녀를 향해 있었나보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안부를 묻고 살뜰히 챙기는 모습에 굳게 닫힌 마음이 열린 것일까. 나중에 그가 귀국을 하고 나서 둘은 연인이 되었다. 줄곧 그를 말리던 친구들은 인간승리를 외치며 그들의 사랑을 응원해 주었다.


슬프게도 오랜 기다림 끝에 맺어진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 생각에 그는 거의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 것 같았다.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길 바랬던 그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데만 여념이 없었다. 퇴근 후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에게 달려갔으며, 그것도 부족해 밤마다 전화기 너머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려 했다. 피로를 느낀 그녀가 거리를 두려 하자 불안해진 그는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을 택했다. 마침내 그녀는 도망치듯 연애의 종지부를 찍어 버렸다.  위대한 사랑이 끝나버린 이유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과한 사랑으로 식물을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 내 딴엔 좁은 화분에서 아등바등 자라는 모습이 안타까워 큰 화분을 구해 기껏 힘들게 옮겨 심어 주었는데, 풍성하게 자랄 줄 알았던 식물이 어쩐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혹여나 내 관심이 부족했던 것일까. 마음이 조급해졌다. 물 주기 텀을 늘려 매일 아침 물시중을 들었다. 출근길에 콸콸콸 물을 부어 주고는 퇴근길엔 생활용품점에 들려 식물 영양제를 사 오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식물은 도무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급기야 잎을 떨구었다. 초조해졌다.


나의 끈질긴 사랑의 결과가 너무도 처참해 자책하던 중 식물의 과습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과습은 화분에 수분이 너무 많은 상태가 지속돼 뿌리가 숨을 쉬지 못해 상하거나 썩는 현상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죽어가는 식물을 뿌리째 뽑아 보았다. 역시나! 흥건하게 젖은 흙속에 뿌리가 잠겨 썩어가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물과 영양제를 부어 주었으니 얼마나 숨이 막히고 힘들었을까. 스스로 위대하다 착각했던 그저 지나친 사랑이었다. 나의 사랑 때문에 죽어가는 식물의 모습이 오래 전 친구의 첫사랑과 무척이나 닮아보였다.


과한 사랑은 독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하지 않게 마음을 표현하는 기술 말이다. 특히 나와 다른 상대에게 마음을 전할 땐 상대방의 속도와 방법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마음을 애써 억누를 필요는 없지만, 사랑의 흐름이란 본래 물 흐르듯 자연스레 스며들어야 하는 것이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퍼부어선 안 되는 거니까.


식물을 사랑하는 방법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물을 좋아해 매일 물시중을 들어야 하는 식물이 있는 반면, 어떤 식물은 적당히 말리며 키워야 한다. 회사 후배가 키우고 있는 몬스테라는 후자에 가깝다. 이런 식물에게 물을 줄 때는 한 번에 충분한 만큼 물을 주고, 겉흙이 마를 때까지 잠시 기다리며 뿌리가 숨 쉴 시간을 주어야 한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누군가를 적당히 사랑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는 걸. 사랑하니까 자주 들여다보고 싶고, 또 무언가를 자꾸만 주고 싶어 진다. 가령 넓고 큰 화분, 빈번한 흙갈이 잦은 물시중과 풍부한 비료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그동안 나의 과한 사랑을 견디지 못해 익사해 버린 식물들을 떠올린다. 더 주고 싶은 마음 대신 덜 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가끔은 이런 내 사랑이 짝사랑 같아서 조금 억울할 때도 있다. 식물들은 약간 깍쟁이 같아서 쉽게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 것 같다. 늘 내가 더 사랑하고, 나만 애가 탄다. 아, 이렇게 쓰고 보니 짝사랑이 맞는 것 같기도. 어쨌든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거다. 과한 사랑은 결코 위대한 사랑이 될 수 없다는 것. 그러니 누군가를 사랑할 땐 내가 주고 싶은 만큼이 아닌 상대가 원하는 속도로 천천히 줄 것. 어쩌면 식물이 알려준 이러한 사랑의 방식이야 말로 짝사랑 성공의 유일한 비결은 아닐까. 지금도 혼자만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애태우면서 홀로 열심히 사랑을 하고 있는 모든 마음들을 응원하고 싶다.




글.그림: 김세경(꽃개미)

회사원이며 작가.

낮에는 HR 부서의 담당자 일을 하고 퇴근 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 낮에 창가의 식물이 주는 평온을 사랑합니다.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 <엄마가 되었지만, 저도 소중합니다>의 저자 /메일: sammykh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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