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야생동물의 습격을 걱정해본 적이 있는가? 실제로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뉴스 기사를 봤다. 서울의 한 공원에 나타난 야생 너구리 세 마리가 산책 중인 시민을 공격해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면서, 혹시라도 너구리를 만나면 피하라는 내용이었다.
그간 너구리는 동물원에서 볼 수 있거나 라면 봉지에 그려진 캐릭터 정도로 생각했던 나는,그런 귀여운 동물이 사람을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랐던 건 너구리가 도심에 출몰하는 이유다.
산속에 살던 야생 너구리들은 자연환경이 훼손되자 먹이를 구하기 위해 민가로 내려오기 시작했고, 최근엔 도심 속 생태 녹지공원이 조성되면서 너구리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는 것이다. 본래는 사람에게 접근하지 않지만 새끼를 지키기 위해 공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이런 너구리의 사정을 고려하면 사고의 책임을 온전히 너구리에게만 지우기엔 어딘가 미안한 구석이 생긴다.
인간에게 생활의 터전이면서 너구리에겐 보금자리인 자연의 일부를 그저 사이좋게 공유하며 살 수는 없을까? 어떻게 하면 서로가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며 공존할 수 있을까?
화분 속 미물들: 민달팽이, 쥐며느리, 지렁이
식물을 키우는 내게도 이와 비슷한 고민이 있다. 몇 년 전 화원에서 '트리안'이라는 식물을 들인 적이 있다. 트리안은 작고 동글동글한 잎이 무척이나 귀여운 식물이다. 번식력이 왕성한 덩굴성 관엽식물이라는 말에 천장에 매달아 풍성하게 키워볼 생각이었다. 집에 도착한 후 미리 준비한 행잉 화분에 옮겨 심으려 과감히 포트를 엎었는데,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생명체들이 흙과 함께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어떤 건 하얗고 미끌미끌한 몸을 가진 채 꿈틀거렸고(알고 보니 등껍질없이 몸통만 있는 민달팽이였다), 또 어떤 건 내가 잘 아는 쥐며느리였다. 생각지도 못한 생명체의 등장에 놀라 비명을 지르는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달려온 남편은 바닥에 널브러진 흙과 화분, 여기저기 기어 다니는 민달팽이와 쥐며느리들을 혼자처리해야만 했다.
나는 이 일로 크게 충격을 받아 하마터면 식물 키우는 일을 그만둘 뻔했다. 평소 작은 벌레만 봐도 극도로 싫어하고 겁을 내면서, 왜 단 한 번도 화분 속을 의심하지 않았던 걸까. 겉보기엔 포실포실 흙으로 단정하게 채워진 저 속이 사실은 벌레 천국이라는 상상만 해도 온몸이 근질거리고 소름이 돋았다. 찜찜했던 나는 결국 집안의 식물을 모조리 뽑아 뿌리까지 탈탈 털었고, 벌레가 없다는 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종종 흙 속 친구들과 조우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툭' 하고 묵직한 소리를 내며 내 발 위로 떨어진 지렁이. 지난 사건 이후 나름의 교훈을 얻은 나는 가급적 화분 채 구매하는 일은 피하곤 했다. 그날도 분명 화원 사장님께 흙을 모두 털어달라 부탁한 채 식물만 봉지에 담아 왔는데, 아뿔싸! 뿌리 사이에 용케 숨어 있었던 거대한 지렁이 두 마리가 한꺼번에 내 발등 위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나는 거의 졸도하다시피 했고 또 한동안 새로운 식물을 들이는 일에 겁을 먹었다.
화분 속 미물들과의 공존
이렇듯 매번 흙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이것들을 내 신성한 베란다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문득 이런 나 자신이 공원의 너구리에게 모든 책임을 묻고 쫓아내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먹을 것을 찾아 도심으로 향하는 너구리들. 식물의 뿌리를 갉아먹으며 평화롭게 살다가 얼떨결에 딸려들어와 버린 미물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어찌 보면 비슷하게 느껴진다. 도심의 인간과 너구리가 공존하기 바란다면, 나 또한 화분 속 미물들을 향한 혐오의 시선을 거두고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닐까.
식물의 뿌리가 화분 아래 물구멍을 비집고 나온다면 더 큰 화분과 새 흙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이런 신호를 보면 속으로 반갑고 기특하면서도, 혹시나 분갈이 도중 또 무언가를 만나진 않을까 염려가 된다. 이러한 마음 때문에 나의분갈이 준비는 꽤나 요란하다. 바닥엔 커다란 신문지를 깔고 주섬주섬 양말을 신는다. 혹시 모를 만남에 대비해 양손에 비닐장갑을 겹겹이 낀 채 가까운 곳에 살충제를 두어야 마음이 놓인다.
만발의 준비를 마쳤지만 한편으론 무언가 헛헛한 마음이 든다. 지렁이, 민달팽이, 쥐며느리. 도저히 사랑하기 힘든 이들을 반가이 맞이할 순 없더라도 조금은 덤덤하게 대할 수 있다면 좋겠다. 괴성을 지르며 살충제를 분사하고 그 충격에 또 며칠 몸져눕는 대신, 그냥 조용히 쓸어 담아 밖으로 내보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식물을 사이에 둔 쫄보 인간과 미물의 공존에는 딱 그 정도의 용기면 족하다.
글.그림: 김세경(꽃개미)
회사원이며 작가.
낮에는 HR 부서의교육담당자로 일하고 퇴근 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대낮에 창가의 식물이 주는 평온을 사랑합니다.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 <엄마가 되었지만, 저도 소중합니다>의 저자/인스타: @sammyk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