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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Jul 10. 2022

잘 안다는 착각, 별빛 벤자민

식물을 죽이는 위험한 생각

식물의 동해(凍害)


"특별히 기억에 남는 식물이 있나요?"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곧바로 '별빛 벤자민'을 떠올릴 것이다. 오랫동안 마음을 나눠 온 소중한 반려 식물이기 때문에... 가 아니라, 나의 부주의로 얼어 죽은 최초의 식물이기 때문이다.


별빛 벤자민은 스타라이트 벤자민, 무늬 벤자민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린다. 단단히 목질화 된 줄기 위로 한가득 내려앉은 밤하늘 별 같은 잎사귀를 본다면, 그 누구라도 품지 않고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매력적인 모습만큼 예민하기로도 유명한데 식물 카페에서도 여러 번 경고를 받은 터였다. 그런데 실제로 키워보니 적당히 물을 주고 가끔씩 환기를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무탈했기 때문에, 속으로 내심 으쓱했었다. 내가 꽤나 잘 키우나 보다고, 드디어 나와 잘 맞는 식물을 찾았다며 마음을 놓고 있던 중 맞이한 죽음. 식물의 '동해(凍害)'다.


얼어 죽은 식물의 모습은 비참하고 슬프다. 동해는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식물이 얼어 죽는 것을 뜻하는데, 미처 추위에 대비하지 못한 식물의 줄기와 잎사귀가 얼어붙는 동안 내부 세포 조직이 파괴돼 더는 소생할 수 없게 된다. 동해를 입은 식물은 특유의 초빛 싱그러움을 잃고 흐물흐물 무너져 내리는데, 뒤늦게 상황을 파악해 실내로 들이면 더욱 처참한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얼었다 녹는 과정에서 수분이 배출되는데, 그 모습은 마치 죽어가며 오열하는 것처럼 보인다. 식물도 울고 나도 운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마주한 처참한 모습은 즐거웠던 기억으로도 상쇄되지 않았다. 처음엔 창문 닫는 것을 깜빡한 스스로를 탓하다가, 갑자기 장기간 외출을 하며 문단속을 단단히 하지 않은 남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급기야는 이 겨울에 괜한 여행을 가서 이 사단이 났다며 미친 사람처럼 굴었고,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죽은 식물들을 뿌리 채 뽑아 흙까지 탈탈 털어 버리며 깨달았다. 식물들이 얼어 죽은 진짜 이유는 열린 창문이나 여행 때문이 아니라는 걸. 나의 자만심과 무관심이 그들을 죽게 했다는 것을.



식물을 죽이는 위험한 생각 


어쩌면 식물을 키울 때 가장 위험한 생각이란 잘 키우고 있다는 확신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내가 이 식물에 관해 충분히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위험한 것 같다. 그렇게 굳게 믿고 마음을 놓으면 평소처럼 주의를 기울이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되고, 그들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일을 자꾸만 놓치게 된다. 적당한 때 물을 주거나 뿌리가 썩지 않도록 창문을 열어 주는 일,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화분의 위치를 적절히 옮기는 일들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주의를 기울여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까.


흔히 인간관계에서 잘 알지 못하는 상대에게 갖추는 예의와 배려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자주 생략되곤 하는데, 그러다 한 번의 치명적인 실수로 완전히 틀어지는 관계를 많이 보았다. 식물과의 관계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내가 스스로 훌륭한 식물 집사가 되었다며 속으로 근거 없는 믿음이 충만할 때, 반대로 내 관심에서 멀어진 식물들은 보란 듯이 죽곤 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끝까지 ‘식물 잘 못 키우는 식물 집사’를 고수할 생각이다. 물론 그 말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혹시나 나중에 정말로 내가 식물계의 금손이 된다고 해도 소홀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잘 안다고 착각해 마음을 놓으면 멀어지는 사이.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만 유지되는 관계. 식물과 나는 그런 사이다.




글.그림: 김세경(꽃개미)

회사원이며 작가.

낮에는 HR 부서의 담당자 일하고 퇴근 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 식물 돌보는 일을 좋아하며, 낮에 창가의 식물이 주는 평온을 사랑합니다.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 <엄마가 되었지만, 저도 소중합니다>의 저자

/인스타: @sammyk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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