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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Mar 04. 2023

_____내가 건강하다는 뜻입니다

식물과 반려하며 닮아가는 일에 관하여



IT 부서 후배의 안스리움


IT 부서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책상 위 다 죽어가는 식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식물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화분을 보니 한 번도 분갈이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굳어버린 단단한 흙 위로, 실처럼 가느다란 줄기들이 빛을 찾아 한쪽으로 길게 치우쳐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신경 쓰여 대화에 집중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힐끔거리며 화분 살펴보았다. 흙에 반쯤 파묻힌 플라스틱 팻말‘안스리움’이라 적혀 있었다. 어쩜 이름처럼 안쓰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그 식물의 사연이 문득 궁금해졌다.

 

“근데 말이야, 얘는 왜 이렇게 된 거야?”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슬쩍 물었다.

“그러게요, 원래는 되게 예쁜 아이였는데 불쌍하게 되었어요.”

후배는 체념한 듯 말을 이어갔다.

“실은, 제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사수가 선물해 준 화분이에요. 그땐 분명 파릇파릇 건강했는데… 말라비틀어진 모습이 딱 지금의 제 모습 같아요.”


죽어가는 식물이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믿는 사람. 그리고 그 곁에서 진짜로 죽어가는 식물. 그날 내가 본 그 둘의 모습은 정말 닮아 보였고, 그래서 조금 슬펐다.



마음의 병으로 잃은 것 


몇 년 전 공황장애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정신과 치료를 종료한 지 벌써 3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을 생각하면 조금 불안해진다. 흔히 공황장애는 나약한 사람들이나 걸린다는 편견이 있는데, 실제로는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는 ‘마음의 병’이었다. 나의 경우 회사원으로, 엄마로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해 내지 못해 자책하던 중, 상사의 모진 말이 방아쇠가 되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의 병을 모른다. 겉으로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아 고통의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깜깜한 어둠 속을 헤매는 듯한 막막함, 수시로 다가오는 불안의 그림자는 누구라도 이 공황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다. 나는 애써 용기를 내어 전처럼 편안한 일상을 위해 애쓰다가도, 공황증상이 찾아오면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가길 반복해야 했다. 영원히 지독한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


그렇게 마음의 병과 싸우던 중 하루는 황급히 베란다로 뛰쳐나갔다. 불현듯 마지막으로 식물들에게 물을 준지 한참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베란다는 주로 내가 식물을 키우는 공간으로만 사용하던 중이었다. 가족 중 누구도 볼일이 없으니 창문도 한참 동안 닫혀 있었을 것이다. 수분도 공기의 흐름도 모두 멈추어 버린 그곳에서, 식물들이 버텨 주었기를 간절히 바라며 문을 열었다.


눈앞의 광경은 예상보다 훨씬 처참했다. 오랜 시간 정성 들여 가꿔온 베란다 정원은 황무지로 변해 있었다. 갑작스레 열어젖힌 베란다 문의 반동으로, 이미 오래전 수분을 잃은 황갈색 잎사귀들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마구 굴러다녔다. 선인장 종류를 제외하고 살아남은 관엽 식물은 하나도 없었다. 바닥의 떨어진 잎사귀들을 주워 담으며 생각했다.  

내가 마음의 병과 싸우는 동안 너희도 살아남기 위해 싸워왔구나. 내가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동안 너희도 많이 힘들었겠다.
 


반려하며 닮는다는 것에 관하여


'반려'의 사전적 정의는 '짝이 되는 동무'다. 반려견, 반려묘처럼 요즘은 우리의 삶에 가까이 들어와 가족처럼 여겨지는 소중한 존재에게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러니 누군가와 반려한다는 것은, 내 공간을 기꺼이 허락일상의 모든 것을 유한다는 의미일 테다.

나는 간과 식물도 반려하며 정답게 살아간다고 믿는다. 본능적으로 끌리는 종을 선택해 자연스레 스며드는 관계. 깊은 애정을 갖고 염려하며 돌보는 마음. 나와 식물들은 그런 마음으로 살아고 있다.


식물 오랫동안 반려하기 위해 나 자신을 잘 돌봐야 할 책임도 느낀다. 내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지쳐 고단한 상태에서는 식물을 잘 돌볼 수 없다. 평소 잎의 상태를 잘 관찰해 제 때 물을 주고, 수시로 창문을 열어 과습을 예방한다. 또 가끔은 화분을 들어 바닥의 구멍을 살피기도 하는데 뿌리가 물구멍 밖으로 튀어나오기 전에 미리 화분을 바꾸어 주기 위해서다. 식물을 돌보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내가 먼저 좋은 컨디션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들이다. 건강한 사람만이 다른 생명을 건강하게 가꿀 수 있다는 어찌 보면 이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주 잊고야 만다.


최근 물 주기를 놓쳐 납작해진 마블 선인장 때문에 조금 속상했다. 온몸으로 목마름을 표현하는 모습이 꼭 무언가를 놓친 요즘의 내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플라스틱 대야 ⅓ 지점까지 물을 받아 화분을 통째로 담갔다.  수위가 빠르게 낮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요즘 내가 한 가지 일에만 너무 몰두하지는 않았는지,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신경이 예민한 상태는 아닌지, 마지막으로 푹 쉬어본 것은 언제인지, 하나씩 곱씹어 보았다. 리가 닮았다는 사실을 안 후부터, 나는 이렇게 가끔씩 식물을 통해 내 상태를 점검해 나간다.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는 모든 존재는 닮는다. 그렇게 서로를 비추 소란한 세상을 정답게 살아가는 거다. 만일 지금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면, 곁에 작은 반려식물을 두어보심이 어떠신지. 신이 정말 중요한 것을 다 잃어버리기 전에 식물이 줄 것이다. 내 집의 식물이 생기를 잃었다는 건 나 또한 지쳐 있다는 신호이고, 반대로 식물이 건강하다는 건 나 건강하다는 뜻이. 





글 그림: 김세경(꽃개미)

회사원이자 작가.

그림에세이『엄마가 되었지만, 저도 소중합니다』,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의 저자.

메일: sammykh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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