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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개미 Feb 07. 2024

돈 좀 있다던 그 선배는 퇴사하고 요트를 샀을까?

직장인의 흔한 거짓말

틈날 때마다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던 선배가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내가 결혼준비를 하던 시기였다. 하루는 그 선배가 신혼집은 어디에 구했냐 묻기에 경기도에 있는 작은 아파트를 매매했다고 했니, 그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런 집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

자신은 서울에 있는 50평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 정도는 살아야 마땅하지 않겠냐는 거다. 그날 내가 받아야 했던 안쓰러운 눈빛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후로도 선배는 꽤 자주 자신이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충 이런 것들이다. 자신의 부모님은 모 대기업 회장의 이웃사촌으로 부촌에 위치한 대저택에 거주하고 계시며, 마당이 넓어 개가 뛰어논다는 것. 집에는 전용 서재가 있고 책 배열은 어떻게 관리 중요즘은 요트를 구매하려고 고민 중이라는 .  외에도 드라마에 나올법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끝맺음은 늘 같았다. "너희는 이런 것도 없?"

사실 그가 하는 말들이 상당히 구체적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회사 직원들도 그가 엄청난 자산가라 믿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딱히 의심하지는 않았 것 같다.


물론 조금 이상하다고 여긴 순간이 있기는 했다. 선배가 자신이 톱스타 '누구누구'와 가족끼리도 만나 식사를 할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하기에, 순수한 팬심으로 싸인 한 장만 받아달라 조른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만난 사이인지, 대스타와 친구가 되어 특별한 경험은 없는지 물어봤었다. 그러자 그는 순식간에 귀까지 새빨개지더니 얼버무리며 자리를 떠나버렸다. 마치 대단한 거짓말을 들켜 버린 사람처럼 말이다. 그 후 선배는 두 번 다시 톱스타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만일 그 선배가 정말 치밀한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끝까지 속았을 것이다. 거짓말에는 어떻게든 빈틈이 있기 마련이라, 주변 사람들은 그가 하는 자랑들이 매번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같은 이야기도 A에게 한 것과 B에게 한 것이 다르니 '뻥카'가 섞여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일부는 꽤 많이 과장된 것으로 확인된 것도 있어서 나중에는 그가 허세를 부려도 대충 맞장구만 쳐주며 넘기곤 했다.

그런 그를 볼때마다 들었던 궁금증이 있었다. 대체 왜 회사에서 이런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그것이 어떤 이득을 가져다주는지.


작년 말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기 사건을 기억한다. 국가대표 펜싱선수와 결혼을 발표했던 자칭 재벌 3세 사건이다. 최근 그 사건 대한 뉴스를 보던 중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는데, 그가 기를 치기 위해 "유명 가수와 동거까지 한 사이고, 그녀의 아파트로 이사 가기 위해 매입을 알아본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는 었다. 선배가 주장한 '톱스타와 가족식사까지 하는 막연한 사이, 요트 매입을 고민하는 ' 놀랍게도 비슷하지 않은가?


사기꾼과 선배에게서 발견한 공통점은, 그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도 팍팍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회사를 떠난 선배의 이야기 중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진실은 얼마큼 담겨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사람들 앞에서 과시그 마음만큼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대저택을 소유한 부모님과 물려받을 건물이 있는 아내, 그래서 회사를 취미 삼아 다니는 여유 있는  대한민국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모습이니까. 회사 직원들과는 서로의 사생활을 확인할 길이 없으니 라한 자신을 과대포장하기에 더 없는 장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쩌면 이러한 과대포장은 매 순간 쓰러져가는 마음에 불어넣는 일종의 '주문'같은 것인지 모른다. 선배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 가진 건 돈밖에 없잖아!" "너희 집엔 이런 거 없니?" 같은 말은 얼핏 들으면 상대를 깎아내리며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것처럼 들리지만, 렇게라도 스스로를 우월하게 만들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만큼 희망이 없다고 느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봤다. 가 알기로 선배는 직장생활이 몹시 고달팠던 사람이었다.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대? 집에 돈이 좀 있다며? 자기는 그만둬도 아쉬울 거 없다던데 부럽네."

최근 옆 부서 팀장님이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물었다. 여전히 회사의 일부 직원들은 그를 자산가라 굳게 믿고 부러워 하지만, 진실을 아는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씁쓸해진다. 리고 회사에서 쓸데없이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어쩐지 불쌍한 마음이 먼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글, 그림: 김세경

낮에는 인사부서의 교육담당자로 일하고 퇴근 후 그림일기로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 공황장애 에세이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 <엄마가 되었지만, 저도 소중합니다>의 저자

인스타: @sammyk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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