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책을 출간하고 한 유튜브 인터뷰에 참여했을 때였다. 촬영을 마치고 주섬주섬 정리를 하던 도중 이런 말을 들었다. 분명 칭찬의 말인데도 순간적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당황한 나는 대충 웃으며얼버무리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집에 오는 길엔 이 일에 대해 생각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내가 일도 육아도모두 완벽하게 잘 해내는사람으로 비춰질수있겠구나 싶었다. 그런 말을 듣고당황한 건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다.일도 육아도 다 잘한다고? 내가? 말도 안 돼!
고백하면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내내 나는 불안했다. 아이가 어릴 땐 매일출근을 위해 집을 나설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고 낮동안 다치기라도 하면 전부 내 탓 같았다.돌봄시터를 고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남을 쉽게 믿지 못하고 내 손으로 직접 해야만 하는 고약한 성격 탓이다. 운 좋게 회사 옆건물에 있는 직장어린이집과 병설유치원을 보내며 등하원을 직접 해내면서도마음을 놓은 적이 없다.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바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남의 애는 빨리 큰다더니 아무래도 그 말이 내게는 거꾸로 작용하는 것 같다. 아이는 쑥쑥자라올해 3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예비소집일에 다녀온 후론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입학 후 한동안은점심 전에 끝난다는 것, 이후에도저녁까지 아이를 봐주진 않는다는 안내를 받았다.방과 후 교실은선착순이기에 빨리 마감되고, 돌봄 교실에맞벌이 부부는 후순위였다.이 모든 내용을 종합해 보면 '초등학생의 곁에는 보호자가 상주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야 만다.일과 아이 중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일을 포기하고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그렇다면 아이의 안전은 누가 책임지는가.이런 고민을 하는 건 이기적인 일일까?혼란스러운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문득 사직서를 제출하다 눈물을 쏟아버린 회사 직원이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직무를 전환해 퇴직을 담당하던 때였는데, 퇴직을 앞둔 직원이 서류와 물품을 반납하다 말고 갑자기 엉엉 울어버린 것이다. 휴지를 가져다주고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한참 후 조심스레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가 분리불안이 있다고, 그 증세가 심해져 바지에 대소변을 억지로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는 자책, 그럼에도 정말로 퇴사하고 싶지 않았다며 그녀는 더 슬프게 울어 버렸다.
'아이와 일' 중에서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고르라면망설임 없이 '아이'를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도 선택의 기로에 선 여성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일이 단순히 월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열정을 품고 걸어온 내 젊은 날의 기록,긴 시간 품어온 노력에 대한 결과라는 점에서 일이 의미하는 것은 다름 아닌'나 자신'임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 어쩌면 두 번 다시 일터로 복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더해진다. 결국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에게 놓인 선택지란 '아이와 일'이 아닌 '아이와 나 자신'이 된다.결코쉬운 선택일리 없다.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일터를 떠나야 하는 직원들의 뒷모습을 보는 일. 인사담당자지만 그들과 같은 처지이기도 한 나는, 매번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힘들다.언젠가 나또한 울면서 일터를 떠나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속이 상하다가도, 아직은 내가 일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내 앞에 얼마나 많은 고비들이기다리고 있을까. 그 끝에 후회가 아닌 보람으로 지금의 결정에 안도할 수 있다면 좋겠다. 과연 어떤 선택이 훌륭한 선택일지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단 지금은 초등입학의 고비를 넘겨 참 다행이다.
글, 그림: 김세경
낮에는 인사부서의 교육담당자로 일하고 퇴근 후 그림일기로 일상을 기록하는 사람. 공황장애 에세이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 <엄마가 되었지만, 저도 소중합니다>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