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밀도 Dec 31. 2023

'퇴사'가 나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열정과 권태의 순환

몇 년 전 “파이어족”용어가 등장했고 많은 젊은이들 열광했다. 경제적 독립(Financial Independence)과 조기 은퇴(Retire Early)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으로 조기 은퇴를 준비하는 밀레니얼을 일컫는다.(출처:나무위키) 파이어족들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직장생활 없이도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도 하고 적은 돈으로도 살아갈 수 있도록 소박한 생활양식을 실천하기도 했다. 필자의 회사에서는 비트코인으로 큰돈을 벌어서 수십억의 돈을 벌고 곧 퇴사를 앞두고 있다는 한 직원의 이름이 전설처럼 거론되었다. 선망이 된 소수의 사례들은 흥미로운 가십이 되기도 했지만, 평범한 직장인에게 허탈감을 안겨 주기도 했다.


연차가 많이 쌓일수록 직장인은 퇴사, 은퇴라는 단어와 친근해진다. 일을 시작할 때 가지고 있었던 열정에는 한도가 있었고, 실제로 마주한 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한 잔에 5,6천 원 하는 커피는 부담스럽지 않게 사서 마시게 되었지만, 매일 향하는 발걸음이 조금씩 무거워질 때쯤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은행이나 대기업들의 희망퇴직 뉴스가 나오면, 자신이 희망퇴직금을 받은 것도 아닌데 ‘그 돈이면 대출을 갚고 퇴사가 가능하겠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퇴사는 나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더럽고 치사한 꼴’쯤은 눈 감아주고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란 말이다.


먼저, 책임져야 할 범위가 넓어졌을 때 그렇다.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기고 가족의 범위가 넓어진다. 그럼 책임의 영역도 자연스레 넓어진다. 아한 삶의 보금자리는 대출을 불가피하게 한다. 이런 삶의 트랙에 올라타는 순간, 퇴사는 선택권은 회사로 넘어간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이 트랙을 타고 열심히 달리고 있다.


그리고, 나의 에너지가 전과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다. 마음만 먹으면 이직쯤이야 쉬울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충분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연봉을 더 올려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새로 어학 점수를 따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새롭게 작성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게 된다. 스스로 “사람 사는 데 다 비슷하지”라고 되뇌며 자리를 지킨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올라갈 때가 없다고 느낄 때이다. 요즘 많은 회사들이 직급을 없애 있지만, 동시에 승진의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어서 젊은 부장님들이 많다. 40대 부장님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소수의 임원이 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만년부장”으로 꽤 오랜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야 한다. 한 연구 예측에 따르면 지금의 40대의 연금수령 시기를 80세로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퇴사와는 최대한 멀어져야 하는 형편이 된다.


이렇듯 퇴사는 나의 선택이 아니라 회사의 선택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다가온다. 한 해 전까지만 해도 호기롭게 45세에 은퇴를 하겠다고 외쳤던 15년 차 장기근속자 고밀도도 1년 만에 태세전환을 했다. 아직 나의 능력을 활용하여 돈을 벌 수 있고, 나의 신용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시기가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때론 ‘더럽고 치사한 꼴’도 봐야 하고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해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조금은 직장인의 삶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마침 김창옥 교수님의 강의가 떠오른다. “여러분, 열정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또한, 권태로움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은 열정과 권태의 반복일 테니, 이 순간을 지나가게 두면 어떨지 싶다. (어쩌면 퇴사는 직장인의 판타지일 것이다.)

이전 05화 직장에서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