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인을 다시 태어나게 해 준 유기견과 유기묘라니.
관성대로 이끄는 삶에 길들여진 나는 대게의 하루하루를 소모해왔다. 적당한 생애주기에 적절히 맞춰 살아가는, 어쩌면 현대문명 속 가장 흔한 유형의 ‘유기인(?)’.
스스로를 대충 버려둔 채 살아가던 나에게 ‘왜 태어났고, 무엇으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흐르는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은 사치이거나, 없었다.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 거지.'라고 넘기기에는 삶은 너무나 가혹한 주사위 놀이 아닌가. 그냥 던져진 것. 혹은 가족이나 학교의 울타리에서 전혀 사유하지 못한 채 그냥 굴러가는 대로 내동댕이 쳐진 삶. ‘유기인’이란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유기된 강아지와 고양이를 통해 이런저런 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다 보니 부득이 이런 표현을 써본다. 그냥 그저 그렇게 살아가기가 그냥 싫어진 지점에 내 삶에 제멋대로 등장한 푸코와 두부는 기폭제가 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가진다는 것. 기록할만한 서사가 생기는 순간들이 쌓이고, 그 찰나와 찰나의 경계에서 때때로 멈추어 대상과 공간 그리고 나 자신을 관찰한다는 것. 이는 푸코와 두부가 내게 준 큰 행복이자 나와 내 삶 그 자체로 아로새겨졌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사유’라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그것에 가까운 어딘가에 내가 놓인 것은 분명하다. 인간과 다른 속도로 사는 녀석들은 어제, 오늘, 내일의 변화가 매우 이채롭고 이는 인간의 입장에선 때로 시간의 역전현상 같은 것이 생긴다. 푸코에게 먼 과거가 되어있으나 내게는 얼마 지나지 않은 방금 전이되는 우주적 체험. 그 속에서 매 순간 다르게 읽히는 녀석들의 표정은 별만큼이나 다양한 신호처럼 여겨지고, 그것을 바라보며 반응하고 해석하는 나 역시도 매일 조금씩 다르다.
이러한 다름과 다양함이 하루 안에서 켜켜이 쌓여가며 그 두께만큼이나 우리 모두는 가까워지고 따뜻해진다. 마치 영화 <타인의 삶>에서 ‘비즐러’가 되었다가 <인터스텔라>의 웜홀로 들어선 느낌.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이 이리도 드라마틱하게 변할 수 있다는 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생명들을 구할 수 있었을 꺼란 생각에 종종 길을 걷다 멈춘다.
그래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문득 녀석들 덕에 그 따뜻한 온기에 함께 덥혀지고 있으니 내 가족과 친구를 비롯해 주변의 차갑고 아픈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지금도 존재했으나 그저 지나쳐버린 이들. 서로 돕는다는 말이 진작에 사라진 것만 같은 서슬 시퍼런 메가폴리스 안에서 울고 있는 이를 위로하고 눈물의 근원을 되짚어가는 일은 시간낭비였다. 타인에 대한 연결고리와 더듬이를 끊어내는 것이 보다 효율적으로 항상성을 잘 ‘유지’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비법이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개와 고양이는 한번 더 두드려보고 조금 더 관찰하고 타자를 향해 눈물 흘려보라고 다독였다. 그 눈물 속에서 마음 한구석만 내어주면 내일을 살아낼 것만 같은 친구들을 하나 건너 하나인 듯 읽어내고, 외면하지 않으면 조금 더 살 수 있는 길 위의 생명들의 외침은 더욱 조용하고 크게 울려 퍼진다.
이런 사유의 흔적들을 남겨보며 언젠가 나보다 먼저 떠날 이 녀석들 옆에서 우리가 함께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작은 용기에서 얼떨결에 출발해 빚어진 이 특별한 ‘존재함’. 녀석들을 관찰하며 기록하는 것은 그저 흘러가는 장면을 목도하는 행위가 아니라, 풀어진 장면들을 포착하고 파편같이 흩어진 사진과 이야기를 하나로 꿰어보는 일이었다. 단순히 이미지와 문자를 기록하는 행위를 넘어 다른 생명과 이웃에 대한 관심과 성찰이라는 긴 호흡으로 이어졌다.
사유의 흔적들이 기록될 때마다 늘어난 글감과 이미지들을 정리하는 건 일상에서 느끼는 또 하나의 향유였다. 녀석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보다 두부의 동작은 느려지고, 푸코의 누런 털은 점차 희어졌다. 문득 시간순으로 이야기들을 엮어보다 더 이상 우리의 동거 일지를 쓰지 못할 때가 올까 봐 아득하지만, 엮어진 순간들이 모여 그 끝에 또 다른 생명 하나가 내일을 찾는다면 좋겠다는 위로를 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가냘프지만 힘 있는 시각적 증명의 시도이자 공감각적 존재론이다.
어릴 적 별자리 도안을 벽에다 그려두고 매일 밤 이리저리 그어보고 엮어보던 그런 기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