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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May 13. 2022

인생여행 동행 구합니다.

Life is Journey

 세상이 질병으로 멈췄다. 멈춘 것들 중 아쉬운 하나는 자유로운 여행이었다. 푸코와 두부가 열어준 통로를 통해 아빠에게 중국 남부 여행을 가자며 여권을 갱신하고, 모터사이클 여행을 꿈꾸며 쿠바행 티켓을 끊었다. 물론 코로나 전에. 종잡을 수 없이 전염병은 퍼졌고 결국 한시적일 것 같았던 보류는 기약 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질병으로 뒤덮인 한 해 두 해가 지나가는 동안 어느덧 10살의 나이를 훌쩍 넘긴 푸코의 눈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최근엔 오른쪽 눈도 녹내장이 시작되어 녀석은 부딪히고 더듬거리며 걷는 일이 많아졌다. 자주 가던 산책 길과 훌쩍 뛰어넘던 하수구멍도 푸코에겐 익숙했던 모든 게 어색한 것 투성이가 되었다.


 길고도 긴 질병과의 싸움의 끝자락, 코로나가 한결 잦아들고 날씨가 좋아지니 푸코의 온라인 친구들의 sns엔 반려인과 함께 간 여행사진들이 올라왔다. 신난 멍멍이들의 표정을 보며 지도 어플을 켜고 가고 싶은 곳을 별표 쳐 보았다. 그중에서도 녀석과 제주도를 가보고 싶었으나, 안압 때문에 비행기를 탈 수 없기에 홀로 바닷가를 거니는 우리 강아지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다행히 왼쪽 눈의 녹내장이 진행될 때보다 기술이 발달해 다양한 종류의 안약이 나왔지만, 모든 약들은 내성이 생기고 언젠가 어쩌면 녀석은 오른쪽 눈으로도 세상을 보기 어려워질지 모른다. (아니길 바라며) 녀석의 시선이 희미해짐과 동시에 자동차 뒷자리에 녀석을 싣고 여행 가는 상상을 부쩍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되었다.


‘푸코는 무엇을 보고 싶어 할까?’

녀석의 유한함을 부정하고 최대한 미루고 싶어 푸코와의 여행을 계속해서 계획했다. 특히 어둠이 내려앉은 밤, 한 발짝 앞으로 나가기도 두려워하는 녀석을 보고 그가 아프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여행에 대한 집착이 커졌다. 최대한 특별한 ‘사건(이벤트)’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현실적인 여건들에 밀려 여행이 멀어질 때다 섭섭함과 아쉬움을 잔뜩 묻혀 제야에게 짜증을 부렸다. 그에게 돌아온 답장.

‘푸코와 병원 오가는 길도 나에게는 여행 같아.’

푸코에게는 우리가 매일 걷는 산책길이, 병원으로 향하는 왕복 두 시간의 차 안이, 어제 영역 표시한 전봇대를 확인하는 길이 매일 여행일 것이라는 그의 답장이었다.

이처럼 푸코의 질병들을 겪고 확인할 때마다 속상해하며 조급해하는 나와 달리 제야는 푸코의 삶은 보너스라며 흔들거리는 우리를(아마 나만) 다잡아 주곤 했다. 홀로 병원 다녀오는 길, 그에게 전화를 해본다.



동물병원 다녀오는 차 안 제야와의 통화

윤 : 병원 다녀올 때마다 녀석의 아픔을 확인받는 것 같아서 괴로워. 그럴 때마다 당신은 ‘보너스 같은 삶’이란 얘기를 하곤 하는데, 녀석에게 보너스 같은 삶이 뭘까? 

제 : 몇 번이고 죽다 살아나 본 어떤 생명체가 하루를 음미하는 깊이를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다음날 멀쩡이 눈을 떴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알게 해 주는 거지. 녀석은 그렇게 온몸으로 감사해하고, 그런 푸코를 보며 삶의 유한함 속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것 같아. 걷는 것과 뛰는 것. 냄새를 맡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바람의 향기를 나누는 일상이 얼마나 귀하고 특별한지. 인간세상의 경쟁과 일상에 파묻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그 많은 장면들이 누군가에겐 하루라도 있었으면 하는 간절함의 기표라는 걸.


윤 : 그럼에도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푸코를 보면 속상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해. 그래서 자꾸 어떤 특별한 사건들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 푸코도 많이 힘들겠지?

제 : '잃는 만큼 얻는다’ 라는 꼰대 같은 말을 하고 싶진 않아서 다른 말을 떠올려봐도 대안이 없어. 장기에 대한 애착은 인간이 제일 크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선하지. 시력을 잃는다는 건, 시각예술종사자로서 나에게는 죽음과 이음동의어 같은 느낌인데 동물은 단순하다는 거야. ‘그냥 없어졌구나.’ 정도로 인지하고, 다른 감각을 통해 부지런히 메꾸게 될 테니 걱정 말라는 말.
우리의 염려가 인간의 오판 일지 모른다는 속 좁은 생각을 하며, 푸코는 이제 나를 보지 못하겠구나 하며, 노여움에 사무치려는데. 시각을 점점 잃어가는 푸코는 놀랍게도 후각과 청각을 발달시키고 있더란 거지. 간식을 건네보면서 체크하곤 하는데, 눈이 멀어도 내 품을 찾아와 안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슬퍼말자고 생각이 정리됨.


윤 : 하긴 자연에서 암세포가 퍼진 동물들은 인간의 생각과 달리 차라리 그 기관을 절단해서 고통을 덜어내는 게 낫다는 기사를 본 것 같아. 푸코가 이런저런 질병들을 겪어내고 이겨냈기에 당신은 이렇게 초연해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제 : 무엇을 잃는다는 게 곧, 잃었던 무언가를 다시 찾는다는 걸로 인식의 전환이 가능하게 되었고, 거의 모든 것을 잃어 죽음에 직면하더라도 결국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것들을 얻게 될 거라는 생각에 설레이기도 해. 이런 생각의 꼬리를 이어 보면 '사유'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그 영역은 어떤 자연 그 자체의 모습 같아. 물, 불, 흙, 바람 그리고 따뜻해지는 마음 뿐.


전화를 마치고, 결국 ‘여행’을 위한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발걸음은 이미 끝없는 객지로의 여행길 위에 있다는 걸 다시금 생각한다. 유한함을 알았으니 그 마음의 방향이 조급함이 아니라 충만함으로 향하길 바라며, 같다고 여기는 풍경들을 녀석들과 여행처럼 누리라는 이야기. 인생은 아름다운 소풍길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보너스 같은 시간을 애정 하는 이와 여행 같은 일상을 함께 하길.



Life is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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