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의 남자는 기오르기라고 했다.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통행량이 적은 지하보도였다. 이유는 무엇인고 하니, 상점이 없어서였다. 낮에는 운영하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열 시가 조금 넘었다. 내가 주로 연주하던 지하보도는 이곳과 비교하면 조금 깔끔한 편이었다. 천장은 떨어져나간 철판이 덜렁덜렁 흔들리고 있었고, 그 사이로 전기줄이 희미하게 흘러나온 게 보였다. 기오르기는 보도의 끝까지 걸어갔다. 보도의 끝은 두 갈래의 길로 갈라져 있었으며, 그 앞에는 누군가가 그린 그래피티가 있었다. 기오르기는 그림 앞에 털썩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이렇다 말도 없이 연주부터 하는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들었다. 그리고 그가 나를 끌고 온 이유를 어렴풋이 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선곡 스타일이 나와 비슷하다. 한 마디로 선비 버스커다. 아니, 나보다 더하다. 남이 어떤 곡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고려 자체가 없다. 그는 자신의 곡 스타일을 알려주려는 생각인지 모든 곡들을 앞부분만 짧게 연주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갔는데, 그 중 한 곡도 아는 게 없었다. 내가 주변 버스커들을 탐색한 바로는, 물론 자세히 분석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마이너한 선곡을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예를 들자면, Nirvana의 곡 중에서 하필이면 My girl을 연주하는 식이었다.
실력은 나쁘지 않다. 속주 스타일도 아니고, 화려한 기교가 앞서는 건 아니지만 ‘버스킹용’으로는 적합하다. 결정적으로 목소리가 곱다. 그리고 한 곡인가는 내가 아는 곡이었는데 악보를 보고 딴 게 아니라 청음으로 딴 것이 분명했다. 귀가 좋은가 보군. 나는 그의 옆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피아노를 꺼냈다. 그가 코드를 칠 때 꾸밈음을 좀 넣어 준다던가 화음을 따라 치는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기오르기는 신이 난 듯 이쪽을 보면서 눈웃음을 지었다.
조금 놀다가 그의 지인인 산초를 만나 레스토랑에 갔다. 나는 당시 그가 지하 보도에서 연습을 계속할 생각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한국에서 팀을 짜서 연습한다고 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연습실을 찾는다. 설비도 잘 되어 있고 추위도 막아줄 수 있는 그런 곳에서 하는 게 연습이지, 그곳에서 하는 건 그냥 스타일을 맞춰 보는 것 정도다. 게다가 나는 그의 리스트를 점검한 다음 나와는 노선이 맞지 않겠다고 결론 내렸다. 그의 스타일이겠지만, 그리고 나도 조금은 그런 편이긴 하지만, 너무 음울한 곡을 좋아한다. 나도 음울한 곡을 좋아하긴 하지만 버스킹에서는 특정한 컨셉이 아닌 이상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난 그러한 선곡에는 좀 회의적이 되어가고 있는 편이었다. 음울한 곡을 시작하면 잘 듣고 있던 사람들이 나에게 목인사를 건네거나 혹은 바쁜 척 하면서 떠나가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그와의 연습을 보류, 생각해보기로 나 혼자 결론 내린 다음, 배고프다고 그를 괴롭히고 닦달해서 레스토랑에 끌고 간 것이다.
자리에 앉은 다음, 나는 호기심을 충족하고 싶다는 나의 욕망에 따라 그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기오르기는 난감해하는 표정이었지만 대답만큼은 성실하게 했다. 그는 고작 스물 두 살이었다. 그는 원래 트빌리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집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몇년 전에 이곳에 왔다고 했다. 표정으로 봐서는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같은 류의 사건인 것처럼 보였다. 대답을 안 해서 확신은 못하겠다. 그는 가족들이 자신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점을 이해해 주지 않았다고만 했다.
기오르기의 친구인 산초인 열 여덟 살이었다. 그런데 키가 보통의 반 절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150cm정도? 깨끗한 피부에 커다란 눈동자가 박혀 있는 살아있는 인형 같은 외모였다. 아무리 봐도 어린애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성인이라고? 기오르기는 산초가 어려보이기 때문에 버스킹 할 때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와 동시에 산초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어린애가 담배를 피우는 것 같은 기묘한 장면이었다.
“어려보이는 애가 버스킹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불쌍해서라도 팁을 줘. 산초가 바람잡이를 하면 그날의 팁이 두 배는 된다고 소문이 나서, 이 근방 버스커들에게 산초는 인기인이야.”
아무리 많이 봐도 초등학교 6학년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이 아이가 18살이라고? 외국인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 치들도 많이 있기에 나는 믿지 않으려 했다. 둘은 배시시 웃었다.
기오르기와 산초는 이날 우리가 먹은 식사를 전부 자기들이 계산했다. 내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2차에서 내가 내야지 싶어서 가면, 그것마저도 선불로 계산해 놓는 식이었다. 이건 조지안들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손님이 신에게서 오는 선물이니 뭐니 하면서 극진히 대접하는 게 거의 관례처럼 되어 있다. 그래도 너무 과했기 때문에 나는 이후 기오르기와 산초에게 보답을 하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사정이 있어서 성사가 안 됐다. 공연은 같이 했어도 그 다음에 약속이 있어서 밥 먹으러 못 간다던가 말이다. 결국 조지아에 머무르는 동안 제대로 된 사례를 못 하고 온 게 아직까지도 마음에 걸린다. 드론이라도 날릴 수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