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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사귀는 법, 충고하는 법

수능특강 지문으로 쓰는 논술 특강 03.

by 지은이 지은이
우리는 친구에게 충고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공자는 친구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여야 한다고 말했어요. 단순히 친밀함이 아니라, 서로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죠. 맹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친구 관계란 도덕적 품격을 공유하는 것이라며, 친구끼리 착한 일을 권하는 ‘책선(責善)’을 강조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좋은 충고라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해요. 송나라의 유학자 정자는 책선을 할 때 상대를 배려하며 간결하게 말해야 한다고 했고, 주자는 친구가 충고를 듣지 않으면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충고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도 중요하지만, 전하는 방식도 중요하다는 뜻이에요.
조선 중기의 학자 윤선거는 책선을 학문과 삶에서 실천했어요. 그는 실질적인 도덕과 행동을 중시하며, 친구들에게 올바른 길을 권했어요. 당시 권력자였던 송시열이 직언을 기피할 때도 윤선거는 그의 사사로운 태도를 꾸준히 비판했어요. 하지만 정치적 갈등 속에서 책선이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웠어요. 결국 윤선거가 남긴 충고는 무시되었고, 그의 사후에도 갈등이 이어졌어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줘요. 진심 어린 충고가 항상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충고를 포기해야 할까요? 우리는 친구에게 어떻게 조언을 해야 하고, 또 어떤 마음으로 조언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좋은 관계란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가] 공자는 친구와의 사귐에 대해 묻는 제자에게 ‘충고하고 바른길로 이끄는 것’이라고 답한 것을 비롯하여 교우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는데, 친구 사이에는 간곡하면서도 자상하게 선을 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그의 견해는 ‘나의 어짊에 도움이 되는 이와 벗한다’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 맹자는 이러한 견해를 이어받아 친구를 사귀는 것은 사람의 덕을 사귀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상대의 나이, 신분 등의 사회적 위상이 아니라 도덕적 품격에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펼쳤다. 그는 벗 사이에 착하고 좋은 일을 하도록 서로 권하는 책선(責善)을 강조하며 이를 붕우 간의 도리로 규정했다.

책선은 이후 송나라 때 생겨난 신유학인 정주학에 이르러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며 책선의 실행 방법 및 유의 사항 등이 구체화되었다. 정자는 성의를 다하여 책선하되 말은 적게 하는 것이 상대에게 이롭고 자신에게도 욕됨이 없다고 했다. 책선을 할 때 자신을 높이고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로 장황하게 잘못을 지적하면 거부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상황을 간결하게 설명하되,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고 마음을 배려하여 책선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할 것을 강조했다.

주자는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행실부터 올바른지를 살펴보고, 책선하는 내용이 의리에 입각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그는 친구란 의리로써 맺어진 인위적인 관계이므로 친구가 책선을 듣지 않으면 그만두어야 하며, 계속 충고하다 소원해지는 것은 스스로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아무리 성의를 다해 진실하게 책선을 한다 해도 상대가 듣지 않는다면 이미 자신과 상대 사이에 신뢰가 깨진 것이므로, 계속 충고하면서 원망을 듣기보다 조용히 관계를 끊어 자신의 성의를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조선 중기 서인 계열의 학자인 윤선거는 도학적 실천을 통해 외조부인 성혼의 무실 사상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실이란 학문과 삶에서 헛된 것을 배격하고 실질을 추구하는 것으로, 자기 성찰과 실천을 중시한 성혼의 학문적 태도를 따라 윤선거도 성리학에 대한 이론적 탐구보다 실심의 확립을 중시했다. 윤선거는 마음의 성실, 진실성을 의미하는 실심을 만사의 근본이라 여기며 그것이 실덕과 실공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보았다. 실덕은 진실한 인격의 함양을 뜻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겸양, 성찰을 생활화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실공은 진실한 노력을 실천하여 실질적인 업적을 성취함을 뜻했다. 윤선거의 책선은 무실 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실질적 행동으로, 학문과 의리를 실천하는 데 실심과 실덕으로써 자기를 반성하며, 실공으로써 붕우들에게 선을 권하여 함께 군자의 영역에 이르는 것에 그 핵심이 있었다.

충청도 일대에 은거하며 서인 계열의 송시열, 이유태를 비롯해 남인 계열의 윤휴 등 당대의 뛰어난 학자들과 교류했던 윤선거는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자신이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피란했다가 강화도가 함락되자 노비로 위장해 목숨을 부지했던 것을 큰 허물로 여겨 끝내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대신 그는 조정에 출사한 붕우들에게 책선하는 방식으로 재야의 비판자 역할을 담당하고자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송시열의 정치적, 학문적 위세에 눌려 송시열에게 직언하는 것을 기피했으나, 윤선거는 자신의 충고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송시열에게 남의 말을 수용하지 못하는 편벽된 기질과 자신과 가까운 사람만을 관직에 등용하는 사사로운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거듭 책선했다.

효종의 국상 때 자의대비가 상복을 입는 기간을 송시열이 1년으로 정했으나 윤휴가 이에 반대해 3년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서인과 남인 간에 격렬한 예송 논쟁이 벌어졌다. 이는 단순히 장례의 예법이 아니라 왕권의 정통성, 왕권과 신권의 관계 등 현실 정치의 핵심적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었다. 즉 서인은 효종이 인조의 둘째 아들이므로 장자의 예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본 것이고, 남인은 효종이 둘째 아들이지만 왕위를 물려받았으므로 장자의 예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평소에 송시열과 윤휴에게 서로 협력하여 국사를 이끌어야 한다고 거듭 권해 왔던 윤선거는 예송이 당쟁의 방편으로 전락했다고 보고 이 때문에 사화가 초래될 것을 우려했다. 그는 둘 모두를 엄히 책망하며 윤휴에게는 도성을 떠나 자숙할 것을, 송시열에게는 윤휴를 지나치게 배척하지 말 것을 권했지만 두 사람 모두 윤선거의 책선에 대해 명백히 거부 의사를 밝혔다. 책선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을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고 상대를 배척하는 당시 정치의 논리에서는 남의 충고를 받아들여 자기의 인(仁)을 보완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윤선거는 예송 논쟁으로부터 10년이 흐른 뒤 송시열이 조정에 나가게 되자 정치 쇄신을 당부하는 편지를 썼다가 전달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나중에 그의 아들 윤증을 통해 이 편지를 전달받은 송시열은 윤선거가 편지에서 윤휴를 포용하라고 재차 권한 것에 분노했고, 이후 윤증과 큰 갈등을 빚었다. 이로 인해 서인 내에서도 송시열을 따르는 측과 윤증을 지지하는 측 사이의 반목이 심화되었다.





【문제1】

제시문 [가]에서 공자, 맹자, 정주학자들이 강조한 ‘책선(責善)’의 의미를 요약하고, 주자의 책선에 대한 태도가 공자 및 맹자의 견해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여 설명하시오. (400자 내외)


【문제2】

제시문 [나]에서 윤선거가 강조한 ‘책선’의 의미를 요약하고, 이를 제시문 [가]의 책선 개념과 비교하여 설명하시오. 또한 윤선거가 책선을 실천한 방식이 조선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하시오. (500자 내외)


【문제3】

제시문 [가]와 [나]를 바탕으로 ‘책선’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을 논하시오. 또한 현대 사회에서 건설적인 비판과 조언이 원활히 이루어지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 예를 들어 서술하시오. (600자 내외)


【문제4】

제시문 [나]에서 윤선거는 송시열과 윤휴에게 책선을 실행했으나, 두 사람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정치적 갈등 속에서 조언과 비판이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위한 조건을 설명하고, 현대 정치에서 지도자가 조언을 수용하는 태도가 중요한 이유를 논하시오. (600자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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