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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Nov 17. 2021

삶 같은 여행

여행 같은 삶 말고.

해발 3600미터 고지, 티벳의 수도 라싸에 오기로 했을 때 나의 고산병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해발 2천 미터가 조금 넘는 멕시코 시티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며칠 동안은 걸어만 다녀도 마치 백 미터 달리기라도 하고 난 것처럼 숨이 찼고, 페루의 쿠스코에서는 고산병 증세가 나자마자 다음 날 버스를 타고 도망치듯 도시를 빠져나왔다.

'고산병'은 이미 내게 호환, 마마처럼 무서운 병이었다.


그렇다고 라싸에서 현지 병원신세까지 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티벳에서 병원체험이라니. 무슨 이색 투어 옵션 중 하나라면 정말 고르고 싶지 않은. 남들은 북경에서 라싸까지 한 번에 타고 오는 찡창열차를, 중간에 한 번 쉬어 '꺼얼무'라는 낯선 도시에서 하룻밤 자고 온 걸로 병치레는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라싸에 도착 한 첫날 밤, 자다가 숨이 넘어가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 깨어보니, 숨쉬기가 힘든 것보다는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 양 손바닥으로 머리를 감싸고 가쁜 숨을 헐떡이는데, 그다음엔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뻐근해 두 눈을 힘껏 누를 수 있게 손이 두 개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요란한 뒤척임과 숨소리에 잠에서 깨었을, 옆 침대의 중국인 아주머니가 다가와 내 침대 머리맡에 앉는 것이 느껴졌다. 낮에 잠깐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우린 서로의 이름도 묻지 않았을 정도로 모르는 사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녀가 캄캄한 방에서 잠에서 깨어 내게로 왔다.


"나는 의사예요"


전 날 낮에 쉰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나이에 짧은 머리, 피부가 하얀 여자가 손가방 하나 들고 나 혼자 있던 3인실 도미토리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녀가 어떤 사연이 있는 여자인 줄 알았다. 표정이 어두웠던 것도 아닌데, 내가 그냥 그런 선입견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잠시 지켜보다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는가 싶더니 황급히 계단을 내려가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를 깨웠고, 스태프는 택시를 불러 나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 과정은 마치 응급상황 같았지만, 병원에 도착하니 산소통과 내 콧구멍을 호스로 연결해 산소를 공급해준 것이 다였다. 그녀 역시 의사라고는 했지만, 나를 병원에 보내버린 것이 다였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그녀의 인기척이 느껴졌을 때 나를 둘러싸고 있던 불안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던 것은 확실하다.

그 이후로 나는 그녀를 두 밤 더 잠에서 깨웠다. 그리고 그녀가 스트 하우스를 떠나던 날 내게 약봉투를 내밀었다.


"내가 챙겨 온 약 중에는 고산병 약이 없어 하나 구입했어요. 내가 알기로는 이게 제일 잘 들어요."

영어사전을 몇 번 뒤적여가며 내게 한 말이다.


그녀 덕분에 한 밤중에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는 것은 두렵지 않았는데, 나 혼자 있던 낮이 오히려 공포였다. 병원에서 산소를 공급받고 나면 말끔히 나은 것 같다가도 낮에 걷다가, 아니면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머리와 눈이 터지고 빠질 것처럼 아파왔다. 그럴 땐 릭샤든 택시든 눈에 띄는 아무거나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한 번은 자전거가 앞에 연결된 짐수레에 허락도 없이 올라가 자전거 주인을 마치 내 사람인 양  부리기도 했다. 영문도 모르는 자전거 주인은 내가 주머니에 넣어 다니던 병원 주소를 건네주자 위급함을 알아챘는지 서둘러 자전거 폐달을 밟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고마운데, 나는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워 자전거 주인의 등에 대고 마구 재촉하기까지 했다.

'콰이, 콰이~(빨리, 빨리).'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아니면 자전거 수레에 탄 여자가 어눌한 중국어로 앞에 탄 남자를 갈구는 모습을 보고 낄낄대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에 찾아가는 매 순간은 야단법석, 빨리빨리였지만, 콧구멍에 호스를 끼고 병원에 멍하니 누워있는 시간은 얼마나 길고 느리게 갔는지 모른다. 고산병의 고통보다도,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인생에 한 번일지 모를 티벳 여행이 망했다는 생각이 동시에 반복해서 몰아쳐 마음에 멍이 들었다. 무려 2년이 넘는 세계일주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병원을 수 없이 오고 가는 건 계획에 없었다. 살다 보면 아픈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 준비되지 않은 마음에 몹쓸 상처를 남기고 말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며 갈망하는 '여행 같은 삶'을 실현해 보겠다고 떠난 내가 용감하고 멋져 보였었다. 하지만 여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언제나 아름답고 즐겁지 만은 않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수 없이 일어나고, 몸이 아프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 날도 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나의 삶은 막연한 여행을 갈망할 정도로 나쁘지도 않았다. 허황된 여행의 환상 속에서 일찌감치 깨어나게 해 준 사건이었다. 고산병.


여행 계획에 빠뜨린 몇 가지를 더 추가했다.


또 다시 병원에 가는 일이 생겨도 두려워하지 말기.

언제 은인으로 변신할지 모를 스쳐가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기.

여행 같은 삶이 아니라, 삶 같은 여행하기.




침대에 누웠다. 누런 기가 잔뜩 도는 시트는 군데군데  핏국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 침대를 차지하기 위한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기에 선명하게 기억한다.


숨을 헐떡 대며 접수를 하는 것이 첫 단계였.

접수원은 너무나도 차분하게 손가락로 복도 끝 계산창구를 가리켰고, 나는 터져 버릴 것 같은 머리를 쥐어 잡은 휘청거리며 걸어가 병원비를 지불했다. 

마지막으로 병실이 있는 윗 층까지 두 발, 두 손을 이용해 계단을 스스로 올라서야, 침대에 간신히 누울 수 있었다.


아,  단계에서 접수창구에 입원 사유를 설명하기 위해 병원 안에 있는 티벳인들  영어로 통역이 가능한 사람을 찾아 보물찾기 하듯 복도를 휘젓고 다니는 과정이 제일 고역이었다. 눈과 머리 통증, 호흡곤란, 삼박자가 요들송 반주하듯 요란스럽게 괴롭히는 몸을 이끌고 헤매는 병원 안은 현지인들이 연신 담배를 피워대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 저승사자도 끼어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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