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에 간섭한다는 것

간섭 말고 존중을 해주세요.

by alerce


나는 여러 책 장르 중에서 에세이를 즐겨 읽는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좋다. 특히 100세가 다 되어가시는 김형석 교수님의 ‘100년을 살아보니’를 읽고 책 한 권으로 한 사람의 일생과 인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더욱 강렬히 느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일제강점기의 생생한 이야기와 100세 무렵의 고민과 사유를 에세이를 통해 같이 고민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나도 평소 잡생각이 많은 편이어서 남들에게 이런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여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내 삶도 누군가가 훔쳐보기엔 흥미로울 수도 있지 않을까. 아마도 이름 모를 타인이 지나가다 내 글을 우연히 보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이런 삶을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공감하고 위로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 들어 에세이를 읽다가 놀라곤 한다. 본인의 생각, 경험을 적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이런 식으로 살아라’라고 조언하는 에세이 책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큰 확신에 찬 어조로 제안하는 삶의 방식은 분명 좋은 조언도 많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간섭받는 기분을 들게 했다. 아마 내가 단단히 꼬인 것 같다. 난 책에서조차 꼰대의 기운을 감별하고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타인에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강요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도 싫어한다. 말로 조언하기는 쉽다. 그럼 자기 자신도 언행일치하며 살고 있을까? 과연 확신에 차서 남에게 조언을 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봐도 훌륭한 사람일까? 이런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자라면서 자기 계발서를 쓴 유명한 작가나 행복에 대해 강의했던 강의자들이 실상은 자신이 말하는 삶을 살지 못하거나, 주변에서 봤을 때는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삶을 살아가는 중이기에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 모르는 것이 많다. 아무리 연륜이 쌓인 사람이라도 티 없이 완벽한 사람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짧은 인생을 살아온 내가 이것 하나만큼은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사람이 자신을 오랜 시간 고쳐나가면서 오히려 완전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찾아낸 좋은 삶의 방식이 있다면 남에게 제안은 할 수 있지만 강요는 할 수 없지 않을까. 그 사람의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


‘이럴 땐 이렇게 하도록 하자.’라는 고압적인 자세보다는 ‘나는 이렇게 살았더니 괜찮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는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퇴근 후 즐겁게 핀 에세이 책에서까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꼰대를 만나야 하다니. 차라리 자기 계발서 장르로 책을 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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