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좋아하는 일도 일이다.

by alerce





인생에 대하여 아빠 때문에 알게 된 것이 있다. 일이라는 것이 사람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아빠는 성공의 대명사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머리가 좋아서 서울대 법대를 들어갔다. 하지만 아빠는 몇 번을 준비했지만 사법고시를 계속 떨어져서 포기하고 서울은행을 다녔다. 어렸던 내 눈에 아빠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행복해 보였던 때는 없었다. 그래도 아빠는 매일매일 무표정한 얼굴로 회사에 나갔다. 그러다가 IMF 때 실직을 하고는 오랫동안 재기를 못했다. 일을 잃어버리자 아빠는 집에 틀어박힌 은둔자가 되었다. 불행한 삶이었다.


그렇게 되면서 어릴 때부터 엄마가 밥벌이를 시작했다. 점점 부부싸움을 목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엄마는 학습지 선생님을 하셨는데 일을 너무 잘해서 상을 많이 받았다. 돈도 꽤나 잘 벌었다. 그러나 집에 오면 늘 가족들에게 직장에서 쌓인 고통을 쏟아냈다. 엄마도 역시나 불행한 삶이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

“ 공부 열심히 해라. 공부해서 성공해야 고생을 안 한다.”

이상하다. 우리 집엔 공부를 잘했던 불행한 사람이 있는데. 가족 모두가 고생을 엄청나게 하고 있는데.


그러던 무렵이었을까. 책이나 방송에서 흔하게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장려하곤 했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라고.

돈을 좇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했더니 성공을 했다는 성공 신화도 많이 방송되었다.

점점 나는 아빠가 좋아하는 일을 안 하고 남들이 바라는 일을 하다가 불행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믿었다. 방송과 책에서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리하여 별생각 없었던 또래 아이들과 다르게 10대 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집착적으로 탐색하곤 했는데, 그렇게 정한 것이 디자이너라는 직업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나는 디자이너가 되었고, 그곳에는 내가 경멸하던 아빠의 삶과 똑같은 반복되는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있을 뿐이었다. 나 또한 무표정으로 매일매일 출근을 할 뿐이다. 직군이 다를 뿐.


그렇게 직장인으로서 일하면서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무슨 직업을 가지던 직장인이 되는 거라면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분야의 직장인이 되는 게 낫았겠다. 라던지.. 적어도 정시에 퇴근하는 공무원이 나았겠다. 라던지.. 요즘 아이들은 이런 사실을 이미 아는 것인지 고등학교를 관두고 공시 공부를 한다고 하던데.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직장인 디자이너로써의 삶도 너무나 싫었지만, 나는 셈을 하는 걸 싫어하니 세무사나 회계사는 못되었을 것이고.. 운동도 빼어나게 못하니 운동선수도 못했을 것이고.. 말주변이 좋지도 않으니 남 앞에 자주 서는 영업직이나 기획자 같은 직업은 못했을 것이라고. 공무원도 보수적이어서 힘들지 않았을까? 어쩌면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못한 나에게는 그나마 흥미를 가졌던 분야에서의 직장인이 되는 것이 최선의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일을 쫒았더니 행복하고 성공했다고 말했던 분들께 묻고 싶다.


“저는 왜 행복하지 않은 건가요..? ”


도대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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