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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청예 May 08. 2021

짜장면이 먹고 싶어

면치기, 흡입 한 번에 미끄덩하고 목구멍까지 들이차는 까만 면


먹고 싶어




짜장면이 먹고 싶다. 노르스름한 밀가루 면위에 짙은 고동색 춘장양념을 붓자. 그 안에는 다진 양파와 돼지고기 감자 등등 고명이 섞여있다. 운이 좋다면 배달전화 후 15분만에 도착할 만큼 간단한 음식. 면 삶고, 붓고 끝. 하지만 타임리미트가 있는 음식. 조금만 늦게 먹어도 면발은 자신들에 들러붙은 수분 윤기를 모두 흡수해버려 퉁퉁 불고 만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질 때 서둘러 젓가락으로 슥슥 비벼 온 면발을 검게 만들어야 한다. 떡져 엉겨붙은 면발을 달래듯이 잘 풀어주자. 가닥가닥이 서로 떨어진 후에, 좋아하는 고명과 함께 크게 젓가락으로 집어들고 흡입. 호로로로록, 후루루루룩.


면치기 대명사? 단언컨대 짜장면


면치기 하고 싶은 날, 5~7천원 정도 지불하면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짜장면은 면을 삶을 때부터 바로 춘장을 넣치 않는다. 양념과 면을 분리해서 요리한 다음 하나로 합치는 음식이다. 그래서 면을 흡입했을 때 찰기와 윤기가 살아있다. 또한 밀가루 면 자체가 외부 양념을 아주 스무스하게 흡입하는 재질이 아니므로, 면 자체의 식감과 약간의 밀가루 맛이 남아있다. 지나치면 문제겠지만, 가끔 탄수화물이 미치도록 먹고 싶을 때는 심장을 뛰게하는 맛이다.



1) 나는 짬뽕파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


사실 나는 20대 초입까지만 해도 짬뽕파였다. 중국집 뭐 시켜먹을래? 고민도 없이 짬뽕에 손을 들던 사람, 간짜장마저 거들떠 보지 않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짜장에는 짬뽕이 갖지 못한 각별함이 있다. 뜨겁지 않아 빠르게 면을 흡입할 수 있다. 면치기로 시원하게 호로로로록 소리를 내며 흡입해도 빨간 국물이 튀지 않는다. 물론 춘장 양념은 튈 수 있지만 짬뽕 국물보다는 덜 위험한 느낌(잘 지워지더라). 홍합이나 오징어 같은 해산물은 적지만, 오히려 짬뽕에는 없는 돼지고기 고명이 들어있어 육덕진 기름맛이 더해진다.


요즘엔 짜장면을 주문하면 서비스로 짬뽕 국물을 주는 중국집이 많다. 그러나 짬뽕을 시켜도 짜장면을 서비스로 주진 않는다. 합리성을 따진다면 짜장이 win인 셈이다. 나이를 먹을 수록 가성비를 따지는 탓에 짜장면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미안해 짬뽕. 내 면발의 색깔은 black.



2) 새 시작의 맛


출처 오마이뉴스 간짜장인가봐요~


요즘 친구들은 안그렇다더라. 라떼는 말이야. 이삿날이나 초/중학교 졸업식 날엔 미풍양속 마냥 중국집 음식을 먹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어. 지난 것들을 잊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날에 왜 우리집은 늘 짜장면과 함께였을까. 특히나 이삿날에는, 빨리 먹고 짐을 치워야 한다며 짬뽕은 주문 금지였다. 서운해하는 표정을 지으면 그제서야 아빠가 "그럼 간짜장으로 먹던가."라며 타협점을 제시하곤 했다. 아무튼 그것도 짜장이잖아요 아빠. 온가족 입술이 거무죽죽하게 물들면 대충 티슈로 슥슥 닦아내고 서둘러 다시 짐을 나르는 맛.


어른이 돼 독립을 한 이후엔 이삿날마다 짜장면을 시켜먹진 않는다. 하지만 새 전셋집에 입주할 때 치킨을 먹었더니 기분이 묘했다. 어딘가 허한 느낌. 새로운 공간에서 호로로록하며 면치기 한번 해줘야하는데 규칙을 위반한 느낌. 나는 배덕감을 견디지 못하고 며칠 뒤 짜장면을 주문해먹었다. 작은 내 방안이 한순간에 면치기 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 후루룩, 후루루룩, 이 맛. 이사의 맛. 시작의 맛. 또 가끔은 대학시절 동아리 친구들과 동방에서 오손도손 모여 시켜먹었던 짜장의 맛이 그립기도 하다. 가위로 두 번 자르면 화내는 친구가 있으니 면은 꼭 한 번만 자르기, 혹은 자르지 말거나.



3) 탄수화물을 향한 미친 욕망


맛있는건 크게크게 지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3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탄수화물을 향한 욕망. 호르몬이 날뛸 때 짜장면이 꼭 생각난다. 절대로! 반드시! 살쪄버리는 음식 1위, 다이어트와 상극인 음식. 하지만 기름지면서도 씹을 수록 오묘한 단맛이 느껴지는 탄수화물이 생각날 때마다 짜장면은 내 머리속에 가득찬다. 그러면 내 두 귀는 면발이 흡입되는 소리를 듣고, 내 두 눈은 빛을 받아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녀석을 떠올린다. 앙큼하게 까만색이기까지한 면발을 말이다. 아른아른. 어느새 나도 모르게 또 후루루룩 거리고 있다.


면발을 씹으면 잘게 으깨진다. 그리고 금방 녹는다. 그러면 사알짝 단맛이 나는데 결코 설탕맛은 아니다. 쌀밥을 씹을 때 느껴지는, 분해된 탄수화물, 바로 포도당의 맛. 기름에 볶인 춘장 때문에 입안에는 묵직하고 육덕진 맛도 남는다. 다 사라진 후에도 자취를 남기는 춘장과 면발. 커피 따위로 씻어주지 않으면 온 입안에 질척질척 붙어있는 그 끈적한 맛. 탄수화물이 미친듯이 땡길 때 생각이 난다. 흡입 한 번에 미끄덩하고 목구멍까지 들이차는 까만 면은 특별해. 내 온 육체가 살찌고 싶어 난리칠 때 짜장면을 원한다.


출처 마음건강 길


자잘하게 썰린 양파가 아삭거리고 돼지고기는 묵직하게 씹힌다. 그 사이를 미끄덩거리며 입안에 꽉 들어차는 면발. 온 혀에 감기는 춘장. 짜장면이 먹고 싶다. 먹고 싶어.



심심하실 때 인스타 놀러오세요 :)

https://www.instagram.com/artiswil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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