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이라는 위대한 수련

by againJ

지난주 몸과 마음이 전체적으로 하강 곡선이었다면 이번 주는 등락을 반복하는 혼돈 구간이다. 월요일 힐랙스를 할 때만 해도 이제 컨디션이 바닥을 찍고 올라오는구나 싶었다. 주말 동안 다시 고관절과 허리 통증이 생겨서 최악이었던 몸 상태가 수련 중에 조금 가벼워졌기 때문.


연이어 화요일 빈야사에서도 수련 내내 호흡을 놓치지 않고 우트플루티히까지 수월하게 연결되어 만족스러웠다. 빈야사 자체가 산스크리트어로 흐름이라는 뜻인 만큼 집중이 잘 되는 날은 동작과 동작을 연결하며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게 되고 그 흐름을 끝까지 유지하면 즐거운 수련이 된다.


그런데 오늘 하타 시간에는 다시 몸이 무거웠다. 아마도 생리 주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겠지만 상승 흐름에서 갑자기 맥이 탁 끊긴 느낌이라 몹시 실망스러웠다. 화요일에 우스트라 아사나(낙타 자세)에서 한 팔씩 뒤로 넘겨 바닥에 닿는 연습을 했던 터라 오늘은 두 팔을 함께 뒤로 넘기는 완전한 백밴딩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오히려 평소 잘하던 낙타 자세에서도 호흡이 벅찬 느낌이었다. 벽의 도움 없이는 살람바 시르사 아사나도 여전히 될 듯 말 듯 나머지 한 발끝이 들릴락 말락 하다 허무하게 수련이 끝났다.


솔직히 깔끔하지 못하게 한 주 수련을 끝낸 느낌이라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더구나 수련실 밖에는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새로운 과제들이 대기 중이라 마음이 바쁘고 복잡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실 평범한 내 삶에는 이도 저도 아닌 이 애매한 순간들이 대부분인 것을. 이 대부분의 시간을 흐릿하게 보낸다면 내 인생은 이렇게 모두 흘러내릴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성실하게 꽉 채워보는 수밖에.


학창 시절 평범한 모범생이면서 예술가들의 영감 어린 삶을 막연히 동경했던 나는 한 때 나의 예술성을 가로막는 게 지나친 성실성이 아닐까 착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성실함은 내게 소심함이거나 지루함이었다.


하지만 요즈음 내가 생각하는 성실함은 인내고 절제며 위대한 수련이다.


요가원 가는 일이 매번 즐겁지만도 않고 빠질 수 있는 핑곗거리는 도처에 널려있지만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안을 대충 정리하고 나면 습관처럼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늘 입는 외투에 모자를 눌러쓰고 요가원으로 나선다. 수련 중에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지만 그날 그 순간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애써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매주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거나 늘 무언가 남기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꾸준히 주 1회라도 그 주 수련 내용을 되돌아보고 수련 중 얻은 작은 깨달음이나 생각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이 모든 과정 자체가 중요한 수련인 셈.


당장 감각할 수 없거나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거나 막연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끝내 만들어 내는 건 이 묵묵한 시간들에 녹아든 성실함 때문이라는 걸 나이가 들고 요가를 할수록 깨닫는다. 그러니 내가 지금껏 예술가 근처에도 가지 못한 건 갖지 못한 그 1%의 천재성보다는 성실하지 못했던 99%의 시간들 때문으로 봐야할 듯.


이제라도 성실한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보고 싶다.

성실함이라는 위대한 수련의 과정을 충실하게 살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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